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쿨수 Sep 26. 2021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거제의 매력

알면 알수록 거며든다...*

어쩌다 보니 또다시 거제에 가게 됐다. 친한 동생이 이주 후 창업을 해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축하 겸 응원을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크게 관련이 없던 도시가 삶에 조금씩 스며든다. 출발하는 시간과 장소가 각기 달라 홀로 서울남부터미널 인근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영업이 끝나고도 시간이 남아 교대 쪽으로 산책을 즐겼다. 밤 11시 30분이 되어서야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다.

보통 고현버스터미널로 갔었는데 이번엔 목적지가 달라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새벽 3시 50분에 도착하니 택시도 없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두운 길을 혼자 걸었다. 인적은 드물고 생각보다 어두워 조금 무서웠다.

숙소에 도착해 찾아오는 안도감과 함께 금방 깊은 잠에 들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정신을 차리고 나와 먼저 와있던 친구 그리고 이번 여행의 주인공(?)과 함께 마지막 일행을 맞이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과 만나 어느새 로컬이 된 서울 출신 거제인의 추천으로 섭장손수제비에 갔다. 맛있는 칼수제비, 전, 김밥, 볶음밥을 배불리 먹었다. 

로컬 친구는 일하러 가고 나머지 베짱이(?)들은 동백섬 지심도 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지심도로 향했다. 섬 이름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의 모양이 한자로 마음 심자를 닮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날이 흐리다 못해 비가 드문드문 내리는 날씨였다. 동백은 이미 대부분 낙화했지만 한적한 섬을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뭍사람을 놀라게 하는 가격의 음료를 한 잔씩 하고 천천히 주어진 시간을 누렸다. 

섬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4시가 다 됐다.

근처 마트에서 가볍게 장을 보고 친구의 새로운 일터에 들렀다. 커뮤니티 바 밗이란 이름의 공간은 친구의 취향이 곳곳에 묻어났다.

잘 구경하고 각자 쉼을 누리고 있을 때 베이킹에 재주가 있는 부지런한 친구가 잼쿠키를 해줘 맛있게 먹었다.

저녁으로는 넉넉한 양의 치킨을 먹었다. 유자 뮬이란 이름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곁들였는데 술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맛있는 주류였다. 사장님의 추천으로 바이엔슈테판 맥주까지 마시며 나름 과음했다.

부지런한 친구는 그 사이 우리 모두의 캐리커처를 그려 주었다. 능력도 출중하지만 그 능력을 주변에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못지않게 대단하고 고마웠다.

그렇게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아침을 맞았다. 아쉬움을 달래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양지암 조각공원은 애매하게 진 벚꽃만으로도 아름다웠다. 거제는 알면 알수록 더 매력이 많은 스타일인 것 같다. 거며든다...*

감사하게도 서로 취향이 겹치는 접점에 책이 있어 책방익힘이라는 카페 겸 독립서점에 들렀다.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큰 창을 비롯해 공간을 꾸민 탁월함에 감탄했고, 책을 고르는 안목과 소개하는 세심함에 감동했다.

공간이 준 훈훈함을 기억하며 다음으로 간 곳은 심해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빵과 커피를 즐기며 엄청난 오션뷰를 누렸다.

근처에 위차한 매미성은 어떻게 혼자 이런 지었을까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건축물이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시민이 자연재해로부터 농작물을 지키고자 쌓아올리기 시작한 벽이 이렇게 멋진 성으로 남았다.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은 공간이었다.

거제인과 헤어져 외지에서 온 여행자들은 알로하거제라는 편집숍에도 갔다. 나는 자석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참고 돌아섰는데 친구들은 무언가 한가득(?) 샀다. 개인적으로 일로 알게 된 동구밭 비누를 보고 반가웠다.

그렇게 짧은 거제 방문을 마치고 부산으로 향하는 2000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문병을 빙자한 여행으로 가까워진 섬에 개업 축하를 구실로 다녀왔다. 세월에 면역을 지닌 우정의 소중함을 되새겼고, 미처 볼 수 없던 얼굴이 끝끝내 마음에 걸렸다. 누렸던 시간에 대한 감사와 전할 수 없던 안부를 못내 간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운 시골을 찾아가는 명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