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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Feb 17. 2022

#4 2022.01.24

우울한 하루를 흘려보내는 밤 산책

어떤 이에게 MBTI는 일종의 종교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신봉하진 않지만 나름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16개의 성격유형 중 INFJ인데 타인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그런 것 같지만 오히려 내 마음은 잘 모를 때가 잦다. 특히 타인의 다가옴이나 나의 다가감이 있을 때면 정작 자기 마음을 잘 몰라서 때를 놓치거나 차라리 먼저 밀어내곤 했다. 지리멸렬했던 엇갈림을 버틸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언젠가 나아질 거란 막연한 믿음이었다. 하지만 30대가 되어도 여전히 어수룩한 모습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다. 오랜만에 내 마음도 잘 모르는 채로 어렵게 꺼낸 말이 무거워 지친 채 호수로 터벅터벅 나섰다.

혼자 삭이는 게 익숙한 사람조차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한 날이 있다. 분명 어딘가 비빌 언덕이 있을 텐데 자비 없는 우울은 약소한 사회성마저 말살시킨다. 얼마 되지 않는 용기를 짜내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나보다 훨씬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친 마음으로 나름의 위로를 전했다. 차악의 하루 덕에 차선을 다해 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형제에게 동시에 닥친 어려움에 괜히 더 뒤숭숭해져 기운 없이 집으로 향했다. 사실 평소와 다를 것 없던 길은 유독 더 어둡게 보였고, 호수는 쌀쌀하게 느껴졌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처럼 못난 마음 덕에 모든 게 버겁게 느껴지던 밤이었다. 그럼에도 오늘 이토록 차갑던 호수가 내일은 포근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게 삶임을 안다. 막연함에 빠지기보단 언젠가 마주할 무언가를 위해 다시 뚜벅뚜벅 걸어야겠다는 다짐으로 하루를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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