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잠도 못 이루고 가슴앓이를 했다. 아니 머리가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12월의 강가에는 처연한 겨울바람만 불고 있었다.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이 한 달 만이다. 지난달 가까운 지인들과 나들이 길에 들른 강가, 양수리 두물머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곳, 이곳에서 나는 강을 바라보며 새로운 꿈을 계획했었다.
햇빛에 비친 강물은 은빛으로 일렁이고 있었고 난 흐르는 강물을 보며 잃어버린 꿈의 조각을 찾아 다시 맞췄다.
글을 쓴다는 것, 나를 쏟아내는 작업을 한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 꿈으로 접어두고 생활 속에 묻어버렸다.
변명 같지만 매번 나를 옥죄는 상황에서 그것을 실행해 옮기기에는 열정도 에너지도 바닥이었다.
상황은 별반 나아진 것은 없는데... 그러던 내가 그날 그곳에서 내 내면 깊숙이 울리는 갈망을 발견했다.
오랫동안 쌓아놓은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작업. 설렘과 행복이 공존하는 시간. 바닥이었던 자존감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고 내가 비로소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고마운 시간들이었다.
열흘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는 처음 브런치의 작가 신청에 문을 두드렸고 삼일 후 축하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것이 나의 이야기의 시작이다.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절망에 익숙한 나에겐 무언가 새롭게 잡고 일어 설 희망이 필요했다.
난 메일을 받고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기를 소원하실 엄마 얼굴도 떠올랐다.
그렇게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꿈은 내 품으로 다시 돌아왔고 나는 달콤한 꿈을 꾸듯 행복했다.
나는 재주가 많은 사람은 아니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멀티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먼 -일 못하는 사람, 일못에 가깝다. 빠르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보다는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고 그 가운데서 나를 성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은 자아가 성장하는데 방해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고 자기에게 맞는 속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난 좀 느리더라도 들의 풀꽃, 뺨을 스치는 바람, 나를 감싸는 대기의 온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느끼고 싶다.
어쩌면 글을 쓰는 것은 재주 없는 내가 유일하게 나를 가장 나답게 세상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하루하루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가는지 모르게 빠르게 흘러갔다.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고, 펄펄 생기 넘치게 살아있다고 느낀 것이 얼마만일까?
진솔하게 내 삶을,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갈 때마다 가장 나다운 나를 대면하며 행복했다. 신기하게도 글로 나를 객관화시키는 작업을 거칠수록 내 안의 상처들이 조금씩 치유되는 기적을 맛보게 되었다.
메일을 받고 보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글감을 떠올리고 써 내려갔고 틈날 때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읽기 시작했다...
뭐라 말할까 그냥 부끄러웠다. 내 이야기가 실릴 공간만이라도 주어지면 감사하겠다고 소원했던 내 마음이 얼마 못가 초심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내가 쏟아낸 이야기가 설령 졸작이나 유치한 것이라도 그것이 나의 진실이면 괜찮다는 말과는 다르게 끊임없이 다른 작가들의 유려한 글솜씨와 나의 글을 비교하고 괴로워했다.
나의 이중성과 쉽게 변한 초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무렵 나를 평소 괴롭히던 불면증과 편두통이 잦아졌다. 글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거침없이 전진하던 나는 다시 멈춰 서야만 했다.
한 달 만에 아픈 마음으로 다시 찾은 강가는 여전히 아름답다. 변함없이 흐르는 강물이 처음 먹은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남들보다 느리다. 남들과 속도를 맞추려 뛰어가다가는 미처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숨이 턱밑까지 차 주저앉고 말 것이다.
느리면 느린 대로 호흡이 달리면 달린 대로 중간중간 숨을 고르고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쉬흔 중반에 겨우 깨달은 나다움이다.
당연히 세상에는 나보다 재주 많고 똑똑하고 전문지식 또한 풍부한 작가들이 넘친다. 내가 아무리 그들을 부러워해도 나는 그들이 될 수 없다.
내 고유의 색을 찾는 것이 더 빠른 일일 것이다. 삶에서나 글에서나 꾸밈없는 진솔함, 내가 추구하는 사는 방식이고, 글의 방향이다.
앞으로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처음 글을 쓸 때 각오했던 마음을 잊는 순간이 아마도 자주 올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 강가를 다시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붉은 노을이 아름다운 저녁이다. 분주하고 바쁜 일상이 녹아드는 늦은 오후, 진하고 향긋한 커피 한잔. 고장 난 노트북 대신 휴대폰으로 글을 써내려 가느라 어깨가 아프다. 그래도 확실히 견딜만하다. 다시 즐기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니 행복이란 놈이 진통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엄마는 누구보다 내가 작가가 되는 것을 소원하신 분이다. 내가 다시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너무너무 기뻐하셨다. 그런데 엄마는 아직 내가 작가가 된 것을 모르신다. 엄마가 말씀하시는 작가는 출간 작가, 돈을 버는 작가를 말씀하시는 것인데... 지금의 내 처지를(브런치 앱에서의 작가) 여든여섯이신 엄마께 설명드리기 곤란해 말씀 안 드렸다.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은경이 엄마 소원대로 나 작가 됐어요."
"아이고, 참말이야? 그럼 이제 니 밥벌이는 하는 거야?"
"아니, 그래도 엄마 인터넷 알지? 거기에 내 글이 나오는 거야. 공짜로 실어줘. 좋은 거야. 이담에 오래되면 책도 낼 수도 있어요..."
엄마의 질문과 간헐적 울음은 수화기 넘어 터져 나왔고 나는 밤새 귓가에 맴도는- 떨리는 엄마 -목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그 하얀 밤은 내 앞으로 가야 할 인생길에 이정표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글쓰기 한 달째- 나를 돌아보며 나의 얄팍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 ) 스스로에게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감사하다.
엄마는 오늘도 내게 전화를 거셨다. 밥은 잘 먹고, 글은 잘 쓰고 있냐고...
나는 안다. 엄마의 그 물음 속에 내가 유명한 출간 작가로서의 삶을 원하는 것 이전에 딸이 다시 붙잡은 희망이란 끈을 놓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모정이 담겨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