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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Sep 03. 2021

기품 있는 삶.

 나는 1,20년 전만 해도 그러니깐 나의 3,40대 시절. 비교적 젊은 아줌마 일 때만 해도  나이 든 중년 여성들의 한결같은 헤어 스타일과 차림새를 보며 의아해했다. 짧고 웨이브 진 머리에 일상복은 화려한 색감의 꽃무늬 옷이 주류를 이루고 등에는 배낭 하나 짊어지고 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비슷비슷 획일적인 모습으로 목소리는 우렁차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자리가 나면 염치 불고 먼저 몸을 던지는 용감하고(?) 몰염치한  아줌마들을 보며 나와 친구들은 저렇게 늙지 말자고 다짐을 했었다.

 

 오죽하면 성의 구별을 여성, 남성, 아줌마라는 제3의 성의 범주에 중년 여인을 끼워 놓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물론 요즘은 염치없고 뻔뻔한 아재까지 등장해 나이 든 남자들을 비하하기도 하지만 비교적 젊은 중년이었을 때는 나이 든다는 것이 상당히 부정적인 일로 인식되었다. 젊어서 오만했던 걸까. 이해와 연민보다는 그들을 경원시하는 마음이 컸고 마주치면 피하고 싶은 존재의 아줌마, 아저씨들이었다.

 배려 대신 인생에 대해 자신만이 통달했다는 듯 목소리에 힘을 주며 자기보다 어린 사람들의 의견을 치기 어린 소리라 치부해 버리는 안하무인의 태도는' 나도 저렇게 늙으면 안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해 주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이젠 50 중반이다. 예전엔 이 나이가 되면 삶이 다 끝난 것처럼 서글프겠다 싶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웬걸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고 살만하다. 물론 뽀글이 펌도 아니고 알록달록한 옷차림에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지는 않지만 이제는 내가 갱년기를 겪어보니 비로소 이해가 된다. 나는 검은색 무채색 옷들을 즐겨 입었는데 나이가 드니 피부톤이 젊었을 때보다  칙칙해져서 명도나 채도가 낮은 옷들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머리 스타일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숱이 많이 줄어 짧은 머리를 고수하기 십상이고 배낭 또한 오십견이니 다른 어깨 질환이나 허리가 약해져 짐의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해 엄마들이 배낭을 짊어지는 것이었다. 나도 몇 년 전부터는 가죽 가방 대신 가벼운 에코백을 주로 매고 다닌다. 노화의 과정에 따른 변화를 이제 내가 나이를 드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젊었을 때 어른들의 단면만 보고 판단했으니 나야말로 편견 덩어리 애늙은이였던 것이다.


 

 나의 요즘 화두는 잘 늙는 것이다. 며칠 전 마트에 갔을 때 일이다. 마트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내 뒤에 계신 노신사분이 내 앞으로 와 유리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을 하신다. 대접받으려고 하는 어른들만 보아왔던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반백의 신사분. 어르신의 작은 배려로 하루 종일 기분 좋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런 그분의 사소하지만 세심한 몸짓은 사회의 어른으로 충분히 존경할만한 일이었다.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누구나 노화의 과정을 거쳐간다. 주름진 외모와 굽은 등과 백발의 머리카락. 누구나 거쳐가는 과정이지만 마음만은 얼마든지 우리가 노력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외모가 주는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온화한 미소와 사려 깊은 태도로 말을 아끼고 경청하는 태도.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운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삶. 아름다운 노년기의 삶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나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말을 낮추지 않는다. 나보다 어리다고 낮춰 보지 않는다. 내가 타인을 존중할 때 타인도 나를 어른으로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은 젊은 사람들로부터 더 대접받는 자리가 아니다. 삶의 지혜를 나누는 어른. 열린 사고로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람. 자기가 살아온 경험과 가치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 지나온 삶의 연륜이 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수용할 수 있는 자산이 되어야 한다.

 기품 있게 늙고 싶다. 대접받는 어른이 아닌 진정 존경받을 수 있는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귀는 최대한 열고 입은 최대한 닫으며 넉넉한 품으로 인생 후배들을 보듬는 어른으로 나이 들 수 있기를 이 아침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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