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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Oct 04. 2021

삶에 있어 보편적 활동으로서의 글쓰기

1. 글쓰기의 존재론.


  글을 쓰다 보면 가끔 글쓰기가 부담스럽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곤 한다. 브런치 작가가 돼서 글쓰기를 시작한 지 10개월. 처음에는 글을 쓸 내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고, 오랜 무기력감에서 벗어나 뭔가를 도전해 본다는 것이 새롭고 신이 났다. 어설프고 부족한 글들이었지만 쓰면 쓸수록 헝클어진 내 내면이 정리되고 치유되는 느낌이 좋았다. 오랜만에 맛보는 건강하고 행복한 감정들이 나를 충만하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글을 쓰는 즐거움이 불편함과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어느 날부터 내 글이 진부하고 깊이가 없는 감정의 배설에 불과한 자기 토로라고 생각되면서부터이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재능에 대한 의심이 나를 괴롭혔다. 아마도 무의식 속에 글을 쓴다는 것은 재능 있는 일부 창작인에게 주어진 특권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자격지심이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유튜브에서 고전평론가로 잘 알려진 고미숙 작가의 글쓰기 특강을 듣게 되었다. 글쓰기 강의가 대부분의 경우 테크닉에 관한 접근이 이루어져 별 기대 없이 강의를 듣기 시작했는데 몇 분 안돼서 나의 요즘 고민에 명쾌한 해답을 그녀가 들려주었다. "유레카"를 외치며 내친김에 작가의 글쓰기 책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도 구입하여 단숨에 읽어 버렸다.

 



 고전연구가로 15년 동안 20권이 넘는 저서를 집필하고 발행한 그녀는 자타 공인-읽고 쓰기의 달인이다. 대부분의 글 쓰기 책이 테크닉, 어법, 문장 구조 등 스킬 쪽으로 치중한 것에 반해 고미숙 작가의 글쓰기 특강 책은 경이롭게도 글쓰기의 존재 이유에 대해-글쓰기가 삶에 있어 왜 필요한지-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음성으로 말하고 있다.

 

 그녀는 삶은 창조행위로 채워져야 한다고 글의 서두에서 주장한다. 창조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소외와 단절, 허무, 권태 같은 부정적인 카오스에 휩싸이게 된다. 따라서 창조적 활동을 능동적으로 해나가며 살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만족과 안정, 행복을 맛볼 수 있다. 그녀는 글쓰기를 재능이 필요한 특별한 행위가 아닌 존재하면 읽고 쓸 수 있는 누구든지 가능한 보편적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보편적 활동!-누구나 가능하고, 누구나 해야만 하는-이란 말이 내 가슴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위로를 주었다.

 

 가장 인간적인 활동으로서의 읽기와 쓰기. 그중 그녀가 강조하는 것은 쓰기의 통쾌함이다. 읽는 것이 중요함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공감대가 확산되어 있는 활동이다. 아무도 읽는 것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읽는 것일까? 알고 행하고 스스로를 조절할 사유를 끊임없이 공급하려는 노력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책을 읽고 덮음과 동시에 대부분의 우리가 읽은 내용이 증발됨을 경험한다. 쓰기는 우리가 안 것을 체화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읽으면 써야 한다. 아니 쓰기 위해 읽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읽고 쓴다고 생각하면 애매하고 막연하다. 어쩌면 50대, 60대, 70대가 돼서도 읽고 쓰기는 막연해서 실행이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쓰기 위해서 읽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읽기의 질과 밀도가 달라진다. 쓰기(창조) 위해 개척할(책의 내용을 두루 섭렵할 수 있다) 필요를 느낀다. 즉 나와 다른 것. 지금까지 생각지 못한 것을 알고자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창조적 활동이 필요한 존재이다. 주역에서는 인간의 직립을 하늘과 땅 사이의 존재로 하늘의 무늬를 읽고 땅의 변화와 이치를 탐구하는 천지인의 유쾌한 삼중주로 묘사하고 있다.

