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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없으면 행복할까?

넘치는 사랑과 과잉보호 사이

by 쿠리

넘치는 사랑과 과잉보호의 사이


아이의 부모가 되어보니 정말 세상에서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내가 배고파도 아이의 밥을 먼저 챙겨주고, 아이가 울면 조금이라도 그 원인을 제거해주려고 합니다. 부모가 되어보니 너무나도 소중한 내 아이가 힘든 일을 겪지 않고 컸으면 하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어하는 상황을 서둘러 피할뿐더러, 그런 일들로 인해 아이가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경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려는 경향은 자칫 과잉보호로 이어지곤 하지요.


요즘 교권저하와 관련한 문제들이 거론되면서 부모들의 민원으로 힘들어하는 현직 교사들의 모습들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학교에 민원을 넣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아마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는 내 아이가 고통받지 않고 행복한 일만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학교는 다양한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입니다. 더 험난한 사회에 나가기 전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를 익히고 배우는 곳입니다. 다양한 아이들이 어울려 살아가다 보니 다양한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요. 따돌림 문제부터 아이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 아이가 학교에서 다치는 문제, 작은 좌절들을 겪게 됩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로 힘들어하면 부모의 마음은 찢어지겠지요. 아이가 힘들어하는 일이 자칫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부모가 대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합니다. 학교에 전화하고 선생님에게 전화하고 교육청이든 고소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합니다. 아이 주변의 온갖 풍파를 막아주며 온실 속에서 자라는 화초처럼 키우려고 하지요.


온실 속의 화초는 행복할까?

흔히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으면서 곱게 자란 사람을 보고 흔히 온실 속의 화초라고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부모가 뒷바라지를 다해주고 아이가 힘든 일을 모두 처리해 주면서 아이는 편한 길만 걸으면서 어른이 되어갑니다. 과연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행복할까요?

우리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내던져지면 더 이상 온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더 이상 부모님이 나를 대신해서 어려운 일들을 해줄 수도 없습니다. 몰아치는 온갖 풍파를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 내야 하지요. 온실 속에서 자라다 밖으로 나온 화초는 갑자기 몰아치는 풍파를 견뎌낼 힘이 있을까요?


고통이 없으면 성장도 없다


요즘은 모두들 행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최고의 선이고 힘든 일은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하지요. 고통은 나쁜 것, 피해야 하는 것, 트라우마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모두 없애버리려고만 합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나쁜 것일까요?


예로부터 내려오는 고통과 관련된 다양한 명언들이 있습니다.


고진감래 -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NO PAIN, NO GAIN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고통이 없으면 진정한 즐거움은 없다 (헬렌 켈러)

고통 없이는 배울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


바람을 맞은 나무가 뿌리를 깊게 내리고 더 큰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듯이 고통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듭니다.


아이들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면 아이가 상처받을 일은 없겠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방법도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와 의견이 달라 다투고 싸워보아야 문제가 생겼을 때 양보하거나 합의하는 방법들을 배웁니다. 또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폭력적으로 대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런 친구와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배우게 됩니다. 부모가 나서서 그런 친구와 격리시키고, 학교폭력으로 신고해서 벌을 주는 것이 당장 피해는 줄일 수 있어도, 아이가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를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어느 정도는 부모가 개입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겪고 또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 또한 분명 성장할 테니까요. 부모가 개입해서 대신해준다면 아이와 부모의 마음은 편해질지 모르겠지만 배움과 성장의 기회는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방관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아이가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고통스럽겠지만 지켜봐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결방안을 함께 고민해주는 훌륭한 조어자가 될 수도 있겠지요.

부모도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고통스럽습니다.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아파한다면 힘들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부모도 그런 고통을 감내해 내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도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마음을 다잡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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