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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죄송합니다.

고인이 되신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by 쿠리

7월 18일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신규교사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너무나도 비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년 차 신규교사를 죽음으로 내몬 현실이 안타까웠고 또 그동안 선생님 혼자 교실에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지속해 왔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수많은 교사들이 그 교사의 죽음에 애도와 조문을 표하고 그 현실에 공분을 사는 것도 그 교사가 겪었던 힘들었던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또한 교실에서 비슷한 상황들을 겪었기에 그 교사가 견뎌내야만 했던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학부모가 갑질을 했다, 학부모의 집안이 정치권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기사가 터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학교와 교육청은 교사의 죽음을 덮으려고 했다, 경찰이 유서를 공개를 안 한다, 유족들에게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루머 등이 떠돌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이에 대한 성명문을 발표하기도 했지요.

1. 학년과 담임은 본인의 희망으로 배정했다.

그냥 이 문구만 보면 그 선생님이 희망을 해서 그 학반을 맡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교사가 학년초 학급을 어떻게 정하는지 알면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들은 학년초 업무와 학년 희망서를 작성하고 대부분 1 희망에서 6 희망까지 작성하게끔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기피하고 싶은 학년이라도 6 희망까지 쓰면 희망서에는 들어갈 수밖에 없지요. 희망서에 쓰여있으니 본인이 희망해서 주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학기 초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명부를 뽑습니다. 그때가 가장 긴장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어떤 학생들을 뽑느냐에 따라 일 년이 갈리거든요. 요즘은 한 반에 3~4명씩은 힘든 아이들이 있어서 그 마저도 소용이 없긴 합니다.


2. 고인의 담당업무는 학교폭력 업무가 아닌 나이스 권한 관리 업무였으며, 이 또한 본인이 희망한 업무입니다.

본인이 희망했다는 말과 학교폭력업무가 아닌 말로 학교에는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급에서 발생한 학교폭력사안은 담임이 맡게 되어있습니다. 담임과 학교폭력 담당교사가 함께 사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업무를 맡게 되어있습니다. 나이스 배정업무는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잡무일 뿐이고, 담임업무 안에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학부모와의 상담은 물론 상담을 하게끔 되어있습니다. 교사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하지 않은 그런 상황 속에서 양쪽 부모님 사이에서 말을 전하며 진땀을 빼곤 합니다. 혹시나 상대방 학부모의 말을 잘못 전하거나 전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폭언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교사는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기사에 보니 연필로 얼굴을 긁은 사안에 대해서 학교 교무실로 찾아와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는 미뤄 짐작이 됩니다.


3. 학교폭력 신고 사안이 없었다.

학교폭력신고란 교육청에 정식으로 신고된 사안을 말합니다. 학급에서 일어나는 다툼과 싸움으로 인한 상담을 학교폭력신고라고 하지 않습니다. 연필로 얼굴을 긁은 사안도 분명 학교폭력 신고까지는 가지 않았던 일일 겁니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학교에서는 되도록이면 학교폭력사안까지 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아이들의 다툼이란 게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일방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없습니다. 대부분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고,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초등 저학년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둘 다 잘못했는데 학교폭력사안으로 신고가 되고 접수가 되면 교육청에서 열리는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가서 가해자 피해자를 나누고 처벌을 결정합니다.

선생님들은 교실내에서 학교폭력신고 되지 않은

수 많은 다툼과 싸움을 중재라고 처리합니다. 아이가 폭력적으로 행동하고 버릇없게 행동해도 교사는 단호하게 지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마저도 아이에게 말이 먹히면 다행이지만 수천번 수만번 지도해야 바뀐다고 하나요.(교실에서 실제로 그렇게 지도하면 수업을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집에 가면 부모에게 자신이 잘못한 것은 쏙 빼고 피해본 것만 이야기하지요. 부모들은 아이들의 말이 전부 사실인양 화가 나서 선생님에게 전화를 합니다. 퇴근후에도 저녁 시간에도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옵니다. 퇴근후에도 맘편히 쉬지 못하지요.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됩니다. 교사는 중간에서 양쪽 부모님 어느 한 쪽 편을 들어 줄 수 없이 어르고 달래며 감정쓰레기통이 되어야만 해요.


4. 해당 학급에서 발생했다고 알려진 사안은 학교의 지원하에 마무리가 되었다.

아마 교사의 죽음이 가장 큰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학부모의 민원으로 교사가 목숨을 끊었는데 그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학부모가 있을까요? 있다면 정말 문제겠지요.

