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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Dec 10. 2020

가죽 주머니에 든 복.

 내가 세상사에 풀이 죽어 있거나 근심에 휩싸여 있으면 엄마는 가끔 "가죽 주머니 속에 든 복은 아무도 몰라... "하며  나를 위로하시곤 했다.

 엄마의 말뜻처럼 나한테도 가죽 주머니 안에 행운이 남아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난 그 뜻보다는 그 말의 출처가 더 궁금했었고 엄마한테 여쭤보면 엄마는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하시며 네가 안 좋은 일들을 미리 다 겪었으니 네게 남은 것은 좋은 일만 남았을 것이라고 덕담을 해주셨다.

 엄마 말씀대로라면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행복과  불행을 같은 비율로 가지고 세상에 나오는 것이고, 먼저 행복을 겪는다고 우쭐할 필요도 먼저 불행을 겪는다고 크게 낙담할 필요 없이 뒤에 다가 올 행운이나 불행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이라면 인생사 새옹지마와 다를 게 없지 않을까?


 처음부터 엄마 말씀에 귀가 솔깃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이혼하고 갈 곳 없어 친정에 얹혀사는 딸이 가엾고, 엄마 당신의 자녀들 중 순탄치 못한 내 삶을 보며  엄마 스스로를 위로하며 최면을 거신다고 생각했었다.

  원래도 말수가 적은 나는 세상 풍파에 말문을 닫고 살았으니 같이 사는 말 주변이 없는 엄마는 뭐라도 위로해줄 요량으로 가죽  주머니 속의 남은 복 이야기를 종종 꺼내셨고  듣는 나는 '아니 또 그 소리 하시는구나.' 하며 한 귀로 듣고 흘러 보내고 말았다.

 난 부모님 말씀을 새겨듣는 착한 딸은 아니었다. 대학을 진학할 때도 연애나 결혼 상대를 고를 때조차도 나는 내 기준이 우선이었다. 선을 봐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안 해봤다. 좋게는 독립적이었고 안 좋게는 고집이 센 편이라 부모님이 지레 포기하셨다.



 엄마는 말씀은 안 하셨지만 내심 결혼 전부터 못마땅했던 사윗감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미안함과 고집 센 딸이 기어이 그 고집으로 팔자땜을 하는 것 같아 울화통이 터지시는 것 같았다.

 한동안은 가까운 집안 식구들 사이까지 친정으로 와 있는 딸의 존재를 들킬까 봐 쉬쉬 하셨고 나는 여전히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 딸로 포장되고 있었다.

 그러니 눈치꾸러기인 나는 엄마가 하시는 말이 좋게 들리지도 않았고 만사가 꼬여 고깝게 여겨졌다. 사실 계속되는 몸과 마음의 불행에 심사에 뒤틀려 있었다.

 여든다섯이 넘은 노모가 이혼한 딸,  다나 우울증 앓는 딸을 이해하기는 힘드셨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동거는 씁쓸하고 떨떠름하게 시작되었다.



 옛날 어른들이 다 그러하듯이 엄마도 부지런함이 몸에 밴 분이다. 아무리 엄마와 딸 사이라도 엄마가 나를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무기력했다.  엄마 딴에는 나를 이해에 보려고 처음 몇 달은 "얘 집 앞 공원이라도 나가 산책 좀 해라."

"오늘 아파트 단지 내 장이 섰다. 나랑 나가자~"

"여기 재밌는 프로 나랑 보자~"하시며 세상을 향하여 나의 등을 떠미셨지만 이상하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점점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매사 의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딸이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없으니 엄마는-엄마는 내가 이혼 후 2,3달 후면 훌훌 털고 잘 살 거라고 생각하셨다.-초조하셨고 방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내가 불쌍하기도 밉기도 하신 모양이었다.

  방 밖에서 중얼대는 엄마의 혼잣말들은 나를 향한 복합된 감정의 찌꺼기임을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그해 가을 거의 폐인이 된 나를 끌고 간 것은 동생이었고 엄마는 아무 말씀 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더 이상 우울증에 좋다는 아침프로의 의학상식을 내게 읊어 주시지도 않았고, 억지로 밖으로 나가라 채근하시지도 않았다.

 엄마는 묵묵히  정성껏 내게 밥을 지어 주셨다. 가끔 가죽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아직 나오지 않은 행복에 대한 말씀만 해주셨다.

 나는 매일 엄마의 밥을 먹고 엄마가 들려주시는 내게 남은 행복의 꿈을 꾸며 치유될 수 있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난 내가 언젠가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실직 후 석 달만에 실천에 옮길 수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불행만 연타로 온 내 인생에 이제 행운이 나올 차례인가 보다.

 글을 쓰고 글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기쁨이고 축복이다.

 난 요즘 매일 기도한다.

무엇이 되고 싶은 마음이 아닌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엄마는 요양원에 계신다. 엄마는 지금 불행의 구슬을 가죽 주머니에서 꺼내신 걸까? 다음에 만나면 이번엔 내가 엄마에게 먼저 말씀해 드릴 것이다. "엄마, 식사 잘하시고 계세요~~ 다음 차례는 행복의 구슬이 나올 차례예요~~"

 엄마의 입꼬리가 올라가신다.

 "응, 암만~~ 너도 너도 밥 잘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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