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사랑스러운 룸메이트 마루는 2년 3개월 된 수컷 강아지입니다. 앞으로 2주간 저와 동고동락을 함께 할 견공입니다. 오래전 독립한 아들이 애지중지 키우는 요 녀석은-가끔 지방으로 출장 가는 아들 덕에(?) 제가 맡아 돌볼 때가 있는데요, 이번엔 아들이 길게 출장을 가는 탓에 꼼짝없이 할머니 노릇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직 할머니란 호칭에 거북스럽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하지만요 아들이 형대신 마루한테 아빠를 자청했으니 자연스럽게 제가 타의 반으로 이른 할머니가 되었네요.
사실 저는 강아지를 좋아하기는커녕 무서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는 성격인데요 참 이상하죠. 첫눈에 반한다는 감정이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사람한테서는 한 번도 못 느껴본 감정이었는데... 방문한 아들 집에서의 첫 만남에서 저는 운명적으로 이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네 그건 바로 운명이죠. 뽀송뽀송한 솜뭉치가 제게 아장아장 걸어와 제 품에 안기던 순간을, 그 운명의 떨리는 조우를 또렷이 기억합니다. 편견과 선입견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제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날. 전 마루의 특급 매력 속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엄마, 마루 2주만 부탁해요. 저 원주 현장 가요. 오늘 저녁에 갈게요."이번에도 불쑥 아들은 전화를 걸어 의논이 아닌 통보를 한다. 마치 외로운 내게 큰 선물이듯 마루를 맡기려 하는 아들이 참 답답하고 단순하다고 여겨지지만, 어미가 돼서 아들의 사정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래, 고생이 많네. 마루 걱정은 하지 마. 둘이 사이좋게 지낼게. 엄마 일할 때는 애견 유치원에 맡기면 될 거야." 하고 아들을 안심시킨 뒤 몇 시간 뒤 마루의 사료와 필요한 짐을 한 보따리 짊어진 아들이 마루를 안고 내게 왔다.
서른 하나 아들은 스물아홉 좀 늦은 나이에 타일공이 되었다. 늘 고된 육체적으로 강도가 높은 일을 감당해야 하는 아들의 환한 웃음을 본지 얼마나 되었는지 가물가물 하다. 젊음으로 반짝반짝 빛나야 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찌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에 항상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내 가슴은 슬픔으로 찰랑거린다.
아빠 품에서 빠져나온 마루가 폴짝폴짝, 빙그르르 내 주위를 맴돌며 꼬리를 흔든다. 마루를 번쩍 안아 내 품에 안고 꼭 끌어안으니 마루가 내 뺨을 핥는다. 7kg에 육박하는 마루가 조금은 묵직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과 그리움은 아픈 어깨의 통증에도 한참을 안고 어화둥둥 내 사랑, 사랑가를 떠올리며 보듬고 또 보듬었다.
가족이 된 다는 것. 인간과 동물이란 다른 종이 함께 식구가 된다는 것이 나는 이 아이를 통해서 가능해졌다. 아들이 마루를 자식으로 입양한 순간, 당연히 내겐 이 아이는 하나의 의미로 다가왔다. 김춘수 님의 꽃이란 시처럼 마루는 내게 와 꽃이 된 것이다.
부리나케 현장으로 아들은 떠나고 아빠를 보낸 마루가 내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졸고 있다. 밤이면 불쑥 찾아오던 서늘한 외로움이 이 작은 생명체 하나로 따뜻한 온기로 바뀌었다. 마음속에 환한 등불 하나기깊은 밤을 밝힌다...
잠든 나의 얼굴을 일찍 잠에서 깬 마루가 핥으며 계속 꽁꽁 거린다. 놀아달라고 보채는 녀석의 애교에 일치감치 늦잠을 포기하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마루와 걸어서 30분 거리의 동네 강아지 유치원으로 향한다. 내가 일하는 동안 집에 홀로 두기 미안해 격일로 맡길 유치원을 찾아 그동안 지인들에게 묻고, 인터넷 검색해서 찾아낸 놀이방이다.
흡사 손주를 놀이방에 맡기는 심정이 이런 걱정스러운 마음 아닐까. 무섭게 짖어대며 텃세를 부리는 무리 속에 남겨 두고 일터로 향하는 마음이 짠하고 쓰리다.
오늘 조카들에게 해 줄 메뉴는 육개장이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걸리는 음식이라 마음이 급하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마루의 동그란 얼굴이 불쑥불쑥 떠올라 빠르게 재료를 손질하고 분주히 음식을 조리했다. 맛있게 조카들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과 나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마루에게 빨리 가고 싶은 두 마음이 나를 재촉한다.
급하게 서두르다 칼에 손을 베었다. 잠시 아픔에 미간을 찡그리다 깊게 베이지 않음에 감사했다. 이 나이에도 유난히 칼질이 느리고 서툰 내가 주부 9단이 아닌 아직도 아마추어 같아 민망한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성실함은 타고났지만 일머리가 부족한 내가 모든 일에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에 조금은 답답하지만, 그래도 내게도 분명 좋은 장점이 있으니-서투르고 모자라는 부분도 나의 일부분으로 감사하며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마루야~~ 할머니 왔어." 놀이방 문을 열자마자 마루가 내게 달려와 반가움에 짖으며 내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뛰기 시작한다. 누가 나를 저토록 열렬히 반기고 사랑할 수 있을까.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인간보다 낮은 미물이지만 녀석의 무한 사랑에 하루의 피곤이 눈 녹듯 사라진다.
놀이방을 나서자마자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하는 마루를 따라 뛴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날아갈 듯 자유롭고 평온하다. 서쪽 하늘에 붉은 진홍빛 노을이 아름다운 저녁이다. 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모든 살아있는 생명과 그 주위를 둘러싼 우주의 경이로움에 숙연해진다.
저의 친구이자 손주 마루와 동거 1주 차입니다. 전 녀석과의 동거로 외로움은 잠시 사라졌지만 대신 혼자 누리는 자유는 사라졌지요. 모든 삶이 그러고 보면 참 공평하네요. 모두 다 갖춘 삶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된 일주일이었습니다.
행복은 상대적이라고 하죠. 모든 사람들이 평생 그것을 찾아 헤매죠. 저 역시 그 파랑새를 찾아 오랜 시간 헤매었죠. 어찌 보면 우리 가까이 그리고 도처에 숨은 숨은 그림을 찾는 것이 행복을 찾는 일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행복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는 것. 이것이 제가 찾은 방법입니다.
저는 하루살이 삶을 삽니다. 오늘 하루 주어진 삶만 집중하며 잘 살아가는데 온 맘과 힘을 기울 입니다. 이런 오늘들이 모이고 시간이 쌓이면 나중에는 제법 괜찮은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는 않을까요.
뜻하지 않은 할머니가 됐지만요~~ 지금은 할머니라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아들과 마루가 건강하게 제 곁에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오늘도 마루는 제 곁에서 고개를 갸웃대고 놀아 달라고 애교를 부리죠. 어, 지금도 신나게 음악을 틀고 막춤을 추는 저를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까맣고 빛나는 그 눈동자에 제가 담겨 있네요. 행복 가득한 미소 띤 얼굴이 또렷이 담겨 있습니다.
아들아, 마루야 엄마가, 할머니가 너희들을 진짜 진짜 사랑해. 사랑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