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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신 아파줄 수 있다면

by 쿠리


첫째가 태어난 지 4개월쯤 된 무렵 한번 크게 아픈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아팠던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첫째 날, 토요일

토요일 오전 첫째는 쿠션 위에 누워 많은 웃음을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깔깔거리면서 웃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잘 보내고 난 후 아이를 재우고 같이 잠이 들었습니다. 밤중 수유를 하려고 아이를 안았는데 몸이 뜨끈뜨끈 했습니다. 집에 있던 체온계로 체온을 재어보자 40도가 넘어갔습니다. 아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힘없이 축 쳐져있었습니다. 다행히 아이가 아플 상황을 대비하여 사둔 해열제가 있어 4개월 아이의 용량에 맞추어 먹였습니다.(대부분의 해열제는 6개월 이후 섭취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열이 났을 때 대처방법을 미리 알아두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부랴부랴 검색해 보니 아이의 옷을 벗기고 손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열이 나는 아이 옷을 벗기고 손수건으로 몸을 닦으니 아이는 불편한 느낌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지금이 아침이라면 병원이라도 데려가볼 텐데 지금은 깜깜한 새벽이었습니다. 근처 큰 병원의 응급실이라도 가볼까 했지만 30분 내로 갈 수 있는 큰 병원도 없었습니다. 응급실에 데리고 가봐야 해열제를 처방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가 없다는 말에 병원에 데려가는 것도 망설여졌습니다. 마침 119에 의료상담 제도가 있다고 하여 태어나 처음으로 119에 전화를 걸어 의료상담을 신청했습니다. 의료상담을 했지만 보리차를 먹이거나 손수건으로 닦아주라는 형식적인 대답 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자 아이의 열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아내와 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이 옆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해열제의 효과가 떨어졌는지 열이 다시 40도 넘게 나기 시작했습니다. 해열제에는 4~6시간마다 복용하라고 되어있었는데 최소 시간인 4시간이 지나 다시 해열제를 복용했습니다. 해열제를 복용하고 아이는 열이 떨어졌고 그렇게 아침이 되었습니다. 잠을 설쳤지만 그래도 아이의 열이 떨어져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 날, 일요일

월요일이면 근처 소아과라도 가보았을 텐데 일요일이라 문을 연 병원이 없었습니다. 오늘 하루 괜찮기를 바라며 잘 돌봐주기로 했습니다. 첫째도 어젯밤을 설쳐 피곤했는지 방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을 먹던 밥을 먹던 도중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얼른 달려가니 아이는 얼굴과 팔의 색이 새파래지면서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마음에 아이를 챙겨 앉고 근처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응급실로 가는 도중 차 안에서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습니다. 근처 소아 전문 병원이 없던 터라 병원 응급실에 가더라도 해열제 밖에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히려 응급실에 가면 아이가 더 힘들어할 것 같아 월요일에 소아과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자는 마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새벽도 토요일과 같이 열이 오르락내리락거리는 아이와 함께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셋째 날, 월요일

다음날 아침 체온계에 42도가 찍혀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세포의 생존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42도가 견딜 수 있는 최고의 온도라고 합니다.)

체온계가 고장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안고 서둘러 근처 소아과로 갔습니다. 근처 소아과에서는 주변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시 아이를 안고 종합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소아과의 연락이 있어서 그런지 대기번호보다 빠르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증상을 이야기하고 아이를 살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큰 열이 나는 걸로 봐서 요로감염과 패혈증이 의심이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패혈증이란 병이 어떤 병인지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패혈증은 세균에 감염되어 몸이 미생물에 대항하면서 전신에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질병이라고 합니다. 요로감염으로 인해 온몸에 병균이 퍼졌고 혈관 내에 염증반응을 일으킨 것이지요. 급성으로 이어져 긴급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 사망에 까지 이를 수 있는 무서운 병이라는 말에 정말 식은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4개월에 요로감염에 패혈증까지 오는 경우는 드물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둘러 입원절차를 밟고 항생제를 투여했습니다. 4개월 아이의 손에 굵은 주사 바늘을 꽂을 때 옆에서 지켜보는 심정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정말 대신 아파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10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체온이 서서히 떨어졌고 더 이상 열이 나지 않을 때 아이와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있다면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한 마음이 듭니다. 조금이라도 대처가 늦었다면 정말 큰일 나진 않았을까 하고 안도합니다.

아이가 아팠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있다면’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님들이라면 아마 공감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뭐가 불편한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는지, 말할 수 없는 아픈 아이를 곁에 두고 있으니 정말 막막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 아이가 이겨낼 거라는 믿음으로 곁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대신 아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그렇게 될 수는 없으니까요.


부디 작게는 아파도 크게는 아프지 말길

아이가 항상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플 때가 허다합니다. 아직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들의 경우 조금만 피곤해도 열이 쉽게 오르기도 하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면 유행하는 전염병은 모두 걸려서 오기도 하지요. 때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는 날보다 아파서 집에서 쉬는 날이 더 많기도 합니다.

앞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또 마음 조리는 일들이 많이 생기겠지요. 그래도 부디 큰일이 아닌 아이가 견딜 수 있는, 이겨낼 수 있는 일들만 생기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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