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면 나는 내게 선물을 준다. 그냥 평소 아무도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한해 수고한 나를 토닥토닥 칭찬하는 의미이다.
작년엔 크리스마스 무렵에 평소 눈여겨본 빨간 무선 포트를 사고 한동안 좋아했다.
'안 그래도 재미없고 고달픈 인생에서 이런 서프라이즈쯤은 괜찮겠지. ' 하고 어려운 시기도 이 행사를 이어갔다.
내년엔 더 큰 에너지를 내라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았다.
작년에 상으로 받은 빨간 포트에 물을 끓였다. 뿌듯하다. '올해는 어떤 것이 갖고 싶니?'마음속의 내게 묻는다. 씩씩하게, 열심히 잘 살았다. 어느 해보다 받을 자격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들뜬 기분도 잠시 현재 3개월째 백수라는 생각이 드니 금세 풀이 죽었다.
'아니 괜찮아~ 이 정도로 연말 시상식을 포기하면 안 되지...'
'난 지금 당근이 필요해! '
풀 죽은 어깨가 다시 쏟아 오른다.
'뭐가 좋을까? '고민을 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옛날엔-불과 2,3년 전-갖고 싶은 것이 차고도 넘쳤는데, 세상은 풍요롭고 나만 항상 빈곤했었는데...
옷 좋아하고 치장하는 것들도 한때라고 선배 언니들이 그러더니 정말 나도 그 '한때'가 지나갔나?
얇은 주머니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다행이라 여겨졌다.
백수라 가진 건 시간뿐이다.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눈에 거슬리는 살림살이가 보인다. 해묵은 때를 벗겨내려 며칠을 씨름했다.
첫날은 옷장 정리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계절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정리했는데도
또 안 입는 옷들이 나온다. 휴~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떠오른다.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버릴 것, 기부할 것, 지인한테 줄 것으로 분류했다.
둘째 날은 주방용품 정리. 그중 그릇 정리가 가장 날 고심하게 만들었다. 이혼 후 친정으로 최소한의 살림만 갖고 왔을 때 들고 온 그릇들이 베란다에 그대로 박스채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난 옷도 좋지만 예쁜 그릇도 참 좋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플레이팅 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소수정예만 남기고 그중 새 것은 동생을 불러 안긴다. 나머지는 폐기물 봉투에 담고...
셋째 날엔 가방, 신발 그 밖의 잡동사니들과 씨름을 했다.
참 한 사람에게 속한 물건이 생각보다 많은데 놀랐고 이외로 없어도 하나도 안 불편할 물건을 지니고 산다는데 또 놀라웠다.
연말은 더욱 쓸쓸할 때가 많았다. 꿈꾸다-내가 자주 가는 카페 이름-에서 보이는 거리엔 가을비가 내린다. 이 비 그치면 얼마 안 남은 잎새들이 다 거리에 떨어지겠지...
곧 12월이 다가온다. 각계 다방면 인사들이 한해의 성과를 놓고 시상하고 축하하는 시기가~
주머니가 얇아도 아직 마음엔 여유가 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 내 딴엔 잡초였는데, 직장상사는 나보고 온실 속 화초라고 구박 꽤나 했다. 그래도 헤헤거렸으니, 잘했어요~~
아니 "참 잘했어요!"
올 선물로 내 마음에 큰 도장을 꾹 찍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