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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Dec 23. 2021

슬프고 외로운 나도 괜찮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살며 사랑하며...


 '상세 불명의 우울 에피소드' 이것은 10년 넘게 나를 따라다니는 나의 병명이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아프고 참담한 부침을 겪어왔다. 이 질기고 끈질긴 인연은 잊을만하면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듯 불쑥불쑥 내게 찾아오곤 했다. 한동안 친구처럼 사이좋게 잘 지냈는데 씩씩하게 지내는 내게 심술이  났는지 요즘 부쩍 나를 찾아와 나를 힘들게 한다.

 

 적당히 차가운 바람이 머리를 맑게 한다. 코 앞으로 닥친 성탄절을 맞아 요양원에 계신 엄마에게 몇 가지 간식을 갖다 드리려 집을 나섰다. 엄마의 유일한 낙은 딸들이 보내 준 간식거리를 드시는 것이다.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엄마의 즐거움은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일이다. 덕분에 동생과 나의 수고는 커졌지만 답답한 요양원 생활에서 그런 즐거움이나마 엄마한테 줄 수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다. 불고기와 육포는 최대한 잘게 썰어 담고 초콜릿과 계절의 별미 무시루떡과 호박죽을 함께 1회용 용기에 담아 가방에 넣었다. 제법 가방이 묵직하다. 1주일에 한 번씩 동생과 내가 엄마의 간식을 담당한다. 벌써부터 만족한 듯 활짝 웃으시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요양원 입구 초소의 관리자에게 들고 간 간식 가방을 맡기고 돌아서는 길이 채 몇 분 안된다. 처음엔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서는 길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는데 이제는 적당히 담담한 표정으로 적당히 가슴이 짠한 것을 보면 이렇게 사무적으로 변해가는 내가 징그럽고 낯설게 느껴진다. 지난날 요양원서 집으로 돌아오며 흘렸던 눈물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차창으로 바라보는 12월의 황량하고 메마른 겨울 풍경을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한 해를 열심히 달렸다. 예전의 무기력하고 슬픈 자아에서 벗어나 밝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랑과 감사가 내 안을 채워 스스로 빛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달리다 길 위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일어나 지지 않는다. 그냥 넘어진 채로 소리 죽여 우는 내가 길 위에 있다. 하지만 내 몸과 경험은 기억한다. 무한의 슬픔도, 무한의 고통도 없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은 찰나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눈물 속에서  떠올린다.


 

 빛이 가득한 실내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공간을 잔뜩 채우고 있다. 명희 씨에게 인사를 건네고 익숙한 창가 자리로 가 앉는다.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이곳이 나는 좋다. 안전하고 적당한 간격이 있는 곳. 그러면서도 외롭지 않은 곳. 날개가 다친 새 한 마리에게 마음이 있다면 이와 같지 않을까.

 

 진한 커피 향이 나를 깨운다. 과일까지 덤으로 내려놓은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다시 창밖으로 오고 가는 사람들과 거리의 풍경을 바라본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방전된 나의 에너지에 당황했던 나를 무심히 들여다본다. 부정적인 감정, 약한 내 모습 역시 나를 이루는 것들인데 외면해왔다. 인정하기 싫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무기력한 나로 돌아가기 무서워 어두운 감정들은 꾹꾹 가슴속에 눌러 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씩씩한 척, 달라진 척 아니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다. 아주 작은 균열이 나를 요동치게 하지만 이 어둠 속에서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낡고 오래된 장갑을 버리고 가볍고 포근한 장갑을 한 해 애쓴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여전히 우울증 에피소드로 치료가 필요한 환자이지만, 믿었던 지인마저 의지의 문제로 나의 10년이란 세월의 고통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씁쓸함과 참담함이 있지만 나의 성장의 8할 이상은 고통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냥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지금의 모습을 인정하며 이대로의 나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지금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위로하며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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