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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ul 29. 2022

여름 풍경


 카페 앞 배롱나무에 연분홍빛 꽃들이 활짝 피었다. 아침부터 지면에서부터 올라오는 후덥지근한 열기를 느끼며 더위를 피해 명희 씨 카페로 들어섰다. 여름은 여름대로 더위를 많이 타는 내게 찌는듯한 한여름의 열기는 사람을 많이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한여름에 핀 짙은 초록잎 사이로 핀 분홍빛 꽃들이 오랜만에 내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바람조차 휴가를 떠났는지 7월 말의 거리는 숨 막일 듯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다. 집에서 카페로 걸어오는 10여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명희 씨에게 인사를 하고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늘한 공간 속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눈으로는 창밖 풍경을 지그시 바라본다.

 뜨거운 여름이 좋아 일 년 중 여름만 손꼽아 기다린 적도 있었고 아들의 어릴 적 이름을 여름같이    밝고 빛나고 생동감 넘치라고 '여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2인 큰 조카가 방학을 맞이하여 3주간 기숙학원에서 공부를 하느라 집을 떠난다. 자연스레 이번 주 저녁 메뉴는 조카가 먹고 싶은 것 위주로 준비하려 한다. 앞으로 식구들과 잠시나마 떨어져 있을 조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은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이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대신하려 한다.

 

 한참을 검색하며 고민하다 닭가슴살과 국수 요리를 좋아하는 조카의 취향에 맞는 레시피도 간단한 골뱅이 비빔국수와 닭가슴살 부추 덮밥 그리고 콩나물밥으로 결정했다.

 차창의 풍경을 보니 바람 한점 없는지 초록으로 물든 정원이 정지된 듯 미동도 없이 그렇게 서있다. 이 고요가 좋아, 짙은 초록빛이 좋아 물끄러미 정원을 바라본다. 바닥났던 내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생명의 초록 기운으로부터 충전되는 느낌. 자연은 지친 마음을 여는 생명으로 가는 축복의 우주임을 입술을 열어 나지막이 고백한다.



 동생네 현관을 들어서니 조카들이 나를 반긴다. 며칠 후면 기숙학원으로 떠나는 조카가 짐을 싸기 분주하다. 가지고 갈 소지품을 메모지에 기록해서 행여 빠지는 물건이 없도록 챙기는 조카를 보니 아기적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언제 저렇게 듬직하게 자랐나 싶다. 아이들 세대가 자라는 것을 보며 세월의 빠르고 덧없음이 실감돼서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왔다.

 쌀을 씻어 살짝 불려놓고 다진 소고기에 불고기 양념을 해서 볶아 놓았다. 콩나물을 깨끗하게 씻어 불린 쌀 위에 수북이 얹어 평소보다 밥물을 적게 부은 채로(콩나물에서 수분이 많기 때문에 평소처럼 밥물을 부으면 질어질 수 있다. 보슬한 밥을 짓는 것이 콩나물 밥의 맛을 좌우한다.) 밥솥에 담아 취사 버튼을 누르고 양념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잘 익은 여름 오후가 빠르게 간다. 작은 조카가 나를 부른다. "이모, 수박 주세요." 둘째의 사근사근한 음성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잘 익은 수박을 보기 좋게 썰어 접시에 담아 조카에게 갖다 주니 조카가 환한 미소를 담아 "고맙습니다." 하며 폴더 인사를 한다. 그 귀여운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 우스워 사랑의 하트를 조카에게 날리며 참으로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구수한 콩나물밥이 다 될 무렵 퇴근한 동생이 집으로 들어온다. 업무와 더위에 지친 동생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식탁에 고슬고슬한 콩나물 밥을 볼에 적당히 담아 양념장과 열무김치와 함께 차리고 아이들을 부른다. 무더위에 입맛 없는 동생과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몇 술 뜨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담백한 건강식을 좋아하는 큰 조카 녀석은 자주 해달라 하니 오늘의 메뉴는 성공이다. 소박한 밥상.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밥. 문득 요양원에 계신 엄마와 자취하는 아들이 생각난다. 가슴 한편이 아릿해져 온다...


 매일 새벽 첫 시간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를 위해 기도하며 하루치의 살아갈 희망을 공급받는다. 올해도 무탈하게 다들 건강하게 보낼 것을 소원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요즘. 근사하고 멋진 일을 꿈꾸기보다는 이 무료하고 고인 일상이 어쩌면 큰 행운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잠시 잃어버렸던 감사가 고개를 든다. 무탈하고 평온한 일상이 가장 큰 축복임을 어리석은 내가 비로소 깨닫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지나는 사람들과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거창한 포부와 계획이 아닌 오늘 하루의 감사가 살아있는 진정한 삶의 행복을-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꿈꾼다. 때론 지치고 힘들 때에도 지치지 않는 사랑의 마음으로 나를 일으키며 다시 일어서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내게 7월의 녹음은 앞으로 가라고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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