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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un 14. 2016

나에겐 가장 특별한 프러포즈

2016. 6.13.

                                                                                                                                                                                                                                                                                                                                                                                                                                                                                                                           


결혼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던 5월


 내가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돈을 써본 적이 있던가? 당시 엄마와 나는 칫솔꽂이부터 굵직한 가구까지 빈집에 미친 듯이 살림을 채워 넣고 있었다. 전자제품을 사러 갔을 때가 유독 기억이 난다. 엄마와 하이마트에서 혼수 견적을 받고  어마어마한 액수에 겁이 덜컥 났다. 옷 살 때에도 백화점 한 층을 몇 번을 돌고 도는 나인데, 몇 군데는 가보고 비교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돈을 벌지는 못해도 쓰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아빠가 항상 하시던 말) 우리 엄마, 조 여사님은 그 당시에도 어김없이 그 진가를 발휘했었다.
    
"엄마, 우리 다른 데도 가서 비교해보자"

"야, 또 어딜 가. 딴 데 가봐야 별거 없어

"더 쌀 수도 있잖아"
     
"야, 한두 개 사는 것도 아니고 다 사면 결국 비슷해"
     
"엄마, 이게 한두 푼도 아니고"
     
"으이구, 이 답답아. 좀 더 비싸게 사면 어때. 빨리 사서 들여놓아야 일을 끝내지"
     
  결정 장애를 갖고 있는 나는 엄마의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 덕분에 혼수 준비를 아주 편안하게 마칠 수 있었다. 게다가 결혼 준비과정에서 남자친구와의 의견차로 충돌이 생긴다던데, 돌이켜보니 나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이유는 신랑과 나는 만난 지 딱 1년을 못 채우고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7월 여름에 만나 다음 해 6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심지어 1달 동안 하와이에 있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실질적으로 교제한 기간도 짧았고, 서로를 잘 알지도 못 했다.  
     
  그래도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한 가지 분명했던 건 있었다. 만나면 마음이 편했다. 성인 여드름으로 화장을 해도 영 안 먹는 나를 보고 화장을 하지 말라고 했다.(차마 그럴 수는...) 데이트하다 갑자기 토라져서 집에 가고 싶다고 변덕을 부려도 그는 이성을 끈을 놓지 않았다.(데이트에서 빠질 수 없는 '삐짐'이라는 지뢰. 내가 왜 화났는지 알아맞혀 봐) 분식집에서 돈가스를 주문하고 1분도 안 돼서 쫄면으로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봐도 그는 그러려니 했다.(지금은 절대 아니다)  살이 좀 찐 것 같다고 말하면 통통한 게 좋다고 했다.(지금도 애매한 그 '통통'의 기준. 그 당시 내 인생 최고로 날씬했었는데 신랑은 요즘 나보고 날씬하다고 한다) 어쨌든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그가 참 편하고 고마웠다. (특히 내 나이 아홉수였던 그 해에는)
     

프러포즈를 예감하다


    집안 어른들끼리 만나자 결혼 날짜, 신혼집이 아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혼은 어른들이 PD, 우리는 연기자) 결혼 날짜를 한 달 앞두고 신혼집이 구색을 갖추면서 우리는 가끔 신혼집 데이트를 즐겼다. 새 그릇으로 차도 끓여마시고, 새 소파에 앉아 티브이도 보고 더 필요한 물건은 없는지 살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그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어디야? "
     

"어, 꿈에 그린으로 와.(우리 신혼집 아파트 이름)"
     
"왜?"
     
"일단 와. 여기서 저녁 먹자"
     
   말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뭔가가 있었다. 내 남자친구는 정말 솔직한 사람이다. '분명 내가 꿍꿍이가 있다'는 느낌을 고작 1분도 안 되는 통화만으로 고스란히 전달했다. (이 재미없는 인간)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프러포즈'를 예감했다. 신혼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가자 해물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리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습한 기운은 우리가 평소에 오던 그 새집 냄새와 거리가 멀었다. 부엌에는 ㄱ자 구조의 부엌 싱크대 위에 빈 공간을 찾아볼 수 없이 각종 식재료들이 빼곡히 쌓여있었다. 턱이 가출한 듯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며 신랑은 나에게 최고의 요리를 선사하겠다고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소파에 편히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나도 아직 써본 적 없는 새 냄비에 물이 가득 끓고 있고, 왕새우가 한 바가지 삶아져 있다. 입을 벌리고 있는 하얀 조개와, 홍합들. 당근, 셀러리, 양파와 같은 야채도 널브러져 있다. 내가 경악을 금치 못 했던 것은 높이 25cm 정도 되는 업소용 'Hunt's 토마토 페이스트' 캔과, 같은 크기의 홀 토마토 통이었다. (작은 사이즈가 없었다는 게 이유) 신랑은 호텔 레스토랑 셰프가 공개한 해물 스파게티 동영상을 보고 모든 것을 준비했다며 대단한 결심을 한 듯하다. 오늘을 위해 대형마트에 가서 레시피에 적힌 재료를 빠짐없이 사 왔다고 했다.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눈치챘다시피, 요리를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신랑은 정말 요만큼의 융통성도 없었던 것이다. 10인분 아니 20인분은 거뜬히 만들 만한 식재료였다. 심지어 향초와 마늘빵을 올려둘 나무 식기까지 죄다 샀다는데, 그 돈이면 호텔 가서 사 먹고 디저트까지 먹겠다 싶었다. 그래도 그때는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진땀을 빼는 그가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웠다.(소름 끼치는 콩깍지의 위력)  우아하게 한상 대접받기를 고대했건만 1시간이 속절없이 흘러버렸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결국 내가 팔을 걷어붙였다.
     
