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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un 05. 2021

우리 동네 단골집들 2.

 어젯밤 내리던 세찬 비는 그치고 눈을 뜨니 맑고 투명한 햇살이 대지를 비춘다. 불어오는 바람결도 향긋하다. 녹음이 우거진 명희 씨 카페 앞의 정원이 그림 같다. 강렬한 빛의 세계는 어둠을 몰아낸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을 탁자 위에 놓고 깊고 진한 향과 맛을 음미한다. 항상 오전 10시 무렵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글을 쓰기도,  더러는 책을 읽기도 또 어느 때는 아무것도 안 한 체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기도 한다.

 오전의 고즈넉한 시간이 좋다. 주택가의 외진 곳에 위치한 카페는 나와 같은 혼족이 단골로 많이 온다. 혼자서 2,3시간씩 업무를 보거나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오후엔 점심 식사를 마친 주부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전엔 눈에 익은 단골들을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를 하며 인사를 나누는 동네의 사랑방이다.

 "안녕하세요?" 하고 낯익은 단골 중 한 분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는 내게 인사한다. 지난겨울부터 가끔 마주치던 이웃 주민이자 같은 '꿈꾸다' 카페의 단골 동지이다. "어머, 오랜만에 봬요. 안녕하셨어요?" 하고 활짝 웃는다. 이곳 사장님, 명희 씨를 닮아 단골손님들도 차분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카페도 카페이지만 좋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편안한 곳, 집 이외의 제2의 둥지이다.

 

 어제 소녀 같은 친한 지인이 바다 보러 가자고, 바다를 향한 향수병에 걸렸다고 노래를 부른다. 자연에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는 감성 풍부한 그녀이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푸른 파도가 생각나 잠시 유혹에 빠졌지만 금세 마음을 접고 확답을 안 한 체 웃고만 말았다. 바다는 이미 내 눈앞에 펼쳐져 파도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오전 시간을 멍하니 카페의 정원을 바라보다 생각나면 글을 쓰기를 반복했다. 창밖의 정원은 마치 비밀의 정원인양 아름답고 신비하다. 이런 곳에 파랑새가 살고 있지 않을까.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아주 가까운 곳에, 손 뻗치면 닿을 곳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내 안에 속삭임이 들린다.

 정오가 넘었다. 소지품을 주섬주섬 챙겨 우리 동네 내가 가끔 들르는 한식당 아뜨랑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허기진 배가 사정없이 알람을 울려댄다. 가격도 착하고 맛도 집밥 같아 가끔 이용하는 단골집이다.  입에서 당기는 것, 먹고 싶은 것은 밀가루 음식 칼국수나 만둣국이지만 아침에 토스트를 먹은 탓에 여러 가지 나물을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을 주문한다. 사람 좋은 사장님이 오랜만에 왔다고 반기신다. 언제나 내 스타일이 당신이 추구하는 스타일이라고 칭찬 듬뿍 해 주시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 줄 아시는 센스쟁이이다. 비빔밥에 덤으로 나오는 샐러드와 고추장아찌, 미역국이 푸짐하고 맛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소식하는 편인 나는 늘 주문할 때 양을 줄여달라고 말씀드리는데 오늘도 사장님의 넉넉한 손이 내 주문 사항을 잊어버리시고 한상 거하게 차려 주셨다. 그녀의 후덕한 인심이 고마워 남기지 않고 찬에, 국까지 흡입하니 저녁을 안 먹어도 될 만큼 배가 부르다. 항상 조금 먹는다 걱정 반, 타박 반 잔소리하시는 사장님이 빈그릇에 흡족한 듯 활짝 웃는다.


 

 우리 집이 위치한 블록의 가장자리를 삥 둘러 산책을 한다. 부른 배를 소화시키는 목적과 모처럼 청명한 하늘과 대기의 기운을 즐기고 싶어 천천히 오래된  구시가지의 골목골목을 돌아 삼일 사진관, 우리 동네 새로운 명물 빵집 명일당을 거쳐 옛맛이 나는 진미 숯불 통닭까지 쭉 따라 올라가면 초등학교 담장이 보인다. 담장에 넝쿨 식물들이 담을 따라 줄지어 있다. 하굣길 아이들을 기다리는 젊은 엄마들이 삼삼오오 정답게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아이들의 유쾌한 소리가 떠들썩하다. 저 멀리 아파트 단지 안의 상가 건물이 보인다.

 상가 1층에 맛있는 떡집이 있다. 정월 떡집. 밥 먹기 싫을 때나 엄마에게 갈 때, 가끔 수고하시는 경비 아저씨 간식하시라고 떡을 산다. 내가 좋아하는 떡은 엄마가 어릴 적 집에서 봄철에 많이 해주셨던 개떡, 쑥으로 만든 쑥개떡이다. 쑥개떡 한팩과 경비 아저씨께 드릴 인절미를 한팩 사서 2층의 세탁소로 향한다.


 "똑똑" 노크를 하고 경비실 문을 여니 아저씨가 안 계신다. 인절미를 탁자 위에 살며시 놓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시간이 세시가 다 돼간다.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킨다. 상큼한 바람 냄새가 코끝에 맴돈다. 나의 사랑 꼬마 화분을 햇볕 따사로운 베란다 창에 내려놓는다. 점심도 배불리 먹었으니 먹은 칼로리도 소비할 겸 집안 일도 할 겸 청소기를 구석구석 돌리고 걸레를 빨아 스트레칭이 되게 최대한 팔을 뻗쳐 걸레질을 한다. 한참을 가사노동에 열중하다 보니 땀이 비 오듯 한다. 샤워를 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 입고 책상 앞에 앉으니 시간이 5시를 가리킨다. 마음에 드는 책은 다시 펼쳐 보는 습관이 있는 내가 두 달 전 인상 깊게 읽었던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다시 펼쳐 든다. 일상을 내려놓고 그의 글 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난다.


 오늘  하루도 훌쩍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다녀왔다. 비슷한 날들이지만 똑같은 날들은 없다. 눈을 감으면 넘실대는 푸른 바다가,  끝없는 들판 보이는 지평선과 아름다운 고성들과 숲이 우거진 산등성이 그 안에-내가 있다.  살아 있음에 고통도 기쁨도 모두 다 느낄 수 있다.

 "고난은 유익이라. 고통은 나의 삶에 유익이었다. " 하고 조용히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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