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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ul 11. 2021

그것이 최선입니까?

 '에구구 일머리 없기는 하루라도 그냥 넘기는 날이 없네.' 이마트에서는 물건을 팔고 카드결제는 매장에서 pda로 직접 계산을 하고, 상품권이나 현금 결제 시에는 1층의 계산대에서 고객이 직접 계산을 하는 시스템이다. 중년의 신사에게 청바지 두벌을 팔고 -상품권을 내미시는 고객님께- 1층에서 계산하시도록 설명을 하고 바지를 쇼핑백에 담았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상냥하게 인사까지 마치고 매장을 정리하는데, 뭔가 찜찜하다. '아차, 가격 텍을 안 붙이고 쇼핑백에 넣었네.'

 가격 텍을 서랍에서 꺼내 들고 고객님이 가신 방향으로 고개를 쭉 빼고 두리번거리는데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무조건 4층에서 1층의 계산대를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어, 멀리 계산대에 차례를 기다리시는 고객님이 눈에 확 들어온다. 달려가 죄송하다 인사를 하고 설명을 드리니 환하게 웃으신다.

 아, 이제야 비어있는 매장이 생각나 급하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뛰다시피 4층 매장으로 돌아왔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한 달에 몇 번 안 나오는 알바지만 벌써 몇 달째인데 기본적인 일을 깜박한 내게 알밤을 콕 날린다.



 9년 전 이혼을 하고 1인 가장이 되었다. 집안 살림만 결혼생활 내내 해왔으니 먹고사는 것이 막막했다. 어릴 적부터 약골이었고 억척스러운 성격과는 거리가 먼 마음만 여린 사람이었다. 다행히 직장생활을 하는 동생을 대신해 어린 조카들을 돌보는 일을 맡아서 몇 년 할 수 있어서 먹고사는 것은 다행히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이혼 후 급격하게 심해진 우울증과 불안장애 때문에   낯선 사람들과 사회생활을 하기에는 내 마음과 몸이 너무 아팠다.

 

 마음은 여리지만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조카들을 예뻐하는 나였기에 아이들은 사랑으로 잘 돌볼 수 있었고 아이들의 이모를 향한 사랑은 내가 회복하는데 큰 힘을 줬다. 어느 순간부터 몸이 회복되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니  세상으로 나갈 자신이 생겼다.



 " 언니! 언니는 참 일머리가 없어요. 일의 선후를 잘 따져봐야죠." 날카로운 매니저의 불호령이 시작되었다. 난 그녀가 무섭다. 나보다 여덟 살 어린 그녀이지만 호랑이 같은 그녀가 오히려 언니 같고 인생 선배 같다. 누가 다그치면 잘하던 일도 머릿속이 하얘져 생각이 안 나고 버벅거리는 소심한 내가 그녀 앞에만 가면 한없이 작아지고 약해진다. 

 

 "은경아, 너 참 일머리가 없네. " 백화점 근무 6개월쯤에 모르는 것이 있어 옆 매장 20년 근무 경력의 선임 언니에게 물어보다 타박을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사람들이 나를 차분하게 보는 것과는 달리 내가 좀 덜렁거리고 어리바리하다. 열의는 있고 완벽하게 일처리 하고 싶은 마음은 강한데, 그럴수록 자꾸만 꼬이고 실수를 하니 팔짝팔짝 뛸 노릇이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근무한 1년-고됐지만 좋아하는 옷들도 실컷 구경하고 언니들이랑 재미있게 수다도 떨 수 있어 재미있었다. 알고 보니 호랑이 시어머니 매니저도 내 앞에서만 무섭게 굴지-알고 보면 내 뒤에서는 나를 칭찬하고 나를 감싸주던 속정 깊던 사수였다. 좌충우돌 나의 사회생활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매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끝이 났다.

 



 백수생활 1년이 다 돼간다.  아르바이트로 간간히 주중에 조카들 저녁해 주러 가는 시간외에 한 달에 몇 번 이마트에 가서 근무하는데, 어쩌다 가끔 나가니 실수가 더 잦다. 좀 사람이 뻔뻔한 구석이 있기도 해야 험한 세상 살아가기도 수월할터인데 나는 스스로를 다그치는 성격이라 작은 실수만 해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우왕좌왕한다. 스스로에게 너그럽지 못하다. 그러니 타고난 소심함에 스스로를 향한 책망까지 더해져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혼자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야무지게 인생을 척척 개척 못하고 있으니 은경아 너 앞으로 어떻게 살래? 쯧쯧 " 중얼거리다 애꿎은 머리에 다시 알밤을 딱~~

 

 그게 먹고살려고 공인중개사도 자격증을 취득하고는  보름쯤 근무하다 도저히 적성에 안 맞아 장롱 면허로 곱게 옷장 속에 모셔 놓고,  뭐 하나 야무지게 하는 것이 없으니 친구들은 천상 살림만 할-온실 속 화초가-험한 세상으로 나왔다고  안타까워했지만 현실의 높은 생존의 벽은 50대 아줌마에게는( 특히나 소심한 나에게는) 눈물이 핑  돌정도로  세상은 맵고 쌉쌀한 맛이다.

 세상은 하루가 빨리 변화하는데 일못(일 못하는 사람의 줄임말)이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내기에는 거의 공포 수준이다. 두려움이 두려움을 낳는다고 한번 떨어진 자신감을 만회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초조함만 더해갔다...



 "명희 씨, 좋은 하루!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 성큼성큼 늘 앉는 테이블 의자에 앉는다. 얼마 안 돼서 소나기가 후드득 쏟아진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 그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음악소리에 어제의 풀 죽은 마음은 저 멀리 달아난다. '뭐 여태도 잘 살았는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데 나도 탤런트 하나쯤은 있을 거야. 아니 당연히 있지!'

 아 오늘따라 글이 술술 풀린다. 명희 씨가 내 앞에 아메리카노를 놓으며 말한다. 은경 씨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 있을 거라고 그녀의 성공한 은사님에 빗대어 내게 용기를 준다.


 오래전 본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의 대사가 요즘 자주 떠오른다. 시크한 재벌 2세 남자 주인공은 부하직원이나 여자 주인공에게 입버릇처럼 "그것이 최선입니까?"하고 묻곤 했다. 그 대사가 갑자기 얼마 전부터 내가 일처리 할 때나 글을 쓸 때마다 내 눈앞에 불쑥불쑥 나타나 내게 묻는다. "그것이 당신에게 최선입니까?"

 나에게 최선은? 최선의 의미는?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답이었다. 완주. 끝까지 가는 것.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지만 인생에서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쯤은 끝까지 해보는 것. 비록 내가 꿈꾸는,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해도 달려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좀 서툴고 미숙해도 대수인가? 누구보다 잘해보고 싶은 과욕이 어쩌면 더 일을 그르치고 있는 건 아닌지...

 

 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멀티플레이어가 아니다. 나는 일못이다. 뒤늦게 시작한 사회생활에 매일 이리 차이고 저리채이고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나를 나답게 하는 글쓰기 작업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 모두에게 한 가지쯤은 가슴 뛰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 그 가슴 뛰는 일을 나는 비로소 만났다. 그것과 끝까지 동행하는 일-이것이 당신 질문에 대한 나의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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