"오빠, 당근은 어떻게 하래?"
     
"어, 그건 작게 썰어야 돼, 모양은 똑같게"
     
"어떻게 다 똑같이 해. 이리 줘. 일단 내가 할게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
     
"언제 다하려고. 일단 야채 써는 거라도 끝내자 "
     
  좀 맛이 덜하면 어떤가 일단 끝내는 게 먼저다. 좀 비싸게 사더라도 당장 혼수 제품 구입을 마무리 짓고 싶었던 엄마처럼 나는 아주 과감하게 요리를 척척 진행해 나갔다. 모양이나, 야채 넣는 순서와 같은 건 어차피 다 넣고 볶으면 비슷한 거였다. 우리 둘은 부부라도 된 것 마냥, 부엌에서 레시피를 봐가며 같이 요리를 했다. 마늘빵은 버터와 마늘을 섞어 오븐에 구워서 냈다. 스파게티 면에 해물이 가득한 소스를 얹어 보타닉 접시에 예쁘게 둥글려 담았다. 신랑은 촛불에 불을 켰고, 식탁 등을 제외한 다른 불은 모두 껐다.  제법 아늑하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물씬 났다. 누구는 잠자리에 들 밤 10시에 우리는 드디어 저녁식사를 했다. 스파게티와 마늘빵의 맛은 생각보다 괜찮았던 것 같은데 그것보다 너무 배가 고팠던 기억이 먼저 난다. 정말 지쳤지만 남자친구의 노력이 갸륵해서 마냥 웃음이 나왔다. 식사를 마쳤을 무려 신랑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내 옆에 다가왔다. 왕자님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나에게 보라색 J.estina 상자를 건넸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그동안 준비했던 그 말을 했다.
     


나와 결혼해 줄래?

     

  드라마나 영화에서 숨을 죽이고 봤던 누군가의 프러포즈와 달랐다. 짜릿하고, 환상적이고,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감동은 없었다. 오히려 노력한 땀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 듯한 프러포즈였다. 나도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레시피를 가지고 그와 함께 다지고, 썰고, 볶고, 삶고, 굽고를 함께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걸어줄 때에도, 내가 귀걸이를 직접 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100개의 초로 된 촛불 길이나 하트 모양 촛불도 없었다. 하늘로 날아가는 수십 개의 풍선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동영상도 없었다. 그래도 자꾸 남자친구를 바라보며 자꾸 웃음이 터져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와 결혼해서 살아보니 결혼생활도 프러포즈와 비슷하다. 나는 그의 대접을 받는 입장이라기보다는 그와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노력을 하고 있다. 육아 휴직 중인 지금도 신랑의 일을 매일같이 나가서 도와주고 있고, 여행이라도 갈라면 내가 우선 알아보고 계획하고 자잘한 것은 신랑이 처리하는 편이다. 어릴 적 동화 속에 나오던 공주처럼 왕자가 해주는 모든 것을 그냥 누리면서 사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나는 함께 노력하는 결혼 생활에 만족한다. 어쩌면 같이 지지고 볶았던 프러포즈가 참으로 우리 부부에겐 딱 맞는 이벤트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와 결혼한 지 딱 6년째 되는 날



그날은 2010년 월드컵 한-그리스 전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다음날이었다.
   

주례사 선생님이 양가 부모님께 인사하라고 했다.

신랑 측 부모님께 인사를 마치고 신부 측 부모님께 할 차례였다.
신랑은 우리 부모님께 큰절을 올렸고,
우리 엄마는 촉촉한 눈으로 신부인 나를 안았다.

(난 다른 사람 결혼식에 가면 꼭 이 부분에서 목이 멘다)

그리고 엄마는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야... 그만 웃어."

시트콤에나 나올법한 이 멘트는
 결혼식 내내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었던 나를 보며
민망해진 우리 엄마가 했던 말이다.
     
그날,
내가 그의 신부라는 사실에
정말 행복했다.
     


 Happy 결혼기념일!

     
     
    
+
신랑이 스터디 가기 전 다급하게 준 결혼기념일 꽃다발.
주말에  모든 행사를 치르자는 말을 남기고 갔다.
그리고 나는 오늘이 결혼기념일인 걸 그때 알았다.
내가 너무 그런 쪽으로 신경을 안 쓰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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