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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y 12. 2022

아름다운 오월의 어느 날.


 어제 자취하는 아들의 이삿날이다. 같은 경기도권 내에서 이동하는 것이지만 지금 이사하는 곳이 내가 사는 서울에 더 가깝다. 그동안 거리가 멀어서 자주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마음이 한결 편하다. 물리적 거리가 짧아지니 자연스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어버이날 전날이 아들의 이삿날이라 별 기대는 사실 하지 않았다. 전화 한 통 정도 할 거라 생각했는데 토요일 밤늦게 전화가 왔다.


  어버이날 점심을 같이 하자고 내 예배 끝나는 시간에 집으로 오겠다 하니 뜻밖의 아들과 식사 약속이 너무 신나고 감사해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자식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지만 큰 효도를 바라지 않고 그저 저 하나 잘살기 바랄 뿐이니 솔직히 큰 기대가 없다. 기대치가 낮으니 솔직히 섭섭할 일도 별로 없다. 이렇게 가끔 아들이 내게 마음을 표현하면 너무 고마울 뿐이다. 모든 부모 마음이 그럴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아들을 위한 기도가 하늘에 닿아 열매 맺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 그것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일 것이다.



 다행히 요 며칠은 잠을 수월하게 잔다. 2주간 하루 2,3시간 토막잠을 자던 내가 며칠은 4,5시간 조금 깊은 잠을 잘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2주 사이 2kg이 저절로 빠져 입던 바지가 헐렁할 정도니 수면부족이 얼마나 건강에 안 좋은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모처럼 상쾌하게 기지개를 켜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복용했던 수면제 약을 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불면은 통과의례 같은 건 아닐까. 하루빨리 수면리듬이 정상을 찾는 것이 나의 요즘 가장 바라는 소원이다.


 열린 창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잔뜩 흐린 날이 곧 비가 쏟아질 듯 무겁고 낮게 가라앉아 있다. 내가 오늘 예배를 드릴 성전은 내가 사는 집에서 10분 거리의 교회다. 쌀쌀한 간절기에 입을만한 정장 외투가 없어 한참을 옷장을 들여다보았다. 마음에 드는 옷은 없지만 제일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본다.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마음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예배를 드리고 나오니 아들과 약속한 시간이 1시간 반쯤 남았다. 명희 씨 카페에 명희 씨 대신 주말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이 나를 반긴다. 늘 똑같은 자리에 늘 똑같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나를 기억하고 웃으며 맞이한다. 여유롭고 한가한 휴일 오전이다. 카페 앞 정원의 장미나무에 벌써 봉오리가 맺혔다. 계절의 여왕 5월, 1년 중 내가 제일 사랑하는 계절 봄 중에도-신록의 건강한 빛으로 충만한-5월이 나는 가장 좋다.

 

 아끼고 사랑하는 시간들은 빠르게 치나 간다. 천천히 가기를 소망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붙잡으려 하면 할수록 시간은 흔적도 없이 아스라이 사라져 간다. 앞으로 얼마나 이 축복의 신록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오늘, 이번이 마지막 축제처럼 온몸에 뜨겁게 각인시킨다. 오늘을 기쁘고 행복하게 설령 내일이 오지 않을지라도 후회 없이 사랑하겠노라고 나지막이 입술을 열어 고백한다.



 집으로 도착한 아들이 내민 카네이션을 받아 쥐고 아들을 가볍게 안아주었다. 내 품에 안기기에는 너무 커버린 아들이 나를 벅차오르게 한다. 분홍빛 카네이션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물들인다.

 집 근처의  냉면 집으로 자리를 옮겨 아들이 대접하는 냉면과 만두를 먹었다. 내 앞에 어느새 장성하여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어른이 된 아들이 앉아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오늘 같은 날도 엄마에서 아빠에게로 향하는 아들에게 미안하고 가슴 아프지만 내색 대신 아들의 손을 꼭 쥐고 쓰다듬었다.

 

 아들을 배웅하고 집 근처에 있는 산책로가 있는 동산으로 향한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있는 숲에서 연초록의 싱그러운 나뭇잎들이 바람에 파도가 되어 출렁인다. 생명의 빛이 가득한 곳에서 마음이 맑게 정화되는 이 시간. 찰나같은 순간이지만 그 황홀한 아름다운 오월의 자태에 내 마음이 떨리는 행복으로 차오른다. 귀한 하루 온전히 나의 아버지 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살아있음은 정령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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