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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Dec 22. 2020

편두통

손에 쥔 행복의 가치

 지긋지긋한 두통으로 며칠째 몸살을 앓는다. 오른쪽 관자놀이가 욱신욱신, 눈이 빠질 것 같다. 속마저 메스껍고 어지럽다. 모든 소음을 차단한 채 불 꺼진 방에 눕는다. 오늘도 난 어김없이 K.O 패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신경과를 다녀봐도 오래된 두통은 나을 기미는 없고 오히려 비웃듯 점점 더 심해 갔다.

 결혼한 지 일 년 후 발병한 편두통은 결혼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고 이혼을 한 후에도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며 나의 숨통을 옥죈다.

 한방, 양방 두루 다니며 고쳐보려 애썼고 혹시 머릿속이 문제가 있을까 해서 MRI 촬영도 해보았고, 통증을 줄이기 위해 통증클리닉도 다녀봤지만 다 초반만 반짝 효과를 볼뿐 지겹게도 나를 따라다녀 나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 중의 하나였다.

 발작처럼 시작된 두통이 심할 때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리 보름을 아픈 적도 있었다. 그럴 때는 고통에 방안을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난 미련하게 참을성이 많다. 아프다고 누워만 있기에는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도 컸고 두통이란 것이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는 것인데, 굳이 말해서 엄살떠는 것으로 보이기 싫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직  오른쪽 머리가 뻐근하니 몸을 움직일 때마다 울리지만 몇 시간 전의 고통에 비하면 훨씬 살 것 같다.

 속이 쓰리다. 그러고 보니 어제 늦은 오후부터 오늘 이른 아침까지 두통약 이외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갑자기 허기가 진다.

 주방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진다. 냉장고 앞에 서서 문을 열었다. 눈을 크게 뜨고 텅 빈 내부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쓰린 빈속을 달래줄 음식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 머뭇거리다 주방 한편에 놓여 있던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순전히 끼니를 때우고 허기를 달래는 의미의 밥상이었다.

 자취하는 아들에게는 "혼자 지낼수록 스스로의 건강은 스스로가 알아서 챙겨라-끼니는  꼬박꼬박 챙겨 먹어."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스치듯 떠오른 아들 생각에도 그리움이 밀려왔다.


 머리를 조여오던 고통도 콕콕 쑤시던 통증도 휴일 정오쯤 되니  사라졌다. 요즘따라 빈번하게 나를 찾아와 괴롭히곤 한다.

 불면증이 심해진 후, 더욱 그 양상이 또렷해졌다. 내가 앓는 편두통은 수면의 질과 연관성이 크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이 까칠하다. 내 삶에서 평온했던 날보다는 힘든 날들이 많았기에 지금의 상황이 나를 더 힘겹게 하지는 않는다.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걸까?'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예민하고 섬세한 여자다. 20년을 넘은 결혼생활을 통해 학습된 불행은 자유가 주어진 후에도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몸과 마음의(편두통과 우울증) 질병으로 남아있다. 나의 의식적 자아는 자유와 행복을 외치는데, 무의식 속의 또 다른 자아는 아직도 불행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란 사람이 가벼운 건지? 전조증상을 동반하고 올 때가 많은 편두통이 다가오면  통증을 떠올리곤 신께 기도한다. 내게 아픔의 시간의 오지 않기를, 오더라도 빨리 지나가기를...

 그러다 막상 내게 닥치고 얼마 후 고통의 시간의 사라지면 처음엔 통증 없는 삶-그것이 주는 감사함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건강의 가치, 그것이 주는 행복을 알면서도 평안하고 건강할 땐 다른 행복들을 찾아 기웃거린다. 처음의 감사함은 의례 당연한 것이 되고 말았다.

 지금 내 손에 쥔 행복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손에 쥐고 있기에 하찮고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편두통은 나의 오래된 원수이자, 오래된 스승이다.

그놈은 나를 질기게 따라다니며 자신을 각인시킨다. 내가 가끔 감사함을 잃어버렸을 때, 내가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세워 -에너지가 소진되어서 행복에 무감각할 무렵 나타나 -나를 채찍질할 것이다.


 태풍이 지나간 오후다. 다시 커피 한잔 마실 여유가 있는 소소한 일상, 두통 없는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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