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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Dec 29. 2021

한 해의 끄트머리에 느끼는 소회.


 주말에 한파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금요일 저녁 동생네서 일을 마치고 이, 삼일 치 먹을 양식을 장을 보아 며칠 칩거할 채비를 마쳤다. 텅 빈 냉장고가 채워지니 마음이 부자가 된 듯 흐뭇하다. 오늘은 왠지 맥주 한 잔 하고 싶어 캔맥주도 하나 마트에서 챙겼다.

 같이 파티할 식구는 없지만 파티가 별건가. 맛있는 음식과 듣기 좋은 음악과 즐길 자유만 있으면 모든 필요조건은 충족된다. 평소 즐겨 듣는 음악을 배경음악 삼아 혼자 먹을 만찬을 준비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기념으로 마음을 다해 기쁘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을 기념하고 축하하고 싶었다.

 갖은 야채와 버섯과 다진 소고기를 볶다 토마토퓌레를 넣고 뭉근하게 조려 소스를 완성해 파스타 위에 얹고 맥주는 유리컵에 한 잔 따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역시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혼자 있는 엄마에게 관심이 없다. 무심한 녀석 대신 내가 먼저 모바일로 연하장을 써서 보냈더니 사랑한다는  답이 왔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고 표현하기 부족한 올 한 해가 저물어간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한 해. 한 해 구분 짓지 않았다면 시간의 귀함과 소중함을 우리는 과연 진지하게 고민하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까. 선조들의 시간을 나눈 지혜가 고맙게 여겨진다. 2021년 미진한 부분은 내년 22년엔 더 채워 나갈 수 있게 노력하면 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만 아쉬워하며 시간을 흘러 보내는 어리석음 대신-오늘이 쌓여 내 삶이 되듯이-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하고 싶다.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한 파스타 맛이 제법 괜찮다. 반주삼아 맛보는 쌉싸름한 맥주 맛도 오늘은 술술 부드럽게 넘어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렇게 한가롭게 시간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싱글만의 특권 아닐까. ㅎㅎ 


 

 인생은 부족한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것들을 생각하고 집중할 때 행복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요즘따라 크게 가슴에 와닿는다. 지난 시간을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시간을 낭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리석음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내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할 때 감사의 상황들이 배가 된다는 진리. 그 단순한 불변의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매서운 추위가 있어 포근함과 따뜻함이 고맙게 여겨지는 겨울의 한가운데 서있다. 오늘은 부스터 샷 접종일이다. 집에서 15분 거리의 병원으로 추위에 종종 대며 걸어간다. 몸의 컨디션은 다행히 백신을 맞기에 괜찮다. 2차 접종 때 이틀 근육통으로 고생한 기억이 있어 걱정은 되지만 별다른 부작용 없이 지나갔으니 별일 없을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병원으로 향했다.


 

 바람결에 드문드문 눈발이 섞여 날린다. 12월의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시간 앞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2022년엔 올 해보다 조금만 더 행복할 수 있기를, 좀 더 나와 타인이란 영혼을 사랑할 수 있기를... 그리고 아무쪼록 무탈한 행복한 시간이 내게 주어지길 간절한 바람을 담아 기도한다.

 생각보다 대기자가 많지 않아 30분 만에 병원에서 나왔다. 혹시 몰라 근처 약국에서 타이레놀을 하나 사고 가까운 재래시장에 들러 서리태를 샀다.  낮인데도 한산한 시장이 불황을 실감 나게 해서 씁쓸하다. 치열한 삶이 그리울 때, 무기력한 내가 부끄러울 때마다 나는 시장에 간다.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겸손함을 배우는 곳. 다시 살아야 할 용기를 얻는 곳. 이곳에서 나는 다시 꿈꾼다. 삶을 다시 소망한다.


 묵직한 팔의 통증과 근육통이 늦은 밤에 찾아왔다. 몸은 물 먹은 솜 같은데 정신은 깃털처럼 가볍다. 한동안 우울함이 나를 덮쳤지만 어느새 오뚝이처럼  일어나 새 날, 새 해를 고대하는 내게 고마운 마음으로 토닥인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흔들리면서 가는 것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나는 밤이다. 때로 운명이,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손잡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해도-나의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2021년 고마운 한 해는 이제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다시 꿈을 꾸고 다시 쓰러지더라도 새로 다가 올 2022년을 나는 기대와 설렘으로 맞이할 것이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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