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는 승진할 줄 알았는데, 연봉이 오를 걸 예상했는데 그대로다. 지금 회사는 계속 다녀야 할까? 이직을 해야 하나?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고, 요즘 하는 일마다 막힌다는 생각이 들고 답답한 일들 투성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당신은 무엇으로 답답한 마음을 위로하는가? 선배를 찾아 조언을 듣기도 하고 친구와 고민을 나눌 수도 있다. 타로나 점을 보며 마음을 위로할 수도 있고 성당에서 기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까? 글쎄. 몇 년 후 사람들은 챗GPT에 물어보며 해답을 찾지 않을까? 점을 보거나 기도로 응답받는 대신, 세계의 짐작도 안 될 만큼 많은 정보들의 통계를 우리에게 알려주며 그 남자와 헤어지라고 독촉하진 않을까? AI는 지금보다 더 똑똑해질 것이고 우리는 네이버 검색 이상의 의존도로를 보이며 더 많이 질문하고 의견을 따를 것이다.
챗GPT가 세상에 소개되자마자 떠들썩하다. 약 40일 만에 가입자 수가 1000만이 넘었으며 지난 1월에는 월간 황성이용자수 숫자가 1억 명을 넘었다. 얼마 전에는 챗GPT로 쓴 자기 계발서가 베스트셀러로 서점 진열대 한 칸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직접 사용해 보니, 놀랍다. 빠른 시간 안에 생각을 정리하고 복잡한 질문에 대한 답변도 순식간이다. 내가 그 글을 쓴다면 하루는 걸렸을 것이다. 사전 지식을 찾고 생각하고 글을 구상하고 오래 고민하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을 텐데 챗GPT는 거침없다. 호기심에 여러 질문을 하다가 아예 창을 띄워두고 수시로 여러 질문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직 챗GPT의 모든 내용을 신뢰할 수준은 아니라 검증은 하지만 글을 읽고 영감을 얻을 수는 있다. 생각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어서 확실히 시간이 줄어든다. 잘만 활용한다면 지금보다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반면 계속 의존하게 된다. 과거에는 생각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면 그런 기다림을 해결해 줄 챗GPT를 찾게 된다. 챗GPT의 놀라운 능력이 반갑기도 하면서 불안감도 든다.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한 일처리를 하는데 이러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 아니야?라는 위기감은 그냥 하는 엄살이 아니다. 인간보다 똑똑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림도 소설도 기사도 음악도 뭐든 AI가 사람들 마음에 더 큰 감동을 준다. 앞으로 인류에게 예술가가 있을지 의문이다.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강사이다 보니 생각이 깊어진다. 결론은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느냐 개성 없이 따라가느냐의 차이이다. 챗GPT는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상실이 될 것이다.
1800년대 카메라의 등장으로 미술계는 큰 지각변동을 격었다. 카메라는 챗GPT의 등장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그림은 카메라의 정확성을 따라갈 수 없고, 화가는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예술가에게 카메라의 등장은 상실이었지만 피카소는 달랐다. 입체파 화가인 피카소는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풍으로 그림을 분석하여 그렸다. 활동시기와 사후에 모두 인정받으며 부와 명성을 쌓은 몇 안 되는 화가인 피카소. 차별화된 자신만의 개성이 있기에 카메라의 등장은 기회가 되었다.
챗GPT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사용하다 보면 챗GPT의 결과물을 자신의 창작물이라고 여기고 싶은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이런 유혹을 벗어나 나만의 개성을 알고 유지한다면 우리에게 더 큰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