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업무와 '가짜 노동'의 그림자
최근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은 사회 전반에 걸쳐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공공 부문 역시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행정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 정부는 AI 도입과 자동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공무원들이 행정 업무에 AI를 도입하고 자동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우려의 배경에는 공무원들의 업무 성향, 특히 단순 반복적인 업무에 대한 선호와 '가짜 노동'에 대한 묵인 경향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살펴보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일부 공무원들은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반복적인 업무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료적인 환경 속에서 이러한 일상적인 업무는 익숙함과 통제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직무 만족도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살펴보면, 업무 환경에서 근로자가 자신의 직무에 대해 가지는 감정적 반응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직무 만족도가 매년 낮아지는 추세 속에서도, 일부 공무원들은 구조화된 반복 업무를 통해 업무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특정 업무 방식을 고수해 온 공무원들에게는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인한 변화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하여, 기존의 익숙한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최근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인식 조사에서는 공직 사회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가장 시급히 바꿔야 할 과제로 '보여주기식·형식주의 등 가짜 노동'이 지목되었습니다. 공무원들은 불필요한 문서 작업에 하루 평균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이러한 '가짜 노동'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인식하는 비율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공무원들이 비효율적인 '가짜 노동'을 싫어하면서도, 이를 해소할 수 있는 AI 도입에는 저항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설적인 태도의 배경에는 AI로 인해 자신의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재 수행하는 업무가 비록 불필요하다고 인식될지라도, 이는 곧 자신의 역할을 구성하는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AI 시스템을 관리하고 새로운 업무 방식에 적응해야 하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나, 반복적인 업무가 자동화되었을 때 자신이 느끼는 존재감이나 업무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가짜 노동'은 때로는 동료와의 소통 기회를 제공하거나, 업무 시간을 채우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AI 도입에 대한 잠재적인 저항감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일자리 감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국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 정부 부처 공무원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AI와 자동화 기술로 대체될 수 있다는 예측도 있습니다. 특히 단순 반복적인 행정 및 민원 처리 업무, 회계 업무 등은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변화된 역할에 적응해야 한다는 점 역시 일부 공무원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특히 연령대가 높은 직원일수록 이러한 변화에 더 큰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자동화로 인해 인력이 감축된다면, 남은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물론 AI 기술 도입은 새로운 직무를 창출할 수도 있지만, 기존 공무원들이 이러한 새로운 역할로 원활하게 전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한국 공공 부문의 전통적인 조직 문화 또한 AI 도입에 대한 저항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수직적인 위계 질서, 연공서열 중시, 그리고 변화에 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는 새로운 기술 도입과 업무 방식 변화에 대한 조직 내부의 관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미 확립된 업무 루틴에 익숙해져 있는 조직일수록 새로운 방식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클 수 있습니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혁신과 변화 수용을 장려하는 노력이 있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조직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 도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변화 관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며, 리더십의 적극적인 지원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설문 조사 및 연구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무원들의 직무 만족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 이는 조직 전반의 사기 저하와 변화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공무원들이 '가짜 노동'의 비효율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하위 직급의 공무원들은 AI 도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 대해 더 큰 우려를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또 다른 연구에서는 공공 부문에서 AI 활용에 대한 공무원들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보여주는데 , 특히 하위 직급 공무원들의 직무 불안감이 높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업무 자동화 도구와 AI 기술 도입 실태에 대한 KIPA의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하위 직급 공무원들이 인력 감축에 대한 우려를 일부 가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물론 AI 도입은 공무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측면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AI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로부터 공무원들을 해방시켜, 더 중요하고 창의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문서 작성이나 데이터 분석과 같은 업무에서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 국민들에게 제공되는 공공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잠재적인 이점들이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보다 부각된다면, AI 도입에 대한 공무원들의 저항감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단순 반복적인 업무에 대한 익숙함, '가짜 노동'에 대한 묵인, 그리고 AI 도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인해 행정 업무 자동화 및 AI 도입에 주저할 수 있습니다. 비록 비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개선하고 행정 효율성을 높이는 데 AI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을지라도, 이러한 우려들은 AI 도입에 대한 잠재적인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 도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공무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일자리 안정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새로운 기술 습득을 위한 충분한 교육과 지원을 제공해야 합니다. 또한, 조직 문화 차원에서 혁신을 장려하고 AI 도입의 긍정적인 효과를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공무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대한민국 공공 부문은 AI 시대를 효과적으로 맞이하고, 더욱 발전된 행정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