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쁜손 Sep 19. 2021

달을 보며 비는 소원

자연이 주는 큰 위로

 골밀도 검사를 마치고 진료실에 결과를 들으러 들어갔다. 가족력이 있는 나는 걱정 반, 설마 하는 마음 반으로 의사 선생님을 마주 하고 앉았다.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는 선생님을 긴장하며 바라보았다. "골밀도가 아직 젊으신데 많이 낮으시네요. 바로 치료 들어가셔야겠어요. "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엄마가 심한 골다공증으로 서서히 허물어져 가던 모습을 지켜보던 나였기에 골다공증은 두려움 자체였다. 엄마의 인생 후반기는 발목 골절, 손목 골절 각 한 번씩 허리골절만 5번. 기침에도 뼈에 금이 가는 중증 골다공증이시다. 골다공증이 유전적 요인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내가 오늘 촬영한 결과처럼 뼈 나이가 내 나이보다 1,20년 더 먹게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쿵 내려앉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처방전을 받아 병원을 나왔다.


 엄마는 더 이상 수술도 시술도 할 수 없을 만큼 얼기설기한 뼈로 노년기를 침상에서 생활하신다. 2년 전 침대에서 내려오시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신 후 허리 박골절에 고관절 골절로 병원에 입원하셨고... 그 후로 걷지 못하신다.

  헛헛하고 씁쓸한 마음으로 하늘을 본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푸르고 눈이 부시게 곱다. 드문드문 하얀 솜털 같은 뭉게구름이 울적한 마음을 아는지 나를 위로한다.


 

 제일 걸을 때 편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골다공증이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난치성 질환이지만 생활 습관으로 어느 정도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 그 희망을 붙들고 노력한다면 달라질 거라는 믿음이 있다. 혼자 있으면서 식사도 때우는 수준이었고 운동이라고 해봤자 가볍게 걷는 산책밖에는 안 해서 골밀도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새로운 루틴을 형성하는데 약 3주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오늘부터 주 5회 파워워킹으로 30분 이상 걷고 치료제도 복용한다면 재검사하는 1년 후에는 검사 결과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그나마 더 병이 진전되기 전에 내가 알 수 있어서 노력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여겨지니 이 또한 감사하다.


 유유자적 동네를 걸어왔던 내가 갑자기 속보로 걷다 보니 20분쯤 넘으니 숨이 차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코스는 대략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기준으로 한 블록을 큰길 가장자리를 뺑 둘러 돌면 30분 정도 소요된다. 익숙해질 때까지는 코스를 이 길로 정했다. 다리에 힘이 붙으면 걷는 반경을 넓혀갈 생각이다. 골다공증에는 체중을 어하는 운동이-걷기나 계단 오르기-좋다고 한다. 내가 사는 층이 13층이니 걷기가 익숙해지면 계단도 오를 생각이지만 처음부터 무리하고 싶진 않다.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할 테니깐.


 

 다들 명절이라 풍성하고 들떠 있는데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짠하다. 전화를 걸어 드시고 싶은 음식을 여쭤보니 군밤이 드시고 싶다고 하신다. 언젠가 겨울철이면 가끔 외출 길에서 돌아오던 길 엄마에게 사다 드리면 맛있게 드시던 기억이 난다. 밤을 사서 칼집을 낸 뒤 에어 프라이어에 굽고 불고기를 볶고 전 몇 가지를 해서 도시락에 담았다. 뵐 수는 없지만 내가 한 음식을 맛보며 한가위의 추억을, 당신이 잊힌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다.

 다시 하늘을 본다. 요즘 자주 하늘을 본다. 기쁠 때나 슬프고 울적할 때도 파란 하늘이, 하얀 몽글한 솜털 구름이 내게 말을 건다. 세상사 다 그렇고 그렇다고 웃으며 말을 한다.


 

 휴대폰에 조카가 보낸 노을 사진이 예쁘다. 한참 감수성 풍부한 여학생인데 하늘을 보고 그 빛깔의 변화와 구름의 모양. 그리고 석양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있는 이모를 위해 명절 잘 보내라는 멘트와 함께 노을이 아름답게 물든 하늘을 찍어 보냈다. 어린 소녀도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치유의 힘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답으로 사랑한다는 멘트에 하트를 꾹 눌러 보냈다.


  바람이 분다. 별빛이 달빛이 아름다운 밤이다. 삶의 고달픈 고민들이 순간 잊혀 간다. 달은 점점 차올라 한가위가 되면 만월로 꽉 차오를 것이다. 자연의 신비, 경이로움 앞에 내가 가진 고민들이 하찮은 티끌 같은 작은 것들로 여겨진다.

 우리의 삶도 더도 덜도 말고 이 풍성한 가을, 한가위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달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기도해 본다.

 내가, 우리가 그리고 모든 나라 안 이웃들이 행복할 수 있기를 마음을 담아 간절히 소원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찾는 여행기-그리스인 조르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