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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Feb 25. 2022

#6 2022.02.08

날씨에 속지 않고 계절의 진리를 좇는 순례자처럼

살다 보면 큰 시련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괜히 마음이 어려울 때가 있다. 노력을 통해 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자부하다가도 작은 돌부리에 휘청하며 한없는 자만을 깨닫곤 한다. 깨어지는 과정은 삶을 겸허로 이끌어 신앙에 기대거나 선현들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도록 돕는다. 고난은 인류에게 오랜 질문과 답을 남겼다. 기독교에선 감당할 만한 시련을 통해 한 사람을 정금같이 단련하는 과정으로 보기도 하고, 불교는 이 모든 건 마음이 지어낸 불행일지 모른다고 조언한다. 도가는 인위적인 것으로 부자연스러운 상태에 이르렀다고 바라보지 않을까. 평소보다 깊어진 고민으로 마음이 파도칠 때면 감히 고요한 밤과 잔잔한 호수가 부럽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밤의 호수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은 차분해지는 걸 느낀다. 잠잠해진 눈으로 요즘을 돌아보며 어쩌면 문제를 만들어내는 습관이 있는 건 아닌가 반성했다. 이어 떠올린 그 이전도 크게 다르지 않아 살짝 씁쓸하면서도 묘한 위안이 됐다. 내 안의 잔물결을 달래기 위해 찾은 호수는 하루 전만 해도 흐린 하늘 아래 달조차 구름에 가려 있었다. 그때는 그리 춥지 않은 날임에도 손끝이 아려올 정도로 서늘했고 녹아내린 얼음마저 서글퍼 보였는데, 단 하루 만에 맑게 반기는 것 같다. 어제 얼핏 초승달처럼 보이던 건 다시 보니 상현달이었다. 날씨와 기분은 참 자주 바뀐다. 한때의 변화에 속아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지. 그러거나 말거나 호수는 그새 더 녹아있었다. 하루하루 날씨에 속지 않고 계절의 진리를 좇는 순례자처럼.

#5 202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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