수정된 가정통신문에서는 삭제된 내용입니다.


5. SNS에서 거론되고 있는 정치인의 가족은 이 학급에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정치인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방법도 사실인지 아닌지 궁금하지도 안습니다. 정치인이든 아니든 학부모가 교사에게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하지요. 강남의 서초구 대한민국에서 내노라는 많은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사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사유재산이 발생함에 따라 계급이 생기고 왕과 귀족, 평민과 노예가 생긴 것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헌법에만 평등이 명시되어 있을 뿐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모는 가족이 지닌 권력을 등에 업고 선생님에게 어떤 태도로 대했는지에 대해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밝혀야 합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도 없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기에 성급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학교 교실 창고에서 목숨을 끊은 그 교사는 다른 곳이 아닌 학교 교실에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억울하고 비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간혹 개인사 이야기를 꺼내면서 개인적인 일로 힘들어서 자살을 선택했다는 기사를 보곤 하는데 만약 개인적으로 힘들었다면 굳이 죽음의 장소를 학교로 선택하지 않았겠지요.


최근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기사부터 악성 학부모의 민원이 심각하다는 등의 뉴스를 자주 접하곤 합니다. 그만큼 교권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겠지요. 제가 현장에 있으면서도 교권이 추락해 가는 느낌은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흔히 선생님을 '돈 없는 연예인'이라고 지칭하곤 합니다. 돈은 연예인처럼 많이 벌지 못하는데 온갖 가십거리에 휘말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학교 근처 카페에 있다가 보면 부모님과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선생님 이야기들을 나누곤 합니다.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잘 본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을 험담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지요. 아이들은 옆에서 부모님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그대로 듣습니다. 과연 그 아이들에게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차오를까요?


아이를 보면 부모가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학급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선생님에게 존경을 표하고, 다른 아이들을 배려하며 생활을 잘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부모님과 상담을 해보면 부모님의 말투에서 선생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웁니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인재의 육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연자원도 기술도 아무것도 없던 나라에서 이렇게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우수한 인재들과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윗세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저출산 문제와 더불어 학급에서도 문제아들이 늘어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똑똑한 아이가 인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부만 잘하는 아이는 인재가 아닙니다. 행복하고 인성이 바른 아이들이 정말 우리나라에 필요한 인재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공교육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튼튼한 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정교육이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굥교육은 한계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온갖 결핍과 문제행동을 일삼던 아이가 8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어면 교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영향력은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교사에겐 이마저도 지도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상태지요. 예전의 교사들은 사명감을 갖고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가르치고 바른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을 했다면, 요즘에는 몸을 사리기 바쁩니다. 잘못하면 아동학대니, 학부모 민원이니 본인에게 불똥이 떨어지거든요. 오히려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에게도 소극적으로 대처합니다. 교권이 떨어지고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무너진 공교육에서 어떻게 인재를 키워낼 수 있을까요.


이야기가 잠깐 샜습니다.

서초구의 초등교사의 죽음이 수많은 교사들의 공분을 사는 이유는 바로 모든 교사들이 한 번쯤은 겼었던, 그리고 겪게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만나기 싫어도 다음날이면 학교 교실에서 만나야 하고, 문제행동을 일으켜도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아이들이 폭력적으로 행동하면 교사라는 이유로 참고 인내해야 하고, 자칫 화를 못 이겨 말실수라도 하면 아동학대가 되어버리고, 수업에서 분리시켜버리려고 하면 학습권 침해라며 걸고넘어지고, 그렇게 교사들은 교실에서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서초구 선생님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정말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억울함과 힘듦을 알리고자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요. 정말 너무 힘들었다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았어도 되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전태일,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과 이한열,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도 비슷한 마음이었을까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말처럼 안타까운 한 초등교사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어 교권회복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교원단체로부터 계속해서 주장했던 말이지만 정부에서는 실효성이 없는 대책들만 내놓았지요. 교사니까 참고 인내해야 한다. 교사의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해야 한다면서 교사의 열정을 강요해 왔습니다. 이 일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선생님을 죽음으로 이끈 원인에 대해 철저하게 진상규명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어떤 책임을 지더라도 돌아가신 선생님에게 사죄를 받을 길은 없지만요.


같은 교직에 있으면서 예전부터 교실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어왔으면서도 일 년, 한 학기, 하루하루를 꾹꾹 참고 넘겨왔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부디 떠나간 곳에서는 마음고생 없이 편히 쉬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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