 하늘과 땅을 관찰한 인간이 언어로 다른 인간에게 전승하였으며 그 과정 언어의 한계를(시간과 거리) 느끼고 인간의 욕망을 널리 전달하고 싶어 문자가 발명되었다. 이 문자의 발명으로 신성한 언어가 시ㆍ공을 넘어 결국은 '불멸'을 얻게 된 것이다.


 사실 인간을 인간답게 해 줄 창조행위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글쓰기는 따로 재능이 필요하지 않은 과정이라 작가는 강조하고 있다. 가장 현 인류, 호모 사피엔스다운 창조적 활동! 모든 것이 헛되이 사라지는 세상에 오직 '불멸'은 읽고 쓰기밖에 없고 이것은 모든 사람의 선택적 사항이 아닌 미션이라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



 나는 남은 생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재미는 쾌락과는 다르다. 쾌락은 짧은 기쁨 긴 고통을 주며 점점 큰 강도를 요구하고 있지만 재미는 나의 삶에 기쁨의 윤활유를 선사한다. 재미있게 살면서 그리고 의미 있게 사는 것이 과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미숙 작가의 가장 인간다운 창조행위라는 글쓰기가 내 맘에 크게 와닿는다. 삶은 끊임없는 -어찌 보면 이상적인 존재를 찾아가는 자기 수련의 과정이다. 자기 수련. 나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창조적 활동. 글쓰기가 그런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앎이 우리를 걷게 하고 뛰게 한다. "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책은 신이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며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주인이 될 수 있는 길은 책밖에  없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소수의 엘리트들이 대중을 이끌어 갔으며 특히 쓰기 영역은 그들에게 지면이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21C는 대성 지성주의가 이끄는 인류 최초의 문명사회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의 주체가 될 환경을 양성할 많은 지면이 생겼다.

 

 읽기를 통해 지식을 흡수하고 쓰기를 통해 표출될 때 읽고 쓰는 관계는 수평적 관계로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생각은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져 나를 이룬다. 읽기와 쓰기를 통한 훈련으로 스스로에 대한 성찰 속에서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됨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글을 쓰면 나 자신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존재를 충만하게 하는 일. 귀한 시간이 필연적인 사실이라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해진다. 나를 알아가고 나를 표현하는 창조적 활동.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이 즐거운 과정을 히며 의미 있게 살고 싶은 것이 바람이다.


 고미숙 작가의 이야기이다. "글쓰기는 버티기다." 자기와 같이 박사과정부터 시작한 재능 있는 동료들이 10년이 지나니 다 사라지고 자기만 남아 책으로 먹고 산다고 한다. 재능보다는 버티기로 꾸준히 쓰기를 연마하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요지의 말은 했다.

 설령 뭐 이름이 나지 않더라도 좀 어떤가? 내 사유의 폭이 넓어지고 내 삶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고 유연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한 것을!


노동과 화폐에 지배당하지 않는 시간, 육체적 정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활동의 무대를 열어젖혀야 한다. 시공의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 길을 가는 자들이야말로 진정 디지털 노매드다. 디지털 노매드는 다양하게 뻗은 정보의 길에서 지성과 영성을 향한 새로운 속도와 리듬을 구현하는 존재다. 글쓰기가 그 실천이자 전략이다. 글쓰기는 내가 그 길에 들어섰음을 증명하는 최고의 방편이다. 언어를 창조하고 스토리를 구성하고 사건을 편집하고... 어떤 활동보다 역동적이다. 이전의 글쓰기는 정착민들의 것이었다. 천재성으로 무장하고 창백한 자의식으로 넘치는 자들의 몫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서재도 지식도 자의식도 필요하지 않다. 그 모든 것은 스마트폰에 다 들어있다. 필요할 때 참조만 하면 된다. 이게 바로 디지털 노매드다. 노트북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우리는 쉽게 글을 쓸 수 있다. 이  또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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