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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ug 29. 2021

가을맞이 나들이

아름다운 삶을 꿈꾸며

https://youtu.be/jjPhzDKnfIQ


 서늘한 공기가 코끝에 닿는 이른 아침. 며칠째 내리던-가을을 재촉하는-비가 그치고 높고 푸른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맑고 투명한 햇살이 눅눅하고 습기 찬 마음의 그늘을 걷어낸다. 어제는 가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은 삶에 있어 축복이다. 감정 또한 고여있지 않고 계속해 흐르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어젯밤에 못 마시는 술을 한 잔 하고 잠에 들었었다. 친구가 필요했는데, 술이 친구가 되어준 밤이었다. 자고 나니 살짝 머리가 무겁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다.

 

 여느 날처럼 명희 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지인한테 전화가 왔다. 지인 K집사님에게 어제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는데 마음이 걸리셨는지 오늘 멀리 분당에서 내가 사는 명일동으로 나를 보러 오신다고 한다. 절친인 S집사님도 함께 내가 있는 카페 앞으로 점심시간에 맞춰 오신다고 한다.

 

 번번이 혼자 있겠다고 약속을 펑크 낸 전력(?)도 있어 미안한 마음으로 선뜻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항상 집에 머무는 나를 배려하셔서 드라이브 코스까지 계획하시고 댁에서 출발하신다고 연락이 왔다. 모처럼의 나들이인데 꾸미고 나왔으면 좋으련만 예기치 않은 약속에 감지 않은 머리랑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이 조금 걸리지만 워낙 흉허물 없는 사이라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다. 급하게 거울을 보고 얼굴과 머리를 쓸어 넘기니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차로 십 분쯤 달리면 한강이 나온다. 강변을 따라 남양주 방면으로 십오 분쯤 달리면 시래기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한정식 집이 나오는데 그곳이 오늘의 목적지이다. 오리지널 집순이에 사시사철 뚜벅이인 내가 오늘 호강하는 날이다. 정오가 조금 넘어  여인이 나를 데리러 명희 씨 카페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세 여인이 만나 정겹게 인사를 나누며 목적지를 향해 고고씽~~~~

 

 차창밖의 강물이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찰랑거린다. 주말이라 외곽으로 빠지는 차들이 많아 조금 정체되지만 세 여인의 수다 삼매경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새털구름과 잔잔히 흐르는 푸른 물결이 주는 아름다움은 세 여인을 시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자연이 주는 평안함은 우리 모두를 소녀시절로 되돌려 놓기에 충분했다.

 강변의 드라이브는 찰나로 끝나고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풍경이 아름다운 서울 근교답게 강가를 따라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오후 한 시가 넘은 탓에 음식점들은 손님으로 북적댄다. 테이블 대기 중 주책맞은 배꼽시계가 꼬르륵 연신 울려댄다.



 우리가 선택한 음식은 시래기 요리 코스로 3인에 5만 원 정식이다. 막내 S집사님이 나와 K집사님에게 큰 수술을 앞둔 언니의 기도를 부탁했었는데... 다행히 언니분의 수술이 잘되어서 고맙다는 의미로 점심 대접을 하는 것이다. 기쁘고 좋은 일에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정답게 한 끼를 먹을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테이블 가득 시래기탕, 시래기 볶음, 묵은지 볶음, 열무김치, 젓갈 여섯 종류에 보쌈과 떡갈비가 돌솥밥에 함께 나왔다. 화려한 찬에 시장의 반찬이라는 속담까지 더해져 게눈 감추듯 한 상 뚝딱 해치웠다.

 

 강이 보이고 이름 모를 꽃들로 둘러싸인 야외정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오후의 티타임. 깊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삶의 진솔한 고민과 서로에 대한 공감과 격려가 오고 가는, 귀한 시간들이- 흐르는 강물처럼 아름답고 여유롭게 흘러간다. 젊음은 없지만 세 여인의 풍부한 삶의 표정에서 인생의 귀중한 것들을 분별하고 각자의 살아온 인생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지혜가 보인다. 마주 보고 웃는 얼굴들이 어느덧 가을을 닮아있다.



 여름의 끄트머리에서 우연히 떠난 소풍길. 그곳에서 나는 희망과 감사 그리고 우정을 보았다. 나와 동행한 친구들은 무엇을 만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도 나와 비슷한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을까. 결핍을 인정하고, 채우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비워내는 일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우리는 가식 없는 민낯을 드러내며 고백했다. 이것은 우리의 남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한 성찰 과정이었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일은 부끄러웠지만 나이를 초월한 우정과 신뢰로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서로의 삶을 지지해 주었다.

 감사하다. 좋은 벗들이 있어 내 인생이 풍요로울 수 있어 눈물 나게 고맙다.  비록 꽃은 아니어도 고운 단풍으로 환하게 물들고 싶다. 노을처럼 사랑하는 벗들과 함께 아름답게 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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