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메릴번 인근의 풍경
노팅힐의 색을 지나 메릴번 쪽에 들어서자,
런던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정돈되어 있고 단정했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풍경은 없었다.
사진으로 담고 싶어지는 색감도,
과장된 개성도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체인점 간판, 현상소,
배달 자전거 같은 것들이 거리를 덮고 있었다.
이 동네는 ‘보여주기’보다 ‘살아가기’에 가까워 보였다.
추천 맛집
런던 일정이 길어지면서 별식이 땡겼다.
인터넷 추천을 믿고 일식집을 찾았다.
중심부에 가까운 동네에서 생기는
그 단단한 예감—“여긴 다 잘할 거라는” 기대.
점심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실망은 맛보다 예감의 붕괴에 가까웠다.
그 순간 나는 음식보다 추천을 먼저 의심했다.
추천은 정답이 아니라 상대적인 평가라는 것.
도시는 언제나 ‘좋다’와 ‘괜찮다’ 사이
어딘 가에 머문다는 것.
뜻 밖의 조우
실망한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 건,
뜻밖의 장면이었다.
바깥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낮설은 대화, 물 담배 연기.
누가 어디서 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말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여행’보다 ‘여유’가 먼저 보였다.
큰 거리로 나오자 풍경은 다시 바뀌었다.
주황색 배달 가방이 한 덩어리로 놓여 있고,
사람들은 휴대폰을 내려다본 채 서 있다.
기다림이 곧 일상인 표정이 보인다.
뒤로는 빨간 2층 버스가 지나가고,
프레임 어딘 가에는 맥도날드의 ‘M’이 걸려 있다.
그날의 사진에는 낭만 대신 도시의 운용이 찍혔다.
이 동네가 어디인지보다,
사람들이 어떤 속도로 하루를 버티는 지가 더 궁금해졌다.
이주민 삶의 현장
그래서 버스를 탔다. 목적은 분명했다.
이 지역의 소수민족 문화를 좀 더 보고 싶었다.
영어가 널린 거리에서, 다른 언어의 간판과
상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알게 된다.
간판은 장식이 아니라 안내라는 것을.
간판, 상점, 사람, 대화는
“여기서 살아도 된다”는 신호라는 것을.
버스 창문 너머로는 사람보다 표면이 먼저 들어온다.
영어와 아랍 문자가 한 화면 안에 나란히 선다.
부딪히지 않는다.
그냥 같이 있다.
여기는 관광지가 아니다.
생활의 현장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붓한 식사 모임을 본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음식이 아니라 표기다.
언어가 남아 있고, 대화가 남아 있고,
하루가 계속된다는 증거.
그 식당이 마침표였다.
그날 내가 보고 싶었던 건 맛집의 정답이 아니었다.
도시가 실제로 작동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장소를 찍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장소를 버티게 하는 방식을 찍고 있었다는 것을.
호기심은 좌절됐지만, 삶의 정취는 느꼈다.
각주(출처)
1. Edgware Road 남쪽 구간이 중동 음식/시샤 카페로 유명하고 “Little Cairo”, “Little Beirut” 같은 별칭으로도 불린다는 맥락 Edgware Road - Wikipedia
2. 런던의 아랍 커뮤니티/이주 흐름을 큰 파도(1940s, 1960s, 1970s, 1980s 등)로 설명하며 Edgware Road 주변을 언급하는 글 1. BBC - London - Faith - Arabic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