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쁜손 Nov 28. 2020

복약안내문

엄마의 인생...

 오늘은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퇴원하시는 날과 동시에  엄마의 요양원 입소일이다. 작년 이맘때 응급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후(허리골절로 입원 하심.) 1년을 요양병원에서 생활하시다 오늘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신다.

 어젯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엄마에게 골다공증은 노년의 삶의 질을 송두리째 뺏은 불치병이다. 어떤 수술이나 시술로도 엄마의 얼기설기한 엉성한 뼈조직을 채울 수는 없었다. 허리골절만 다섯 번째, 약해진 뼈는 재채기에도 주저앉았다.

 그래도 작년 병원에 입원 전까지는 움직이시고 생활하시는데 별 불편이 없으셨는데... 다섯 번째 골절 이후 엄마는 혼자서는 움직이실 수 없게 쇠약해지셨다.


 아침부터 동생과 나는 분주히 서둘렀다. 한 사람은 엄마의 짐들과 약을 챙기고 의사의 주의사항을 귀담아듣고 다른 한 사람은 퇴원수속을 하고 사설 119를 부르고(요양원 입소 전 간단한 건강검진과 코로나 19 검사)...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엄마가 기거할 곳이 자식들의 집 근처라는 것. 그것이 위안이 되실지...

입소절차는 복잡했다. 두 시간가량 입소 서류를 읽고 서명하고, 읽고 또 서명하고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서야 끝이 났다.


 시간은 오후 3시를 가리킨다. 아파트 단지 내 가락국수 집이다. 동생이랑 말없이 국수만 꾸역꾸역 입으로 넣고 있다.

 낯선 환경에 불안해하실 엄마가 떠올라 목이 멘다. 동생도 별 말이 없다.

 허기를 달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참만에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요양원에서 필요 없다고- 철 지난 엄마 옷이랑 소지품을- 챙겨준 가방을 한쪽에 밀어 놓았다

 

 어둑어둑하다. 잠에서 깼다. 정신을 차리고 밀어놓은 가방을 열어 본다. 엄마의 낡은 철 지난 옷들, 모자, 동전 지갑... 엄마의 초라한 소지품이 내 가슴을 마구 할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방 밑에 퇴원 시 담당 간호사가 챙겨준 서류가 보인다.

 엄마의 '복약안내문'(복용할 약의 자세한 효능에 대해 설명한 안내문)

이름도 생소한 품명과 용법, 효능을 읽어 내려간다. 마도 파정, 제프 람정, 뉴큅정, 제이더블유 도네페질 정...(알츠하이머 형태의 치매 증상 완화제, 파킨슨 병 치료제 등)


 엄마는 항상 당신이 소학교만(지금의 초등학교) 나온 것을 부끄러워하셨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나의 외할아버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집안 형편은 어려웠고 그 당시 사회분위기상 상급학교 진학 순위는 남자 형제 우선이었으니 엄마까지 차례는 오지 않았다.(7남매 중 다섯째)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항상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있으셨으나- 병약한 남편, 괴팍한 시부모와 시누이 그리고 어린 세 자녀를 건사하느라-정작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은 없으셨다.

 우리 집은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자식들을 다 대학에 보내셨다. 당신의 못 배운 한을 자식들을 통해 풀고 싶어 하셨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시는 것을 못 봤다. 대식구 살림에 아빠랑 같이 장사를(속옷가게, 양품점, 수입상품점 등 안될 때마다 빚을 져서 다른 일을 하심) 하시고 저녁에 들어오시면 식구들 상 차리고 당신은 눌은밥에 김치로 끼니를 때우기 일수였다.

 딸들이 철이 들 무렵엔 식사 좀 제대로 하시라 성화를 부려도 좋고 맛난 것은 어른들과 자식들에게 미루고 당신은 부실한 식사를 하셨다.

 어린 나는 그런 엄마가 청승맞아 보여 '나는 결혼하면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자주 다짐하곤 했다.


 의사는 나와 동생을 보며 더 이상 수술이나 어떤 치료도 해줄 게 없다고 한다.(뼈의 골밀도가 너무 낮고, 86세의 고령이시라) 그냥 엄마의 5번째의 척추 골절을 지켜보자고...

 동생이랑 눈이 마주쳤다. 동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작년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엄마는 요양병원으로 떠나셨고 이제는 두 번 다시 걷지 못하신다...

 일 년 만에 엄마 대신 돌아온 것은 엄마의 낡은 소지품 몇 개 그리고 새로운 병명을 짐작할 수 있는 복약 안내문...



 집안을 천천히 둘러본다. 여기저기 엄마의 손때 묻은 살림들이 소곤댄다.

' 아프지 말라고, 울지 말라고, 밥 많이 먹으라고...

 그리고 난 괜찮다고, 난 괜찮다고...'

 

 


 

 

 

 


 

 


   

 

작가의 이전글 "참 잘했어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