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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Nov 24. 2020

참을 수 없는 엉덩이의 가벼움?

밀란 쿤테라를 떠올리며...

 일주일째 강행군해서 글을 썼더니 목, 어깨, 손목이 뻐근하다. 오전부터 무언가 조짐이 안 좋다. 아니나 다를까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오른쪽 관자놀이가 욱신거리고 눈이 빠질 듯 아파 오기 시작한다.

 마시던 커피를 남기고 가방을 싸서 집으로 향했다.

점심도 거른 체 약을 먹고 두어 시간쯤 누워 있으니 두통이 가라앉았다. 혹 가라앉은 두통이 재발할까 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나는 휴일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날이 그날인 백수여서 그런 것은 아니고 지금은 훨씬 덜 하지만 좀 쓸쓸하고 외롭달까??

 평일엔 친구들이 전화도 자주 해 수다 떨다 보면- 집안일하랴 일하랴 -시간이 뚝딱 가는데, 휴일이나 주말엔 친구들은 제 가족들과 여가 생활을 즐기느라  나한테는 관심이 없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지만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연락을 끊어 가끔 서운했다.

 그냥 동네 한 바퀴, 커피 한 잔 카페에서 마시고 집에서 음악 듣고 시간 보내는 것이 내 일상의 전부인데  휴일은 그러기엔 시간이 넉넉해서 쓸데없는 잡생각이 들 때가 많은 게 문제다.

 앞으로 다가 올 노년의 삶은 더 고독하고 쓸쓸할 텐데... 싱글인 나는 더욱 고독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친구들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나는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내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나는 1967년생이다.) 시절은 대부분의 사람이 넉넉지 않았다.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낄 수 있었던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었다.

 삼 남매의 둘째로 나는 어릴 적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아주 잘 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왜곡된 기억일 수 있겠지만. 호호

 초등학교 입학해서 상을 몇 번 탔었고... 얼마 못가 비슷하게 잘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는  슬그머니 그 취미도 사라졌다.

 중학교 입학해서는 국어시간에 '나의 꿈'이란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  학급 아이들과 선생님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글쓰기가 내 재능일 수도 있겠구나 처음 생각해 보았다.


 난 벼락치기 선수다. 보기와는 다르게  집중력도 약하고 매사 진득하지 못하다. 악기니 어학, 만들기 등 무언가 배우려 마음먹고 달려들고는 며칠 아니 길게는 한 달 이상 붙어있지 못했다.

 그러니 학업도 꾸준히 예습, 복습하는 스타일이-엉덩이가 무거운 꾸준함-아니라 단기로 몰아치는 선수였다. 시험 끝나면 나의 얕은 지식은 금방 날아가버렸다. 그래도 성적은 운이 따랐다.

 고등학교 시절은 내 글재주가 객관화되었던 시기이다. 교내 백일장은 물론 외부상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때도 여전히 시험을 코 앞에 두고 공부하는 습관은 지속되었다.


 내 요즘 화두는 외로움이다. 노년으로 가는 길은 누구나에게나 공평하게 오는 길이다. 그 길을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잘 견딜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늙어 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축복이다. 하지만 인생길은 누구나 외롭다. 나도너도우리도모두...

 나는 재능을 비교적 일찍 발견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을 오래 가꾸지 못했다.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이 내게 당부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누구든지 10년 이상 한 분야를 갈고닦으면 전문가가 된다고... 당신의 제자가 끝까지 꿈을 이루길 바라셨던 선생님.


 머리가 맑아지니 살 것 같다.

 얼마 전 소풍길에서 페북 친구 박 집사님이 나  보고 글을 써 보라 하셨다. 벌써 여러 번 째다. 그때마다 쑥스러워 웃고만 말았는데  오늘은 "정말요?"하고 되묻는다. 진짜라고 나의 탤런트라 하신다.

 이상하다. 용암이 분출하듯 소풍 후 나는 나의 노래를 계속 써 내려가고 있다.

 돌아와서  지금까지  두통이 밀려올 때를 빼고는 꼬박 앉아 글을 쓴다.

 휴일인데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다. 마치 오래된 연인을 만난 듯 포근하다.


 이 나이 먹도록 나는 나를 잘 모를 때가 많다. 철없을 적이 오히려 분명하다고 여기는 것이 많았는데, 인생을 좀 살다 보니 더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 가지 참을 수 없이 가벼웠던 내 엉덩이가 묵직해졌다는 것이다.

 살다 보니 삶은 벼락치기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반백을 넘어 깨달았다.

 

 이 가을 끝자락에서 나의 반쪽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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