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38개월, 10개월의 두 아이는 아빠 껌딱지입니다.
잠시라도 소파에 앉아 쉬려고 하면 놀아달라고 달려오는 첫째,
잠시 설거지라도 하고 있으면 기어와 안아달라고 다리를 붙잡고 있는 둘째.
두 아이에겐 부모가 이 세상의 전부이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입니다.
몸이 피곤하고 힘들면 잠시라도 떨어져 혼자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계속 안아달라고, 놀아달라고 달라붙는 아이들을 보면서 다르게 생각을 해봅니다. 불과 이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요. 지금은 이렇게 엄마, 아빠가 전부인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면 또 부모에게서 점차 멀어지는 시기가 오겠지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부모와의 관계보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시기가 올 테고, 사춘기가 오면 또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자립할 준비를 합니다. 지금이 힘들지만 아이들과 찐하게 놀 수 있는 시간도 불과 10년도 채 남지 않은 셈이지요. 나중에 사춘기가 되어 저와 이야기도 하지 않고 놀지도 않으려 한다 생각하니 뭔가 벌써 서운할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긍정의 훈육>이란 책에서 한 구절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떠나보내는 것이 시작된다. 아이를 놓아주어야 하며 자녀를 새로운 기술을 익힐 능력을 가진 개별적 존재로 바라보아야 한다. 실수로 말미암아 불편함을 겪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들러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을 자립을 도와주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부모로서의 역할은 내 아이가 부모의 도움이 없이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사회에서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갓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밥 먹는 것,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 잠자는 것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해야만 합니다.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납니다.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고, 스스로 양치를 할 수 있고,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있지요. 부모는 때가 되었을 때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떠나보내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과정에서 잘 되지 않는다고 울고, 힘들어하더라도 지켜보아야만 합니다.
저도 의식적으로 아이를 돌보면서 '아이가 이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인가?'라고 물어보려고 노력합니다.
어느 날 아이에게 신발을 신겨주며 문뜩 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어설프지만 신발을 신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계속해주고 있었거든요. 사실 아이가 신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게 사실은 부모가 마음 편한 일이거든요. 빨리 신발을 신고 나가야 하는데 신발을 세월아 네월아 하고 신고 있으면 답답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인데 부모가 계속해주면 결국 아이는 그 능력을 배울 기회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부모가 다 해주고 있는 모습들로 지적을 받는 모습들이 나오곤 합니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해서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이가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뺏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부모가 대신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일들을 많이 겪습니다. 아이가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다 보니,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모나지 않게 컸으면 하는 게 부모님의 마음이겠지요. 모든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합니다. 다만 사랑한다는 이유로 하는 일들이 정말 아이를 위한 일인지는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면 부모가 대신해주려 하고, 부모가 나서서 해주려고 합니다. 아침에 아이의 책가방을 매고 학교 현관 앞까지 아이를 바래다주는 부모님도 있고, 학교에서 교우관계에 갈등을 겪으면 선생님에게 상담을 신청해 빠르게 아이의 불편한 점을 해결해주려 합니다. 학교에서의 숙제도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면 선생님에게 숙제를 줄여달라고 민원을 넣기도 하지요.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의 마음은 아프고 찢어지겠지요. 부모가 되어보니 그 마음은 누구보다 공감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칭얼거린다고 모든 것을 도와주는 것은 오히려 자립을 방해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가 해결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아이들이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때까지 힘들어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것 또한 부모의 역할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