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찬바람이 심상치 않게 몰아치더니 오늘 아침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동장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지구 온난화로 겨울 평균 기온이 많이 올라갔다 해도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매서운 바람에 몸이 잔뜩 움츠려 드는 외출 길이다.
어제 내린 눈이 다행히 많이 쌓이지 않았지만 음지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빙판길을 이루고 있다. 내가 가는 목적지인 버스정류장 쪽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끄러질 듯, 위태로운 눈길이다.
첫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에서 가물가물하다. 낭만과는 거리가 먼 생활인, 아줌마가 다 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유독 감성이 메말라서 그런 걸까? 뚜벅이인, 잘 넘어지는 나는 그냥 질척이고 미끄러운 도로가 불편하고 짜증이 난다.
집안에서, 전망 좋은 찻집에서 바라보는 눈 오는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것은 실체와 거리를 두었을 때 맞보는 환상일 뿐이다.
빙판길만 보면 종종거리며 살금살금 다리에 잔뜩 힘을 준 채로 걷는다. 운동신경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부주의한 탓인지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잘 넘어져서 엄마의 걱정 섞인 핀잔을 자주 듣곤 했다.
그래도 어릴 적엔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하얗고 소복하게 쌓이는 탐스런 눈이 좋았다. 골목길을 질주하다 균형을 잃고 미끄러져 꽈당하고 넘어져 손목이 빨개져도 툭툭 털고 다시 친구들과 달리고, 눈싸움하다 눈덩이를 피해 달리다 다시 미끄러져도 헤헤거리며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시절. 그때는 넘어져도 아픈 줄도 몰랐고 넘어지면 잘도 번쩍번쩍 일어났다.
겨울이 되면 눈이 오는 날을 기다렸다. 매서운 추위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어쩌다 텔레비전, 일기예보에 눈이라도 예보하는 날엔 기쁨에 폴짝폴짝 뛰었다.
어른이 되고 언제부턴지는 모르겠다. 겨울이 와도 눈을 기대하고 기다리지 않은지는 생각이 안 난다. 아예 겨울 자체가, 추위가, 황량함이 싫었다. 볼이 얼어 발그레한 얼굴로 썰매를 타고 얼음을 지치던 아이는 예전에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해마다 겨울,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내가 자주 넘어진다는 한 가지 사실만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버스를 놓칠까 뛰다 미처 쌓인 눈을 못 봐서 대자로 꽈당~~ 장본 물건을 들고 가다 미끄러져 물건이 주위로 흩어지고 엉덩이가 몹시 아펐지만 창피함에 주위부터 살피던 나.
그때부터일까? 일기예보에 눈이 온다는 소식만 들으면 나는 웬만하면 외출을 안 하고 하더라도 가장 안전한 신발을 착용하고 두 손을 주머니에서 뺀 자세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수준이다.
그러니 내게 눈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골칫덩어리일 뿐이다.
나는 일기예보를 하루도 빠짐없이 본다. 주로 집콕하는 나이지만 출근할 때는 그날그날 기후나 날씨에 맞춰 옷을 입거나 우산을 챙기곤 한다.
날씨를 미리 예측한다는 것, 아주 유용한 정보다. 우리 인생도 일기예보처럼 미리미리 예측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호우가 쏟아지고, 건기가 지속되고, 태풍이 닥치고, 한파가 밀려올 때
"당신의 어느 시점 앞에 ㅇㅇ이 몰려옵니다. 단단히 대비하십시오!"
' 이런 멘트 날려주면 덜 고단 했을 텐데... '하는 씁쓸하고 싱거운 생각을 해봤다.
내가 많이 피곤했나 보다...
휴~~ 오늘은 다행히 안 넘어졌다. 내가 최대한 빙판길을 요리조리 피해 다닌 덕이다. 지금 이 나이에 넘어지면 최소 골절이다. 긴장의 끈을 늦추면 안 되지~~~
요즘은 일기예보를 덜 본다. 예보의 정확도보다는 내 몸이 신기하게 맞추는 확률이 높다.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아까부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동파방지 예방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한파주의보는 어느새 한파특보로 단계가 강화되었다. 온 도시가 겨울왕국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나의 내일의 일기는 어떻게 될까?
맑음? 흐림? 비? 태풍? 한파?...
모르겠다. 아무리 슈퍼 슈퍼컴퓨터라도 인생의 일기를 예측하기는 불가능하겠지.
그냥 여태까지도 잘 버텨 온 내공으로 살다 보면
개인 날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난 안다.
괜히 미리 미래를 알아봤자 어쩌면 나 같은 소심녀는 지레 죽을지도 모를 일.ㅋㅋㅋㅋㅋ
모르는 게 약인 일도 세상엔 많다.ㅋㅋㅋㅋㅋ
'아무래도 낼 눈이 오려나? 머리가 지끈지끈한 것이 요상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