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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ug 31. 2021

불안을 마주 대하기.

8월 마지막 날의 다짐.

 며칠째 물을 마실 때면 왼쪽 윗니 부분이 시큰거려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보통 치과 정기검진을 1년에 한 번 정도 가는데 미루다 보니  년이 되었다. 뭔가 잘못된 느낌에 동생이 추천해준 치과에 예약을 했다. 병원 가는 일을 즐기는 사람은 당연히 없겠지만, 그것도 치과 가는 일은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싫어하는 일은 아닐까. 귀를 거슬리는 날카로운 기계음과 긴 치료과정과 불편한 통증.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자칫 때를 놓치고 늦게 치료를 받으면 막대한 지불 비용이 발생하니 치과진료를 최대한 미뤄왔었는데... 이젠 불편한 곳이 생겼으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최대한 빠른 예약일을 잡고 기다리는 하루새에 혼자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대공사가 될까 노심초사하니 아픈 부위가 왠지 더 신경 쓰이고 기분 나쁘게 시큰거렸다.

 

 통증이 주말에 시작되었으니 오래되지는 않았다. 평소 물을 자주 많이 마시는 습관이 있는데 물을 마실 때마다 기분 나쁘게 시큰거리니 물 마시는 것조차 꺼려지는 것이 영 불편하다. 막상 병원에 가기도 전에 내가 키운 근심과 불안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진다. 오전 일찍부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몇 시간째 쏟아진다. 잠시 치과 예약을 미룰까 고민하다 집을 나섰다. 예약 시간 10분 전에 병원에 도착해서 간단한 문진표를 작성하고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평소 겁이 많은 성격이지만  엄살이 심한 편은 아니다. 잘 참는 스타일인데 이번 진료는 오랜만에 받는 진료에다 통증이 있어 받는 진료라 긴장을 했다.

 긴 몇 분이 지나고 나를 안내하는 간호사를 따라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이 나의 불편한 부분을 살펴보며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오분만에 잇몸이 약해 시린 증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한 달 정도 지켜보자는 말씀을 끝으로 진료가 끝났다. 선생님의 별거 아니라는 한 말씀에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사실 치과 치료의 과정을 견디는 것보다는 거액(?)의 치료비가 발생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컸다. 일 년째 백수로-잠깐씩 아르바이트하는 일로는-병원비까지 감당하기 힘에 버거운 것이 슬프지만 현실이다. 주말 내내 욱신거리던 통증이 선생님의 말씀에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막상 마주한 불안의 실체는 별거 아닌 초라한 모습이었다.

 


 

 매번 겪는 일이다. 한가지 걱정이 시간을 통과하면서 한껏 부풀려져 커다란 파도처럼 밀려 오지만, 막상 두눈을 부릅뜨고 마주 대하면 영락없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별 것이 아닌게 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미리 염려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는데도 인생의 반이상은 쓸데없는 걱정으로 불안을 달고산다. 미리 대비한다는 명목하에 아까운 시간을 저당잡히고 사는 내 삶이 조금은 한심하게 여겨진다.

 

 진료를 마치고 지불한 돈은 채 이만원이 안되는 금액이었다. 주말내내 시큰거리는 이를 가지고 큰일이라고 호들갑 떤 것에 비하면 작은 액수였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각자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며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진료비 영수증을 다시 한번 더 바라보며 불안이란 놈에-먹이 주지 않기를,  잠식 당하지 않기를-내 마음의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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