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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Dec 09. 2021

송년 모임.

3차는 힘들어요;;


 문정역까지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35분 걸린다. 친구들과 12시 20분에 문정역 1번 출구에서 만나 근처 맛집에서 점심 모임을 하는 날이다. 오늘도 눈을 떠서 아침을 먹고 명희 씨 카페로 출근을 하였다. 여기에서 11시 45분쯤 출발하면 될 것 같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명희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11시 50분이다. 약속시간을 좀처럼 늦지 않는 나인데 출발시간이 5분 늦어졌다. 황급히 겉옷을 챙겨 명희 씨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뛰었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가는 방향의 버스가 바로 도착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버스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5분, 10분 늦을 것 같은데 마음이 분주하니 급해진다. 버스에 내려 지하철로 환승하는데 열차 한대가 도착 직전에 출발해 6분 정도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된다. 약속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키는 나인데 조급함과 기다릴 사람들에게 미안해 얼른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부리나케 뛰어 1번 출구로 나왔는데 아무도 없다. 연락을 해보니 내가 제일 일찍 도착했다. 마음 졸이며 달려온 게 잠시 억울해 웃다가 먼저 예약된 식당으로 가 주문을 하니 그제야 나머지 친구들이 속속 도착을 한다. 오미크론 때문에 다들 잔뜩 긴장하고 있을 텐데도 주말 맛집은 전혀 코로나에 영향을 안 받는 듯 식당 내부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모임에 2년 만에 만나는 지인을 우여곡절 끝에 보게 되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모임을 감행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이 모임의 친구들은 옛 목장 식구들이다. 알게 된 지 13년째로 접어들었다. 오십 초반 동생부터 오십 대 후반인 언니까지 다들 서글서글한 성격에 따뜻한 성품이라 몇몇은 교회를 떠났지만 그래도 가끔 안부를 묻고, 만나는 막역한 사이이다. 그중 큰언니가 미국에서 주로 생활하는 탓에 2년 만에 만날 수 있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한식집 내부가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12첩 반상 못지않은 한상을 가득 채운 맛깔나고 건강한 밥상에 담소도 잠깐 미루고 폭풍 흡입했다. 군살이 쉽게 붙는 중년 이후 늘 식이조절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오늘만은 예외로 즐겁게 지인들과 식사를 하였다.


 집순이인 나는 동네 근처가 내 유일한 생활 반경이자 주 활동 무대인데 오늘은 큰맘 먹고 외출을 나왔다. 맘먹고 나오면 즐겁게 어울리는데, 그 마음먹기까지가 힘이 드는 나는 지극히 내성적인 사람이다. 문득문득 외롭다고 느끼면서도 혼자 사부작사부작 혼자 놀기의 달인이다. 그 폐쇄적인 성향이 쉽게 바뀌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지인들이라 오랜만의 외출을 감행했다.

 


 

 떠들썩한 식당을 벗어나 인근의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여자 셋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옛말처럼 아줌마 다섯이 모여 그간의 근황을 이야기하다 보니 목소리들이 점점 커진다. 각자 사정이 있어 다섯 명이 다 모이기가 어려웠는데 연말을 맞아 다 뭉쳤으니 다들 소녀적으로 돌아간 듯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어느새 세월이 이리 무심하게  흘렀는지 꽃 같던 젊음은 사라지고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리가 시작한 여인들이 배꽃같이 웃는다. 잠시 씁쓸한 서글픔에 빠른 세월을 탓해본다.  오후의 햇살이 길게 창을 통해 넓은 카페 안을 비춘다.


 제일 맏언니이자 체력이 갑인 K언니가 어수선한 카페를 벗어나 근처의 S의 집으로 우리의 놀이터를 옮기자고 제안한다. 카페에서 십분 거리에 가족들이 다 외출 중인 최적의 장소이다. 워낙 막역한 사이다 보니 집주인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여인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겨 카페에서 나와 S의 집으로 향한다.

 



 내 몸의 배터리가 30프로쯤 남았다고 신호를 보내며 깜박인다. 다들 지칠 줄 모르는 수다는 끝날 줄 모르고 갑자기 회제가 멋쟁이 집주인의 안 입는 옷가지와 소품에 쏠리더니 금세 바자회 장터로 바뀐다. 언니들이 옷을 입어 보고 즉석에서 패션쇼를 하고 흥정을 한다. 그 모습이 우스워 빙그레 웃으니 S가 내게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니트 하나를 내민다.


 어느새 까만 밤이 내린 거리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의 수다로 방전된 에너지가 집에 오니 긴장이 풀려 피로가 몰려온다. 선물로 받은 니트를 입고 인증샷을 찍어 단톡방에 고마운 인사말과 함께 보냈다.

 인생의 중년기를 지나 노년기도 함께 갈 친구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인 날. 체력은 저질체력이라 힘은 들었지만 마음은 풍성해진 날. 2021년을 마무리하는 우리들의 송년 모임, 다들 2022년엔 아무쪼록 아프지 말고 행복하기를 잠들기 전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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