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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Sep 11. 2021

그녀를 만나기 하루 전부터 행복해요.

 그녀한테서 메일이 왔다. 브런치 작가인 J는 평소 각별하게 온라인에서나마 마음을 나누는 친구이다. 가을이 가기 전에 한 번 보자고 진심이 담긴 말들을 주고받았었는데... 그녀가 내가 사는 동네 대학 병원에 친정어머니의 검사 결과지를 떼러 온다는 소식과 함께 시간이 되면 볼 수 있겠냐는 물음이 담긴 내용이었다.

 서로의 글을 읽으며 댓글로 소통한 관계였지만- 글이란 것이 고스란히 주인의 성품과 인생의 가치관이 드러나 있는 거울 같아서 우리는 한 번도 만나지는 않았지만-서로의 작품을 통해 묘한 동질감과 친밀감을 쌓아가던 중이었으니  반가웠다. 예스란 나의 대답과 동시에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로 동시에 반갑다는 인사말이 쏟아졌다. 차분하고 상냥한 목소리에 약간의 긴장감이 사라졌다. 비슷한 연령대임을 서로의 글에서 미루어 짐작은 했지만 실제 통화하면서 딱 1년 차이의 또래라는 사실을 확인하니 또 뭔가 통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내일 J가 볼 일을 치는 시간에 맞춰 만날 것을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상하게도 목소리만 들어도 오래전 헤어진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그리운 마음이 들어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싱글벙글 웃어댔다.


 참 신기하다. 온라인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서로의 글과 댓글을 통해 소통하면서 보고 싶은 마음과 궁금한 마음은 커져간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빨리 만남의 기회가 주어지니 뛸 듯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생각한 사람이 과연 맞을까 하는 걱정과 의구심이 불쑥 올라온다. J가 생각하고 만나고 싶은 나의 모습도 그녀에게 실망이 되지는 않을지... 설렘과 쓸데없는 걱정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눈부신 햇살에 눈이 떠졌다. 오전에 부리나케 씻고 명희 씨 카페로 달려갔다. 커피를 주문하고 마시려던 순간 직장에 있는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사는 곳 근처의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가 복통을 일으켜 병원에 가야 될 것 같다고 근무하는 동생 대신 병원에 데려가 달라는 부탁의 전화였다.

급하게 카페에서 일어나 조카가 다니는 중학교 보건실로 찾아가 아이와 함께 병원으로 향하는데 아이의 가방이 돌덩이처럼 무거워 대신 짊어지고 보조가방까지 뺏어 드니 조카가 이모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하고 배가 아파 잘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내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병원까지 한 정거장 거리지만 아픔에 잘 걷지 못하는 아이 때문에 택시를 잡으려 하니 아이가 택시는 비싸다고 버스를 타자고 어린 소견에 이모 주머니 걱정을 해준다.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를 안심시키고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조카의 병명은 급성장염. 약을 처방받고    동생네로 조카와 함께 와서-직장에서 근무하는 동생 대신-죽을 끓여 먹이고 약을 먹인 후 잠든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다 동생네서 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3시 반. J와 만날 시간이 두 시간쯤 남았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내가 그녀의 글을 읽고 상상한 그녀의 모습은 다정다감하고 지적이며 학구적인 모습이었다.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상상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사실 그녀와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은 채 두 달이 안된다. 글은 규칙적으로 발행은 하지만 잘 읽히지 않는 글을 쓰는 나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내가 한참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느껴져 의기소침해 있을 때 J 그녀가 백 편이 넘는 나의 글을 읽고 격려가 담긴 응원 댓글을 달아주었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에서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위로를 받는다면 그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지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민낯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서로의 글을 통해 우리는 교감할 수 있었다.

 집을 나서기 전 거울을 다시 본다. 단정한 모습으로 그녀와의 첫 대면에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약속 장소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넉넉히 잡고 출발했다.


 

 멀리서 그녀로 보이는 여성이 걸어온다. 다가가 내 이름을 대고 손을 맞잡았다. 마스크 위로 환한 웃음이 느껴진다. 이상하다. 전혀 낯설지가 않다. 오래전 알던 친구를 다시 만난 듯 편안하고 익숙하다. 그녀의 글을 통해 그녀의 이미지를 예상한 대로 단아하고 수수하고 소박했다. 저녁을 먹고 근처의 카페로 갔다. 첫 대면이지만 나의 아픔을 글로 충분히 알고 있을 그녀가 한없이 가깝게 느껴졌다.

 정겨운 대화가 무르익고 우리는 어느새 서로의 삶을 나누고 있었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지하철역 한정거장 거리를 밤이 내린 가을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평소 글을 쓰는 장소인 명희 씨 카페를 궁금하게 여기는 그녀에게 카페로 안내해 명희 씨를 소개해 주었다.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동네 풍경을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어느새 목적지인 지하철역 앞에 도착했다. 그녀가 나의 어깨를 토닥였고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손을 맞잡고 다음엔 그녀의 직장 앞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간직한 채 헤어졌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순수함이 사라져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브런치에서 좋아하는 작가분들의 진솔한 글을 읽다 보면 그분들의  가치관과 성품이 그려진다. 나이를 초월해 깊은 우정까지도 느낄 수 있다. 인생 후반기에 이런 좋은 친구들과 교감할 수 있어 참 기쁘고 감사하다.

 좀 작가가 못되면 어떤가. 내 이야기를 쓰면서 내 일그러진 상처가 치유되고 살아갈 힘을 얻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니 브런치는 내게 인생  후반기에 이래저래 큰 선물이다.


 어제, 오늘은 두근거리는 기다림과 만남으로 행복했다. 비슷비슷한 하루였지만 가끔씩 이런 예기치 못한 선물 같은 일들이 있어 인생은 풍요해지는 것 같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 몰려온다. 내일은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행복한 상상을 해보며 깊은 잠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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