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쁜손 Jun 07. 2021

화성에서 온 아들과 금성에서 온 엄마.

 마루가 보고 싶다. 엉뚱한 상상이지만 마루가 말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무뚝뚝한 아들 대신 귀염둥이 상냥한 애교 덩어리 견공과 수다라도 떨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이렇게 황당하지만 진심 담긴 소원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2주 전에 다녀갔는데 고 녀석 얼굴이, 나를 향한 절절한 애정공세가 눈 앞에 떠오르며 보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든다.

 어제 아들과 전화하다 맘이 상해서 전화를 툭 끊고 말았다. 자식 하나 있는데... 아들들의 특성인지 몰라도 엄마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무뚝뚝하기 그지없고 한마디로 속 터지게 무심하다. 통화해도 길어야 5분인데 좀 상냥하면 좋으련만 어제는 초저녁인데도 졸리다고 통화를 빨리 끊고 싶어 하는 티를 팍팍 내서 그동안 참고 참았던 서운함이 폭발해버렸다.

 '내가 이젠 연락을 먼저 하면 엄마가 아니다.' 속으로 굳은 결심을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서운함을 떠나 노여움마저 드는 것이 가슴에 스크래치 하나가 깊게 남았다.

 

 어릴 적은 세상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겠다 싶게 상냥하고 정 많은 아이였는데... 꽃을 선물하기도, 겨울엔 붕어빵을 가슴에 품고 와 내게 내밀던 자상한 아들이었는데...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세상 살기가 점점 각박하고 팍팍하게 변해 가니 아들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변해 가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점점 눈에 띄게 살가운 아들에서 무뚝뚝한 아들로 변해가니 그러려니 하는 마음 뒤로 솔직히 섭섭함도 커져감을 부인할 수 없다.



 아들은 다 자라면 그냥 동포라고. 해외에 있는 아들은 해외동포라고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이 이제는 가슴에 확 와닿으며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젊었을 때 남편과의 어그러진 사이를 회복하고 싶고 이해해보려고- 저자는 기억 안 나지만  '화성남자와 금성 여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남녀의 차이-같은 언어라도 그것에 반응하는 남녀의 극명한 차이를 제법 디테일하게 다뤘다. 타고난 차이와 문제 해결 방법. 각자의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 등 우리가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왜 남녀가 서로를 이해 못하는지에 대해서 나름 명쾌한 분석을 해 나와 다른 성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아들 이기전에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라 하나의 인간으로, 남자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에- 가끔씩 그만의 동굴로 들어가면 그런가 보다 하고 기다려 주곤 했는데... 보고 싶은 마음에 어쩌다 연락이라도 하게 되면 뚝뚝하기 그지없고 단답형의 대답만 하니 속이 터져도 내색을 안 했는데... 어제 지금까지 기다려주고 참아주는 엄마 캐릭터를 던져 버리고 욱하고 말았다.

 내가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효도까지는 요즘 세상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고, 그저 저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뿐인데 이런 엄마 마음도 몰라주고 퉁명스러운 아들이 한없이 야속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보니 속이 상해 일손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동생한테 전화를 걸어 아들 욕을 구시렁댔더니 짧고 굵게 "아들은 그냥 내버려 두어~ 아들한테 뭘 바래~~" 하고 결론을 내려준다.  가만 보면 아빠들이 딸 바보이듯-그러고 보니 주위를 보아도-엄마들의 아들 사랑은 좀 애틋한 짝사랑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살가운 아들이 만에 하나 있더라도 애인 생기면 엄마한테 쏟았던 관심과 사랑은 자연스레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난 그거야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고 더욱이 우리 아들이야 꾸준히 연애를 쉴 새 없이 해온 인물이라 잘 알고도 남는다.

 단지 내가 섭섭하고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좀 상냥하게 귀찮은 티 덜 내고 전화 하나 받아주는 거 그것뿐인데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들에게 놈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마음은 잔뜩 흐렸는데 날씨는 화창하니-집을 좋아하던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반짝반짝 빛나는 날이다. 꿀꿀한 맘도 달랠 겸 산책도 할 겸 평소 체중관리, 건강관리 때문에 차마 못 먹는- 달콤한 디저트를 사러 밖으로 나왔다. 집 가까이 5분 거리에 맛있다고 소문난 베이커리가 있어 그곳으로 향한다. '오늘만 먹고 낼부터는 다시  끊어야지. '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빵집의 문을 열었다.

 점심을 안 먹은 탓일까. 여기저기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아 보이는 비주얼의 빵들이 여기저기서 나를 보고 손을 든다. 그 유혹 한가운데에서도 마지막 남은 이성이 나를 각성시킨다. 마음은 버터, 설탕 듬뿍 든 페이스트리나 조각 케이크인데 머리에서 그중 칼로리 낮아 보이는 건강빵을 집으라 명령한다. 잠시 머뭇대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입의 즐거움을 택한다. 몽블랑이란 페이스트리와 딸기 타르트 한 조각을 주문했다.


 허기진 배에 달콤한 타르트와 진한 버터의 풍미가 느껴지는 빵을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이랑 먹다 보니 -평소 같으면 느끼하다고 손사래를 쳤을 텐데 -어느새 그늘지고 삐죽 댔던 마음이 다시 편안하고 느긋해진다.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이해해야지. 난 금성인이고 아들은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니 당연히 소통이 안되지~ 그럼 그렇고 말고~~ 걔가 피곤해서 그래. 너무 피곤해서 그렇겠지... 봐주자. 속 넓은 내가 흐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깜박하고 낮잠을 자버렸다. 불면증이 있는 내게 낮잠은 금기사항인데... 휴대폰 불빛이 깜박여 들여다보니  아들에게서 톡이 와있다. "엄마 맘 상하게 해서 미안해요."

 아주 간단하고 짧은 문장이지만 마음이 울컥하니 짠한 마음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갑자기 옹졸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지며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한참을 훌쩍였다. 작은 일에 감동받고 작은 일에 섭섭함을 느끼는 금성 출신 엄마를 화성인 아들은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것이다.


 전화로 하려다 미안한 마음을 톡에 글로 풀어 사과를 하고 안부를 묻다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낼이면 다시 일터에 나가 한주를 치열하게 살아야 되는 아들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너의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아직은 엄마의 마음을 모른다 해도 아니 죽을 때까지 몰라준다 해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을 것이다. 엄마 모두가 그러하듯이...

작가의 이전글 우리 동네 단골집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