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아침 바람이 불어온다. 넝쿨장미가 만개한 담장을 따라 길을 긷다 하늘을 보니-청명한 푸른빛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날. 너의 고운 얼굴이 떠오른다. 고운 자태보다 훨씬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너를 떠올리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네.
나는 오늘도 새벽예배를 마치고 교회 옆 카페에서 차를 주문하고 네게 편지를 쓴다. 아침 햇살이 넓은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자리에 앉아 빛으로 충만한 녹색정원을 바라보는 일이 새삼 참 감사하게 여겨지는 아침. 네가 만약 지금 내 앞에 있으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고 잠시 상상해 본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아니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네가 갑자기 그립다.
어젯밤 잠자리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다 갑자기 내게 주어진 삶이 말할 수 없는 부담감으로 밀려오며 나를 누를 때 왜 네 얼굴이 떠올랐을까...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 왠지 너라면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따스한 눈빛으로 내 손을 잡아 줄 거라고 느껴졌나 봐. 닌 가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멀미가 날 때가 있어. 이성으로 제어하기에는 그 불쾌한 감정이 너무 커서 주체 못 할 때 나는 종종 나의 무기력함을 인정 힐 수밖에 없는 날. 어젯밤이 그런 날이었어.
친구야, 서늘한 가슴과 붉어진 눈동자로 삶의 무수한 존재 이유와 감사함을 찾으며 나는 긴 밤을 동트는 새벽빛으로 바꾸었지. 그 무수한 삶의 이유 중 너의 지치지 않는 삶에 대한 도전과 열정도 내게 자극이 되었단다.
흔들리지 않는 삶이 어디 있을까. 너의 고단한 여정도 나의 삶과 어딘가 닮아 있기에 어쩌면 더 가깝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다른 듯 닮아 있는 삶. 다른 것이 있다면 중간에 결혼생활을 포기한 나와 달리 너는 끝까지 너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이지.
정답이 없는 삶이지만 지혜롭고 심지 굳게 사랑으로 인내하는 너의 삶에 잠시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일까 하는 자책이 들었지만... 친구야,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나의 그릇의 크기 같다.
학창 시절 너와 친한 무리는 아니었지만 얼마 전 30년 만에 너를 재회하고 참 신기했던 것은 긴 시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마치 오래전 헤어졌다 다시 만난 영혼의 단짝을 만난 듯 행복했어. 각자의 삶에서 마주한 시련들이 우리를 서로 공감하게 했고 서로를 연민으로 그윽이 바라보게 했지.
친구야, 올해 최고의 선물은 너를 만난 순간이라는 것을 나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단다. 나의 남은 시간을 함께 할 친구로 네가 곁에 있음이 감사해.
다행히 지난 시간에 미련을 두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상하게 요즘은 옛일들이 꿈속에서 악몽으로 나를 어지럽혀. 시간 안에 풀지 못한 답안지를 제출하지 못하거나, 어린 아들을 잃어버려 찾아 헤매다 깨는 꿈을 자주 꾼단다. 무엇이 나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는 걸까.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지만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심연에 웅크린 불안의 정체를 찾기엔 나의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아.
이런 복잡하고 질긴 불안이 나를 잠식하려 하지만 나는 매일을 주저앉지 않기 위해 나의 온몸의 에너지를 다해 저항하고 있어. 어쩌면 요즘 새벽예배에 매달리는 것도 하루치의 평안과 용기를 얻기 위한 몸부림이겠지.
오랜만에 전한 소식이 온통 어두운 이야기이네. 미안 친구야~~ 하지만 네게는 가장 솔직하고 싶어. 조만간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우리의 뜨거운 삶을 이해하기엔 세상은 온통 아이러니와 미지수로 이루어졌지만 각자의 역량의 분량대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닐까.
그냥 불평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면 그걸로 되는 것이겠지. 꼭 최선을 다한다고 꼭 결과가 좋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미련과 후회는 없겠지...
친구야, 오늘 주어진 이 날이 내게 반짝이는 어느 날 중 하루가 되기를 축복한다. 평안이, 감사가 네 삶에 차고 넘치기 바라며 네게 나의 사랑을 보낸다.
2022년 6월 12일 너의 친구 예쁜 손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