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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Sep 22. 2021

서툰 이별 뒤 마주 대하는 긴 슬픈 외로움.

 명절이나 특별하게 이름 붙여진 날이 다가오면  아들에게 미안하다. 이혼 가정의 자녀인 아들은 그런 날엔 엄마 집에서 아빠가 사는 집으로 바쁘게 오고 가야 한다. 이번 추석에도 추석 전날 내게 와서 하룻밤을 자고 그다음 날 아빠한테 간다고 한다. 아들에게 나의 미안한 마음을 말로 표현을 하지 못했지만-부모의 이혼의 여파는 아들이 장성한 순간에도 여전히 길게 흔적과 상처를 남기는 것 같아-가슴이 아프다.

 9개월 차 수습 타일 공인 아들은 오늘도 현장에 나갔다. 점심 무렵에-일 끝나고 늦은 저녁에 도착할 것 같다고-연락이 왔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힘주어 이야기하지만 아들 음성엔 삶의 짙은 고단함이 배어있다. 부모에게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알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나도 짐짓 모른 척한다.


 아침부터 서둘러 청소를 한다. 아들의 반려견 마루는 이제 태어난 지 1년이 조금 넘은 한참 호기심 왕성한 강아지이다. 녀석은 집안의 구석구석을 탐색하기 좋아하는 탓에 마루가 오는 날은 자연스레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위험한 물건과 손상이 갈만한 물건을 미리 치워 정리하고 꼼꼼히 먼지를 닦는 손길이 바쁘다.


 기름진 음식과 송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들을 위해 돼지목심을 사서 고추장 양념으로 재워두고 된장찌개용으로 조개랑 새우를 사서 손질해 냉장고에 넣어뒀다. 명절이라고는 하나 오랜만에 집에 오는 아들에게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벨소리에 한 달음에 뛰어나가 아들을 안아본다. 한 달 반 만에 보는 그리운 얼굴이다. 아들이 들고 온 가방 안의 마루를 번쩍 들어 내려놓으니 내게로 와 코를 킁킁거리며 내 체취를 맡고는 꼬리를 흔든다. 후각으로 나를 기억하는 모양이다. 마루를 내 품에 안고 마루의 동그란 얼굴에 내 뺨을 비비니 녀석이 내 얼굴을 열심히 핥는다.

 적막하고 고즈넉했던 나의 공간이 금세 온기로 가득 차오른다. 아들의 얼굴과 마루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내 마음이 흐뭇해진다. "엄마, 마루 귀엽지? 자식 이제 제법 똘똘해지고 미모가 물이 올랐어." 하며 아들이 너스레를 떤다. 하얗고 몽실몽실한 마루가 분주히 아들과 나 사이를 오고 가며 연신 꼬리를 흔든다. 녀석을 끌어당겨 내 품에 다시 담는다. 마루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이며 나를 응시한다.

 

 시장이 반찬인지 아들은 오랜만에 먹는 집밥을 달게 먹는다. 아들 앞으로 반찬을 가까이 밀어주고 먹는 모습을 바라본다. 자식이 뭔지 보고만 있어도 아깝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눈앞에 있는 아들이 그립고 또 그리워 아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편은 나와의 불화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밖으로 돌았다. 우린 별거와 합가를 반복했고 아들의 성장기엔 아버지란 존재는 늘 부재중이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식에게조차 잔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빠를 찾고, 챙기는 것은 항상 아들의 몫이었다. 

 "엄마, 낼 아침 먹고 할머니네 들렀다가 아빠한테 가요. 아침 일찍 차려 주세요." 하며 아빠를 챙기는 아들이 건강하게 잘 자란 것 같아 대견하면서도- 평소 아이에게 전화 한 통 걸지 않는 아이 아빠의 지독한 무심함에도-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아들의 마음이 안쓰러웠다. 아버지와 아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엔 한계가 있었다. 부자의 정도 천륜이었다... 성장한 아들은 아버지와의 간격을 스스로 다가감으로써 좁히고 있었다.

 

 밤이 깊어간다. 구름 속에 달은 가리어져 밤은 칠흑 같다. 집안 곳곳을 탐색하던 마루도 피곤한지 이미 잠이 든 아들 곁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가만히 마루의 등을 쓰다듬는다. 손끝에 느껴지는 생명체의 따뜻한 온기가 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이른 아침 나의 기척에 화들짝 놀란 마루가 깨어 내 뒤를 졸졸 따른다. 얼른 사료와 물을 챙겨주니 사료엔 관심이 없고 물만 조금 마신다. 혹시 아들이 깰까 봐 방문을 닫고 서둘러 아침 준비를 한다. 혼자 있을 때는 더디 가던 시간이 화살과 같이 빠르다. 앞으로 한참 후에야 볼 마루를 꼭 끌어안으니 마루가 답답한 듯 몸을 뒤튼다.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한번 더 끌어안았다 내려주니 쏜살같이 달아난다.

 밤새 퍼붓던 빗줄기가 어느새 잦아들었다. 곤히 잠든 아들을 잠시 바라보다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마루가 연신 아들의 얼굴을 핥는다. 마루에게 얼굴을 맡긴 아들이 빙그레 웃는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은 아들이 내 앞에 서서 팔을 벌린다. 어느새 내 품에 안기기에는 너무 커버린 아들품에 안겨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건강하라고, 잘 지내라고 인사를 한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마루의 눈빛이 슬프게 반짝인다.

 


 

 마루가 어지럽힌 집안을 청소하는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항상 헤어질 때는 시원섭섭했는데 오늘은 시원함보다는 서운함, 섭섭함이 컸다. 쓸쓸한 마음에 빠져 한참을 넋을 놓고 있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집안을 정리했다. 아이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애써 지우고 외출 준비를 한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해가 보인다.

 

 슬픈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명희 씨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는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본다. 어느새 배롱나무의 잎들이 울긋불긋 변해가고 있다. 깊어 가는 가을을 보니 서늘한 바람 한 점이 가슴을 파고든다. 슬픔과 서러움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한없이 연약한 나를 오늘은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그냥 안아주고 싶은 날이다. 때로는 스스로에게 힘내라고 용기를 북돋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비로소 알겠다. 그냥 오늘만은 나는 나를 내버려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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