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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Feb 19. 2022

기계치의 오늘의 일기


 한 시간째 컴퓨터랑 씨름 중이다. 모바일이 익숙하고 편한 나는 거의 노트북을 쓰지 않는다. 고물이 다 돼가는 노트북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책상 한편을 지키고 있다가-모바일로 해결하기 불편한 상황에는 마지못해 펼쳐 드는 것이 고작이다. 기계치라고 하기에는 모바일은 자유롭게 다루는 편인데 늘 컴은 부담스러워 멀리 하다 보니 늘 제자리걸음이다. 친구들은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물어물어 어려움(?)이 닥치면 해결하는데 반해서 나는 늘 혼자이니 귀동냥하기도 어려워 웬만해서는 노트북을 펼치지 않는다.


 오늘은 '국민 내일 배움 카드'를 신청해서-듣고 싶은 강좌를 나라에서 지원하는 돈으로-수강해 볼 요량으로 큰맘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4년 전에 글을 쓸 용도로 저가의 노트북을 구매했는데 쓰려는 글은 쓰지도 않고, 책상 구석에 자리만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애물단지이다.


 기계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달래서 책상 앞에 앉혔다. 전원 버튼을 켜니 정상적인 상태라면 바탕화면에 패스워드를 입력해야 하는 화면이 떠야 하는데, 바탕화면이 온통 하얀 눈밭이다. 작년에 이 문제로 거금 15만 원을 들여 고쳤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으니 날린 돈만 억울해 펄쩍 뛰다 급한 맘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주말에 제부가 있으면 노트북을 들고 달려가려고 했지만 이미 제부는 다른 약속이 있어 집을 비웠다. 수리업체에 전화를 걸기에는 지난번처럼 거금이 들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데, 그 사이 노트북은 앙큼하게 멀쩡히 초기화면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행히 컴이 작동하니 심호흡을 크게 하고 우선  고용노동부 홈피에 접속했다. 내가 속한 지역의 노동청을 가서 신청하면 쉽게 할 수도 있겠지만 코로나로 연일 확진자가 10만 명 대 이르니 겁도 나고 노동부 홈페이지에서도 내일 배움 카드가 신청된다 하니 나로선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기계는 기계일 뿐. 차근차근하면 못할 것도 없지... 자고 나면 휙휙 변해가는 시대에 소외당하며 살지 말자.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시작이 반이야.' 하고 속으로 되뇌다 보니 기계에 대한 울렁증이 잦아드는 것 같았다.


 '응 별거 아니네. '카드 신청 전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고 완료 버튼을 눌러 저장해 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카드 발급되는 은행을 선택하고 수령방법을 선택하고 다음 단계로 진행을 하려 다음 버튼을 클릭했는데 다음 단계로 진행이 안된다. 갑자기 식은땀이 등줄기로 흐르고 시계를 보니 오후 11시 40분이다.

 한참만에 문제점을 찾아냈다. 카드 발급 지원 대상자에 속한 그룹마다 필요한 첨부서류가 있는데    그런 서류를 내가 컴퓨터에 저장해놓았을 리 만무하니 제출할 수가 없어 쩔쩔매다 보니, 내가 지원 대상자에 잘못 구분을 해놓은 게 눈에 띄었다.

난 백수니 당연히 서류가 필요 없고 대신 구직 활동한 증거가 필요했던 것이다. 부리나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서 구직활동 등록을 하고 이제는 카드 발급이 완료될 거라는 확신에 차있었는데 휴일인 관계로 구직활동 등록 절차가 평일에 이뤄진다는 것을 알았다. 한 시간을 넘게 써 놓은 신청서를 날려버릴까 조바심치고 있는데 다행히 '임시저장'버튼이 눈에 띄어 클릭을 했다.



 어제 12시 넘어서까지 이놈의 컴퓨터랑 씨름했더니 새벽녘에 두통이 찾아왔다. 편두통과 긴장성 두통을 함께 가지고 있는 나는 목이랑 어깨가 뭉쳐도 두통이 찾아온다. 어젯밤 '국민 내일 배움 카드'를 꼭 내 힘으로 그것도 내가 늘 무서워하는 컴퓨터로 하고 말겠다고 이판사판, 누가 이기나 보자 하고 기계에 대해 정면 도전을 한 것인데 승부는 아직까지 판정승? 월요일 되어서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겁도 많고 소심하고 새로운 문물 특히 기계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내가 그래도 혼자 해보겠다고 이리 궁리 저리 궁리하고 도전한 것이 기특해 살찔까 봐 참고 있던 에그타르트와 단팥빵을 오랜만에  카페 갔다 오면서 사 왔다. ㅎㅎ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화하는데 늘 나만 제자리걸음 같아 아닌 척하면서도 소외된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배워가야겠다. 난 할 수 있다! 아자 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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