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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Feb 18. 2022

J와의 두 번째 만남.

인연의 줄


 작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에 브런치 작가 J를 처음 만나고 5개월 만에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두 번째의 만남이지만 처음에 그녀를 만날 때의 설렘은-이제는 익숙한 편안함으로-늘 만나왔던 친구나 언니를 만나듯 한결 부드러워졌다. 첫 만남의 긴장은 사라지고 오래된 인연을 만나듯 반가움만 쑥스러움을 대신했다. 이렇게 하나의 인연이 된 것이 신기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글을 매개로 나의 갇힌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한 발 내디딘 느낌. 그것은 꽤나 신선한 일탈이었다.

 

 봄으로 가는 길목에 다시 등장한 겨울의 위세가 아직은 자신의 존재를 결코 봄에게 내주고 싶어 하지 않는-꽃을 향한 시샘답게 차가운 대기의 공기가 나른한 의식을 깨우는 날. 그녀를 만나러 참으로 오랜만에 동네를 벗어나 시내 방향으로 지하철을 탔다. 전업주부였던 나와 달리 오랜 직장생활을 한 그녀는 6개월의 휴직 기간으로 비로소 시간의 여유가 생겼고 고맙게도 다시 우리가 뭉칠 것을 제안해 왔다. 그녀의 집으로의 초대가 어찌 보면 불편할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낯선 초행길을 가게 되었다. 첫인상의 그녀는 야리야리한 여성이었고 사람 좋은  배려심 많은 사람이었다.


 첫 방문이라 고심 끝에 그녀도 나도 부담스럽지 않을 선에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그녀를 닮은 향긋한 차 세트가 그녀가 글을 쓰고 휴식을 취할 때 좋을 것 같았다.



 일 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집 근처 동생네와 명희 씨 카페에서 시간을 소비하는 내가 모처럼 시내 나들이를 간다니-그것도 온라인에서 알게 된 동료 브런치 작가를 만난다니 나를 잘 아는 동생이 신선하다는 듯 깜짝 놀란다.


 지하철 환승장에서 두리번거리다 목적지 방향인 열차를 갈아탔다. 내가 꼭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부 같아 웃음이 나왔다. 혹 다른 방향으로 열차를 갈아탈까 봐 걱정했던 마음과 긴장감이 어느새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잘 지냈어요?" 역까지 마중 나온 J, 그녀와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처의 맛집에서 수육과 국수를 주문해서 점심을 먹었다. 편백나무 찜기에 고기와 숙주를 찐 고기 찜인데 담백하니 깔끔한 맛이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갑자기  편찮으신 부모님으로 인해 1년이란 시간을 가슴앓이 한 그녀의 상황과 친정엄마를 요양원에 모신 나의 상황이 묘하게 닮아있다. 부모님에 대한 안부로 시작된 대화가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생로병사의 운명을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음을 느끼는, 씁쓸하고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빛이 잘 드는 거실의 식탁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좋아하는 커피를 사이에 두고 무기력한 삶을 오래 살아낸 나와 달리 한 분야에서 30년을 한결같이 같은 분야에서 한우물을 판 그녀의 성실함이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잠시 나의 삶을 돌아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직장생활 틈틈이 자기 계발에도 힘쓴 J가 에너지 넘치는 사람임을 몇 마디 말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글을 공통분모로 만난 결이 다른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삶을 나눈다는 것이 참으로 신비한 인연 같았다. 식탁에 소담스러운 수국과 행복하게 웃고 있는 부부의 사진 액자가 잘 닮아있어-그 밝은 기운이 내게도 전달되어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를 닮은 공간에 그녀와 내가 봄빛같이 웃으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 귀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J의 집에서 나와 함께 지하철 역으로 만남의 아쉬움을 담고 걸었다.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뭉칠 것을 약속하고 손을 살포시 잡았다. 갇힌 나만의 세계에서 세상으로 비로소 나아간 느낌. 그녀를 통해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를 만난 느낌. 우리의 만남이 어떤 빛깔과 모양으로 완성될지는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분명 귀한 인연의 축복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과의 처음 인연은 하늘의 영역이라면 그 인연을 아름다운 인연으로 가꾸는 것은 분명 사람의 몫 이리라 생각한다.

  벌써부터 봄빛 충만한 생명의 계절에 그녀와의 담소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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