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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Jan 14. 2023

동해에서 한 번 더 깨달은 풍파의 자연스러움

속초부터 강릉까지 친구들과 함께한 바다 이야기

연말을 앞두고 11월부터 12월까지 이런저런 일정이 가득했다. 솔직히 그즈음 내가 가장 원하는 건 혼자만의 휴식이었다. 물론 만남이 싫은 건 아니고 막상 가면 즐거울 줄 알지만 조금 지치는 시기랄까. 그렇게 11월 중순의 주말엔 친구들과 동해 여행을 다녀왔다. 개인적인 심상으로 여정에 대한 설렘보다는 약속에 대한 책임감과 우정에 대한 의리로 출발했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친구 차와 경기도에서 출발하는 내 차로 나누어 이동했다. 동이 다 트지 않은 이른 아침, 판교에서 내 차를 타고 갈 친구들을 만나 열심히 달렸다.

가는 길에 가평휴게소에 들러 옐로우스탑이라는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데 알고 보니 애견카페였다. 강아지를 위한 음료와 간식이 다양하게 많아 내심 촉촉해졌다. 사랑과 별에게 미처 못 해 준 것들은 평생 나를 아쉽게 한다. 동시에 그들과 나눈 위대한 사랑이 삶을 지탱한다. 


속초에 도착해선 등대해수욕장 바닷가를 구경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 줬다. 누군가와 함께 오면 이렇게 각자의 시선이 기록으로 남는 게 참 좋다.

오늘의 현지 가이드(?)로서 친구들을 급작스럽게 영랑호로 인도하기도 했다. 여느 호수가 그렇듯 계절, 날씨, 시간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다르게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선 누구든 신라의 여느 어린 화랑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좋은 기억이 많은 장소에서 다른 친구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

이튿날엔 자다가 웃풍으로 몇 번 깼는데 꿈에 사랑이 형이 안아 달라고 긁어, 내가 안고 뽀뽀하니 짖은 뒤 이내 푹 안기는 꿈을 꿨다. 너무 행복한 꿈이었다. 덕분인지 7시 10분쯤 일출 예정 시간을 앞두고 알람을 맞춰 뒀는데 그전에 딱 깼다. 해돋이를 보러 같이 간다던 친구들 모두 다시 자는 걸 택해 혼자 나갔다. 정암해수욕장부터 설악해수욕장까지 홀로 한갓진 아침 산책을 즐겼다. 비록 구름에 가려 떠오르는 해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적당히 서늘한 공기와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가는 늦가을 하늘이 충분히 맑고 아름다웠다. 특히 정암해수욕장의 파도와 자갈이 이룬 하모니가 일품이었다.

금방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니 차도 나도 연료가 다 떨어졌다. 간절한 바람은 저버리고, 가장 두렵던 예감은 기어이 이루는 삶이 야속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나의 어리거나 교만한 마음은 사랑 앞에 무력하다. 피로와 허무를 안고 친구들과 더불어 닿은 바다에서 풍파의 자연스러움을 어렴풋이 한 번 더 깨달았다. 더불어 여독과 별개로 관계에 대한 감사로 충만하며 한 주의 끝과 시작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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