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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와 둘째의 시간은 다르게 간다.

by 쿠리

첫째가 태어나기 전 육아를 편하게 해주는 여러 육아템들을 찾아보며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층간소음을 예방하는 매트부터 젖병, 분유, 아이가 누워 잘 침대 등 준비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충분히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계였습니다.

아이가 없던 신혼 땐 집에 시계가 없었습니다. 핸드폰이나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면 되었으니까요. 굳이 집에 시계가 없어도 사는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제일 불편했던 것이 바로 시계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분유를 먹여야 할 시간, 잠을 자야 할 시간, 언제 소변을 보고 언제 대변을 보았는지 기록해 두려면 시계가 필수였습니다. 일일이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기록하는 게 너무 번거로웠습니다. 그래서 거실에 새벽에 불을 켜지 않고도 잘 볼 수 있도록 LED시계를 설치했습니다.




느리게 가는 첫째의 시간

시계를 설치하니 시간을 언제나 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시계를 자주 쳐다보았던 탓일까요? 첫째를 기를 때는 시간이 참 더디게 갔습니다. 아직 이것밖에 안지났네. 시계를 볼 때마다 '언제쯤 재워야 할까?', '언제 밥을 먹여야 하지?', '언제쯤 돌아올까?' 이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첫째는 처음 가보는 낯선 길이라서 그런지 잘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언제쯤 걸을까?', '언제쯤 이야기할까?', '언제쯤 스스로 하는 일들이 많아질까?', '언제쯤이면 스스로 잠들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손이 덜 갈까?'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빠르게 가는 둘째의 시간

그에 비해 둘째는 훨씬 빨리 커가는 느낌입니다.

아이 둘을 함께 보다 보니 훨씬 정신이 없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둘째는 매번 볼 때마다 언제 이렇게나 큰 건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첫째를 기를 땐 사진도 많이 찍어주고 동영상도 많이 찍어주었습니다. 100일, 200일이면 사진을 꼭 찍어주었고, 함께 가족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둘째는 정신이 없었던 탓일까요? 사진을 찍어주어야겠단 생각만 하고 200일, 300일이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둘째는 이미 한 번 어설프게나마 가본 길이라 그런지 이쯤이면 걷겠네, 이쯤 되면 말하겠네 하며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째와 둘째가 기질이 달라 모든 것이 똑같진 않겠지만 기본적인 발달은 비슷합니다. 둘째가 여자 아이라 그런지 첫째보다는 더 빠르게 커가는 느낌입니다.




빠르게 가는 첫째의 시간

38개월이 지난 첫째는 이제 밖으로 나가 뛰어놀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첫째와 함께 산책을 가면 시간이 참 빨리 갑니다.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가면 13시를 훌쩍 넘어 집에 돌아오곤 합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되었지 하면서 부랴부랴 점심을 준비합니다.

이젠 첫째와 갈 수 있는 곳도 많아져서 함께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가버리곤 합니다. 가끔씩 훌쩍 큰 첫째를 보면 '조그맣던 아기가 언제 이렇게 많이 컸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참 시간이 빠르다고 느낍니다.


느리게 가는 둘째의 시간

빨리 커가는 둘째이지만 또 어느덧 훌쩍 큰 첫째와 비교해 보면 아직 갈길이 먼 느낌입니다. 언제 오빠처럼 클지 생각하면 아직은 한참 남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버리는 게 아쉽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이 순간이 지나가버리면 다시는 보지 못할 모습이니까요. 얼굴을 마주치면 "아빠~"하면서 방긋 웃는 둘째를 보면 오히려 느리게 가는 시간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같은 10분이라도 화장실이 급한 사람에겐 몇 시간처럼 느껴지고, 친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사람에겐 아주 짧게 느껴집니다. 시간은 절대적이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느낌을 느끼고 있는지에 따라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듯합니다.

중요한 건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만 온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든, 빠르게 느껴지든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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