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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Dec 10. 2021

석 달만의 해후


 두근두근 아들이랑 마루를 석 달만에 만나는 날이다. 추석 때 다녀가고 처음이니 그동안 그리운 자식 보고 싶은 마음을 어찌 참았는지 어제부터는 눈앞에 온통 아들 얼굴과 복슬복슬한 하얗고 동그란 마루 얼굴만 아른거린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들의 스케줄은 변동도 심해 쉬는 날도 들쭉날쭉하고, 어쩌다 쉬는 날은 진이 빠져 하루 종일 잠만 잔다는 아들에게 보고 싶다는 이유로 오라 하기가 미안했다.

 

 전형적인 밀레니얼 세대인 아들은 다니던 직장일을 그만두고 평생 쓸 수 있는 기술을 배운다고 타일 일을 시작한 지 11개월 차의 수습 일꾼이다. 평소 패션감각도 남다르고 센스도 있는 아들이 강한 육체적인 노동과 험한 현장 분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어느새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야 되는 3,4년의 시간을 보내야만 비로소 기술자의 길로 들어선다는데, 다들 그 시기를 못 버티고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군 제대 후 한 번도 쉬지 않고 온갖 일을 다한 아들이기에 진로를 결정하면 나의 역할은 응원과 기도로 힘을 보태는 것이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엄마 장 보러 갈 건데... " 하고 전화로 물으니 "카레가 먹고 싶네요. 엄마가 해주는 카레요~" 하고 일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을 한다. 평소는 "아무거나요. "라고 대답하는 아들인데 신기해서 알겠다고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마루가 온다고 하니 바쁘다. 마루는 1년이 조금 넘은 비숑 프리제인 강아지이다. 호기심이 왕성해서 집구석 구석 좁고 먼지가 쌓이기 쉬운 사각지대까지 비집고 들어가기 좋아해 청소를 꼼꼼하게 해 주어야 한다. 먼저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기를 돌리고 청소기가 채 미치지 않는 좁은 공간은 마른걸레와 젖은 걸레로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행복한 수고, 행복한 노동이 주는 상쾌함이 기분을 맑게 한다. 청소를 마치고 마트에 가서 아들이 좋아하는 딸기와 카레용 고기와 야채를 사고 꽃집에 들러 포인세티아 화분을 하나 샀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포근한 한 낮이다. 살살 부는 미풍이 내 뺨을 어루만진다. 내리쬐는 햇살이 좋아 집 근처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아 집으로 왔다.



  아픈 손가락 나의 아들. 이혼가정에서 정서적으로 힘들었을 아들을 생각하면 난 늘 가슴이 먹먹하다. 나의 아킬레스건인 아들. 대견스럽게도 착하고 독립적으로 잘 자라주었지만, 부모의 도움과 지원 없이 지금의 시대를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는 아들에게 가끔 미안한 마음에 가슴 아플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사랑한다는 표현조차 미안해 삼켜버릴 때가 있다. "힘들지?"하고 물으면 "저 견디는 데는 자신 있어요." 하고 담담하게 대답하는 속 깊은 녀석. 아들은 내가 씩씩하게 살아야 하는 삶의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저 왔어요. 엄마~"하며 현관을 들어서는 아들과 마루를 가슴에 품는다. 마루를 번쩍  안아 볼에 입을 맞추니 마루가 오랜만에 보는 나를 기억하는지 열심히 꼬리를 흔든다. 썰렁하고 조용했던 집안이 온기로 가득 찼다. 보고 있는데도 자꾸 그리워 아들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못 보던 사이 성견이 된 마루의 미모가 물이 올랐다. 한결 똑똑해지고 야무진 모습에 대견스러워 턱과 등을 쓰다듬는다.



 돼지고기 등심에 양파, 당근, 감자, 단호박을 썰어 볶다 물을 붓고 끓이다 카레를 넣고 잘 저어 완성했다. 거친 노동을 마치고 온 아들이 달게 밥을 비운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들을 밤새도록 나누고 싶은 맘을 꾹 누르고 피곤하고 지친 아들이 편히 쉬도록 아들이 씻는 동안 잠자리를 준비했다. 개구쟁이 천방지축 마루는 연신 놀아달라 내 주위를 맴돌더니 내 무릎 위에 자리를 잡는다. 따뜻하고 말캉한 생명의 온기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밤이다.

 말 수 없는 아들이지만 그냥 지금 내 곁에 건강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아들은 과연 알까. 먼 훗날 지금의 나만큼 나이를 먹으면 알 수 있을까. 설령 모른다 해도, 영원히 짝사랑으로 끝나더라도 상관없다. 나의 부모님이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셨듯 나도 아들을 조건 없이, 아낌없이 사랑할 것이다.


 깊고 깊은 검푸른 밤. 어느새 잠이 든 아들이 모습을 바라본다. 때로는 자식을 위해서 끝없이 샘솟는 사랑조차 누르고 감추는 어미란 존재.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 엄마가 된 일인 것 같다. 나를 엄마라 부르는 아들의 무탈한 안위를 위해 기도하며 동트는 아침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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