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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ug 30. 2021

착한 임대인

 몇 달 전부터 속앓이를 해왔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전세 만기가 시월 말인데 집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전셋값까지 덩달아 뛰었다. 불과 2년 전보다 집값이  두배 넘게 뛰었으니 외곽으로 이사할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동생네 집과 엄마가 계신 요양원이 2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알게 모르게 마음이 든든했는데,  멀리 이사를 가야 할 생각에 혼자서 전전긍긍했었다.

 

 사는 것이 각정 거리의 연속이지만 혼자서 사는 삶은 녹록지 않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꼬리를 물고 다른 문제가 터지고... 문제 속에 내 삶이 함몰되지 않기 위해 애를 쓰지만 가진 것이 없는 중년 여인의 삶은 팍팍하다 못해 서럽다. 현실적인 문제가 항상 나의 발목을 걸고 주저앉게 만든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소심한 성격이 나이 들면서 제법 느긋하게 바뀌긴 했는데, 주거생활이 흔들리니    다시 마음에 돌덩어리가 앉은 듯 무겁고 신경은 날카로워 사실 요즘 잠을 설쳤다.

 

 불안한 마음에 '괜찮아. 괜찮아.'다독여 보아도 밤이 되면 온갖 걱정이 밀려와 수면제를 먹어도 잠은 저만치 달아나 하얗게 밤을 지새운 적도 종종 있었다. "숱한 고비를 넘기고 여태 살아왔는데 해결 방법이 있을 거야. " 하며 지난 힘들었던 고비를 떠올리며 용기를 내본다.



  주말 오후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휴대폰 벨이 울리며 낯선 번호가 뜬다. 평소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데... 망설이다 전화를 받으니 집주인에게서 온 전화이다. 계약 기간 만료 두 달을 앞두고 계약 연장을 할지 내게 묻는다. 인상해 줄 법정요율을 따져보니 그마저도 난감했다. 백화점 판매 일을 그만둔 지 1년이 됐다. 그동안 아르바이트하는 것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해 적금까지 해지해서 써버려서 목돈이 내겐 없었다. 조심스레 인상분에 대해 월세를 내겠다고 임대인에게 이야기를 했다. 수화기 너머 잠시의 침묵이 내게는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괜찮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만두시고요. 그냥 살던 금액으로 2년 더 사세요." 집주인이 웃으며 말을 한다.

 


 

 오전 10시 30분 집주인 부부와 재계약 서류를 근처 부동산에서 새로 작성하기 위해 집에서 나왔다. 도보로 15분 거리이지만 고마운 마음에 빈손으로 갈 수 없어 30분 전에 동네의 맛으로 유명한 떡집에 들렀다. 하나하나 낱개로 포장된 다양한 종류의 떡들을 상자에 포장해 한지로 곱게 겉포장까지 완성해서 준비하였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가진 것이 많다고 없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 주기 힘든데... 배려해주는 집주인 부부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작지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임대인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서류를 작성한 뒤 사인을 했다. 늘 가슴 한편을 누르는 무거운 마음이 이제야 한시름 놓았다. 감사 인사를 하고 포장한 떡 꾸러미를 내미니 한사코 안 받으시겠다고 손을 내저으신다. 연세 지긋한 노부부에게 선물을 안겨 드리고 얼른 인사를 하고 중개사무실에서 나왔다.


 

 사는 것이 누구나 쉽지 않은 것은 알지만 나 역시 수많은 고비가 있었다. 그때그때 절망하고 넋을 놓고 주저 않을 때도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여태 잘 살아있는 것을 보면 너무 감사한 일이다. 내 힘으로 문제를 풀기에 불가능했던 일도 지나고 보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못한 일들이 어느새 해결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목도하면서 누군가 나를 도와주는 신비한 체험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나의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과 이웃들의 사랑과 배려로 현재를 내가 살 수 있음을 고백한다.

 

 지금까지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도 인생 후반기에는 베풀고 나누며 내 마음의 짐을 갚아나가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작은 일에 감사하며 작은 것 하나 나누는 삶. 앞으로의 삶의 목표로 삼으며 오늘도 새로운 희망 하나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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