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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May 11. 2022

구옥과 부모님 그리고 노견과 바다

삶을 지탱하는 소소한 꿈과 소중한 시간들

건방일지 모르지만 나는 부모님의 헌신 덕에 두 분보다 많은 것을 누리며 산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레 내가 겪은 좋은 것들을 기회가 된다면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예전에 제주도 여행에서 친구들과 구옥 독채에서 묵은 기억이 좋아 부모님과 반려견, 사랑이 형에게도 나누고 싶었다. 기회가 되어 떠나게 된 양양 여행에서 에어비앤비로 구옥 독채를 빌렸다. 아담하고 깔끔한 집에 독립된 마당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어마어마하게 좋은 숙소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경험에 즐거워하는 두 분의 눈빛만으로도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작은 수고로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어 감사했다. 어쩌면 삶을 지탱하는 건 이런 따뜻한 순간들의 퇴적층이 아닐까 싶다.

이번 여행에서는 오래된 바람을 하나 더 이룰 수 있었다. 부모님에게 내가 구옥 숙소에서 묵으며 느낀 포근함을 나누고 싶었던 것처럼 반려견 사랑이 형에게는 바다가 가진 체취와 온기를 선물하고 싶었다. 나름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 그동안 몇 번 바닷가에 데려간 적은 있지만 해변이 좁거나 북적여 원하는 만큼 바다를 보여주지 못해 늘 아쉬움이 있었다. 일부러 도보로 바다에 닿을 수 있는 숙소를 잡아 부모님이 잠시 나가신 사이에 어르신을 모시고 근처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걸어서 5분 만에 해변에 도착했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가 거셌다. 사랑이 형이 긴장되고 추웠는지 처음엔 꽤나 떨었지만 나름 잘 걷고 코도 많이 킁킁거리며 점점 구경하는 게 느껴져 뿌듯했다. 존재만으로 소중한 사랑이 형이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해 줘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내가 18살일 때 별로부터 찾아온 사랑은 어느새 15년 가까운 세월을 동행했다. 그동안 별이 무지개다리를 건너 하늘로 돌아가고, 어느새 사랑이 형은 잔병치레가 잦은 어르신이 되었다. 그가 준 헤아릴 수 없는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여전히 한없이 사랑스러운 존재는 매일의 기쁨과 힘이다. 우리에게 몇 번의 계절이 남았을지조차 알 수 없지만 덕분에 오늘 하루도 미련이나 불안에 휘둘리지 않고 조금 더 사랑하곤 한다. 진정한 사랑은 최선을 다해 주어도 결국 더 많이 받는다는 걸 일깨워 준, 스승님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부디 오래오래 곁에 머물러 주길 염원하며 산책을 즐겼다.

이튿날, 해돋이를 보기 위해 마주한 새벽 공기는 은근 쌀쌀했다. 동트는 시간인 5시 30분에 맞춰 바닷가로 나섰다. 은근 구름이 있어 안 보일 수도 있겠다고 짐작했는데 저 멀리 수평선 위에 붉은 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이제 고작 삼십 대이지만 어느새 늙음이 뚜렷한 부모님과 반려견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이 언젠가의 상실을 벌써부터 예감하게 한다. 때로 불안이나 허무에 잠식되기도 하지만 결국 예측할 수 없는 삶 앞에 할 수 있는 건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임을 안다. 하물며 태양도 매일 새벽녘에 출근하더라...* 장시간 이동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소소하게 품어온 몇몇 꿈 덕에 소중한 행복을 누린 주말이었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 준 부모님과 사랑이 형의 존재에 다시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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