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쁜손 Sep 08. 2021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기.

 오늘 조카의 행동 때문에 내가 웃음이 빵 터졌다. 동생이 출근하면서 큰 조카(고1 여학생)에게 밥을 한술 뜨고 학교 가라는 말을 이 아가씨는 있는 그대로 딱 한 숟가락만 먹고 학교에 가버렸다. 지 엄마가 차려 놓은 반 공기 분량에서 정확하게 말 그대로만 이해한 조카가 우스워 동생과 내가 소리 내어 깔깔거리며 웃었다.

 

 큰 조카는 고1짜리 여고생이다. 작은 조카가 중2 남학생임에도 애교가 많은 편에 비해 큰 조카는 무뚝뚝하고 원칙주의자이다. 그래도 속정이 깊은 이 아가씨는 무척 과묵하다. 내가 가끔 "사랑해"하고 말을 꺼내면 작은 조카는 손 하트를 내게 발사해 주고 같이 "사랑해"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큰 조카는 뻘쭘하게 웃으며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도..." 겨우 한마디만 한다. 그래도 나는 두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 애교 많은 놈은 애교 많은 대로 뚝뚝한 놈은 뚝뚝한 대로 사랑스럽다. 그것은 내가 아이들의 진심을 알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돌봐왔던 탓에 아이들이 나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느낀다. 사랑은 때로 말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요즘 이 사랑스러운 조카들이 동생을 힘들게 한다. 모범생에 학구파였던 큰 조카는 요즘 공부는 왜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며 시간 나면 틈틈이 영화를 보거나 잠을 잔다. 시험기간이 코 앞일 때도 아주 느긋하게 시험 대비를 안 하니 학부형인 동생 마음을 애타게 만들고 작은 조카는 게임에 빠져 온라인 수업이면 수업 중에 자꾸만 딴짓을 하여 교과 과목 출석 체크를 제때 안 해 선생님들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았다.

 

 동생 내외는 긍정적이고 느긋한 성격이라 학과 성적 가지고는 아이들을 야단치지는 않지만 두 아이들 모두 부모 뜻대로 안 되니 가끔 내 앞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잘 키울 수 있냐고 진지하게 묻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기다려 주자는 말뿐. 한참 공부할 시기에 기다려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 아이를 키워보니 믿어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것을 지나고 보니 알겠다.


 

 나는 사실 학부형이던 시절 엄하고 무서운 학부형이었다. 남편이랑 사이는 벌어질 때로 벌어져 아이가 한참 공부할 때에 아버지란 존재는 부재중이었고 나는 결혼 생활의 결핍을 아이를 잘 키우는 것으로 채우고 싶어 했다. 그러니 아이에게 자연스러운 사랑이 아닌 내 욕심에 비롯된 집착으로 소유하기 바랐다. 아이한테 거는 과도한 희망과 기대는 아이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고 결과는 아이나 내게 항상 상처로 돌아왔다.

 

 지금의 아들과 나의 관계는 자유롭고 편안하다. 내가 먼저 과도한 기대를 내려놓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믿어주고 기다려 주니 돌아온 것은 모자간의 두터운 신뢰였다. 세상의 기준으로 내세울 것 없는 스펙을 가진-일용직 타일 기술을 배우는 노동자인 아들이 난 부끄럽지 않다. 당당히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건강한 정신의 청년인 아들이 자랑스럽다.


 

 큰 조카가 하굣길에 자기가 먹고 싶은 간식거리랑 베이컨을 사 왔다. "이모, 베이컨으로 볶음밥 해줘." 한창 클 때여서 그런지 조카는 날마다 맛있는 것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몇 달 전만 해도 나보다 키가 약간 작았는데 이제는 눈높이가 거의 맞는다. 몸매는 호리호리한 아가씨기 먹는 것은 장정처럼 먹는다. "그럼~~ 해주고 말고.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이모가 해줄게. "하며 조카의 어깨를 토닥인다. 말수 없는 조카가 "이모가 한 정성 있는 음식이 젤 맛있어." 하며 수줍게 웃는다. 조카의 뜻밖의  나를 향한 최고의 찬사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아이들은 꽃과 같다. 모양은 다르고 향기도 다르고 피는 시기도 다 다르지만 꽃은 꽃이어서 아름답다. 나는 나의 조카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으로 성장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건강한 사랑을 주는 만큼 자란다는 것을 이미 난 내 아들을 양육하면서 터득했다.

 

 "얘들아, 저녁 다 됐다!"하고 아이들을 목소리 높여  부르며 아이들의 방문을 여니 큰 아이는 그새 또 잠이 들었고 작은 녀석은 게임에 집중하느라 정신없다. 다시 한번 하이톤의 목소리로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식탁으로 부른다. 꽉 찬 한 상에서 밥을 먹는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그림 같은 아이들의 모습에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찾아온다. 어느새 도시의 서편으로 해가 뉘엿뉘엿 진다. 사랑이 차오르는 벅찬 가슴으로 사랑해 나즈막 히 중얼거린다. 눈 앞의 꽃봉우리들이 미소진다.


 

작가의 이전글 하루치의 소중한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