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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ug 24. 2021

채움과 비움의 조화

마음을 가꾸는 독서

 

https://youtu.be/SXLOF-z5 Zlk



 오늘 아침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와 잘 구워진 토스트와 과일로 시작했다. 명희 씨가 가족들과 함께 휴가 가는 바람에 카페가 삼일 동안 문을 닫는다. 매일 출근하는 내 아지트가 아쉽게도 문을 닫았으니 임시로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쓸 공간을 찾아 집을 나섰다. 가을장마인지 이틀째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올해는 여름이 일찍 가고 가을이 빠르게 오는 것 같다. 아침엔 제법 서늘한 기운에 이불을 끌어당겨 덮곤 한다. 덥다. 덥다 노래를 몇 번 부르니 어느새 가을이 왔다. 가는 계절에 아쉬움은 크지만 새로운 계절은 새 맘으로 담고 싶다. 하루하루를 아끼며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싶다.


  집 근처에 카페가 여러 곳 있지만 '꿈꾸다'이외의 카페는 잘 가지 않아 많이 낯설다. 커피맛을 생각하면 대형 프랜차이즈형 카페로 가는 것이 맞지만 오늘은 커피맛보다는 사람이 적은 차분한 분위기의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항상 가방에 책을 한 권 넣고 다니는데, 요즘 사실 집중이 안돼서 하루에 몇 페이지 정도밖에 읽지 못한다. 정독이던 다독이던 독서의 필요성은 절절하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요즘따라 잡념이 많은 탓인지 눈으로 활자를 읽는데 금방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린다. 그러니 읽은 구절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진도도 안 나가고 재미도 없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안다는 옛말은 천재나 가능한 말이고, 하나를 배우면 하나만 기억하는 것도 대단한 일임을 이제 알겠다. 철학자 김형석 님은 인생의 황금기를 65세에서 75세로 보셨다. 그분의 말씀대로면 나는 한참 핏덩어리에 불과한데 내가 지레 엄살을 떠는지도 모르겠지만 내 머리에 문제가 생긴 건 분명하다.


 

 카페 안 창밖이 보이는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새해 큰 포부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9월이 코앞이다. 몇 가지 계획했던 것들을 중간 점검해보니 가장 미진한 것이 독서계획이다. 계획대로면 적어도 한 달에 네 권은 소화했어야 하는데 읽은 권수를 헤아려보니 절반밖에 실천을 못했다. 시간이 쫓기는 삶을 산 것은 아니지만 근시, 원시, 난시의 삼중고에 활자를 보는 것이 힘이 들었다. 장시간 돋보기를 쓰고 책을 보면 머리가 아파오는 탓에 책을 읽는 호흡이 짧았다.

 

 올해 남은 기간만이라도 연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인지만-새책을 읽는 것도, 다독도 중요하지만-진심이 담긴 문장 한 줄이라도 머리에 남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읽고 싶은 책 목록으로-예전에 읽은 책. 특히 인상 깊었던 책을 다시 읽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것이 아무래도 읽은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는 중년 아줌마, 특히 나에게는 맞춤 독서 전략이 될 것이다. 고전과 현대문학을 적절히 섞어 목록을 작성하면 읽는 재미와 감동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솔직히 젊었을 때는(20대) 독서를 그 자체의 즐거움보다는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이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줄거리만 파악하고는 책을 덮은 책들이 여러 권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빨리 채우고 싶은 욕심이 큰-독서법이었다. 다행히 그 과정은 길지 않았고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생기면서 진정 책 읽는 기쁨에 빠져들 수 있었다.

 

 책이 주는 즐거움은 알았지만 3,40대는 나에게서는 독서의 암흑기이다. 한참 왕성하게 읽기에 몰입해야 되는 시기였지만 핑계를 대자면 남편과의 불화로 늘 몸과 마음이 아펐다. 마음의 공허와 허기는 아들의 교육에 매달렸고, 아이의 마음을 읽는 책과 성적을 올리는 목적이 분명한 책 위주로 선택하고 읽었다. 편식도 심하고 독서의 절대량이 부족한 시기였다.

 

 한참 지식과 지혜가 쌓여야 할 시기를 낭비하고 보니 요즘은 내 마음의 곳간이 텅 비었음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알겠다. 부지런히 채워 보려니 마음은 급한데 이제는 노화된 눈이 내 발목을 잡는다. ㅠㅠ

  



  사람마다 책을 읽는 목적은 다 다르겠지만 나는 채우기 위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비우기 위해 읽는다. 채우는 것은 글을 쓰기 위한 배경 지식과 식견을 넓히기 위해 내 마음 창고에 쌓아 두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독서이며, 비움의 독서는 삶의 목마름과 덧없음 고통 그리고 욕심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읽는 과정으로서의 독서이다. 지금 후반기의 나의 삶의 모토는 '균형'이다. 삶의 균형.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이루는 일.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채울 것은 채우고 버려도 될 아집이나 교만, 욕심은 버리는 삶일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것이 곧 성장을 멈춰도 되는 시기라는 뜻은 아니다. 세월이 주는 연륜에 책이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쁨과 경험이 함께 쌓인다면 지혜로운 어른으로 이 사회에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체력을 위해 우리는 흔히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 그러면 마음을 가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규칙적인 독서 습관을 키우는 일이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과정들이 하루, 한 달, 일 년... 이렇게 쌓이다 보면 우리 마음의 정원도 풍요로워질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당신은 성장하고 싶은가요? 아니면 이대로 머무르고 싶나요. 선택은 오로지 당신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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