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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ug 23. 2021

인연

  이모님 같은 이웃 할머니의 이삿날이 오늘이다. 젊은 나이에 배우자와 사별하신 할머니는 가족이 없다. 8년을 이웃집으로 가까이 왕래하고 지냈던 할머니가-서울을 떠나 멀리 익산의 실버타운으로 거처를 옮기는 날이다. 항상 내 이름을 정겹게 부르며 조카딸 같다고 정을 주신 분인데... 서운한 마음과 걱정 섞인 마음이 뒤섞여 마음이 짠하고 불편하다.

 

 김밥을 좋아하시는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대접을 해드리고 싶어 이른 아침 오랜만에 김밥을 만들어 보았다. 시금치를 데쳐서 무치고 단무지 대신 양념한 묵은지에 달걀지단과 당근, 우엉을 넣어  쌌다. 아들과 엄마랑 셋이 살았을 때는 종종 해 먹었는데... 몇 년 만에 싸다 보니 영 서툰 것이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할머니를 생각해 정성껏 만들었다.

 

 아침 10시에 대절한 택시를 타고 익산으로 가시는 할머니를 위해 모양이 젤 예쁜 김밥을 몇 줄 골라 가지런히 썰어 용기에 담고 따뜻한 물을 보온병에 담아 9시 30분에 옆집으로 가져갔다.

 이미 살림살이가 비워진 집에 여행가방 두 개만 덩그러니 할머니 옆에 놓여있다. 김밥 꾸러미를 여행가방 옆에 놓고 할머니의 손을 잡아 드렸다. 맞잡은 두 손에 힘을 주며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드리니 할머니께서도 밥 잘 먹으라는 말만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씀하신다.

  



 헤어짐은 언제나 서툴다. 떠나가는 택시를 눈물 글썽이는 눈으로 한참을 서서 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서 남은 생을 꾸려가실 할머니의 삶이 안쓰러웠다. 다른 이웃들에게는 좀처럼 마음을 여시지 않고 항상 경계를 하신 분이 내게만은 마음을 나눠 주셨다. 삼십 년이란 나이  차이는 있었도 혼자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여인들이라는 공통분모는 나이를 초월해 끈끈한 우정을 만들었다.

 

 언제나 내 이름을 불러주시던 이모 같은 분.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엄마처럼, 이모처럼 밥 잘 먹으라는 당부를 하셨다. '밥'이란 말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지 나는 오늘 알았다. 할머니도 나도 오늘이 우리가 보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건 우리의 직관으로 알 수 있었다.

 어지러 히 널려 있는 주방의 살림살이를 치우고 설거지를 하면서 할머니의 남은 삶이 평안하시기를 기도했다. 굵은 빗방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후드득 쏟아진다. 오래지 않아 가슴 가득 빗물이 차오른다.


 지금은 희미해진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까맣게 잊은 줄 알았던 오래전 헤어진 연인도,  친구도  견디게 그리운 날이다. 가슴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들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지나온 시간은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 험난한 길을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만든 동력은 바로 사람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 힘들고 지쳐 쓰러져 있을 때 내 손을 잡아주던 그들이 있어 인생길 덜 외로웠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무심한 나를 조건 없이 기다려 준 친구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고맙게 느껴진다.

  

 "잘 도착하셨어요? 불편한 곳은 없으시고요? 새 숙소는 맘에 드세요?... 화상 치료 꼭 하시고요... 자주는 못 걸어도 가끔 전화드릴게요. " 하고 속사포같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다. 별로 자상한 사람이 못 되는 나이지만-며칠 전 뜨거운 밥솥을 들고 걷다 넘어지셔서  다리에 크게 화상을 입은- 할머니가 마음에 걸린다. 치료받는 중간에 떠나셨는데 혹시라도 치료가 늦어져 상처가 덧날까 걱정이 돼서 말이 길어졌다.

 "응 걱정 마. 병원부터 갈 테니 염려 마. 바쁜데 전화는 왜 했어. 늙은이 너무 걱정 마. 여기 널찍하고 좋아. 여기 실장님이 잘 챙겨주셔...  고마워. "


 

  걸어온 날을 추억해 보면 수많은 사람을 거쳐 지금의 내가 빚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란 날실과-인연으로 만난 여러 사람이-씨실로 만나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가는 것이 삶이다. 끝없는 인연의 고리가 이어지고 맞물려 나만의 고유한 세계가 탄생되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불편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혜가 깊어지고 사물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젊었을 때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좇아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의-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우정, 사랑, 인정, 연민 같은 것이 소중하다는 것-가치를 알겠다.

 

 나는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인생을 살면서 다행히 악연보다는 좋은 인연으로 엮였던 사람들이 훨씬 많다. 지금 비록 세상의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실패자이지만 단 하나 인생에서 무엇이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것을 신께 감사드린다.

 

 이제는 내게 맞는 좋은 인연을 찾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인연이 되어 주고 싶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가슴이 따뜻한 사람. 사람다운 사람으로 그동안 남들에게 받았던 은혜를 조금이나마 다른 타인에게 갚을 수 있다면-그것 또한 가치 있는 삶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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