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대청소

by 예쁜손

부지런한 것과는 거리가 먼 내가 하루 종일 종종 거리며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를 한 것은 고 마루 녀석 탓이다. 이혼한 엄마, 아빠 덕에 우리 아들은 명절이면 항상 엄마 집, 아빠 집 번거롭게 나누어 방문하는데 올해는 연휴 시작 이틀 전 아들이 내가 사는 집 근처에 일이 있어 겸사겸사 모자의 정을 나누러 왔다.

사실 모자의 정은 나의 순전히 믿고 싶은 마음일 뿐이고 일이 늦어질 것에 대비해서 애지중지하는 마루를(아들이 키우는 7개월짜리 강아지) 믿음직스러운 보모한테 맡기는 심정 아니었을까.

어쨌든 확신하건대 마루가 아들한테 온 후로 내가 더 후순위로 밀려난 건 확실하다. 무뚝뚝한 아들 눈에서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눈빛이 보이고 나 보고도 수시로 "너무 이쁘지 않아?"하고 묻는다. 물론 나도 우리 마루가 너무너무 예쁘다. 개를 싫어하는 내가 우리 마루랑 뽀뽀를 한다는 것은 머리털 나고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리고 어느 때는 멋대가리 없는 아들 녀석보다 살랑살랑 꼬리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까만 눈동자의 마루가 더 보고 싶다. 그러니 개 아빠인 아들 눈에 제1순위는 지금 마루가 당연할 것이라 이해한다. 나도 그 정도의 아량과 이해심은 있는 엄마이다.



연휴 전 2박 3일 일정인데 아들이 밤늦게 마루랑 집으로 왔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짐에 잠시 압도당했다. 울타리까지 들고 오느라 아들은 진땀을 흘렸다. 얼른 마루가 든 가방을 받아 들었다. 한 달새 더 묵직해진 것 같다. 퇴근하고 피곤해서 한숨 자고 출발해야지 했던 것이 늦게 깬 모양이다. 그저 엄마 눈에는 안쓰럽기만 하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울타리까지는 가져오지 않았는데... 아들이 미리 꼼꼼하게 챙기는 스타일은 아닌데... '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건 왜 일까? 짐을 다 내려놓기가 무섭게 강아지 가방 지퍼 열린 부위로 마루의 동그란 얼굴이 솟아난다. 당장이라도 가방에서 뛰어나올 듯 점프하는데 한 달 전 모습이 아니다.

그새 키도 많이 큰 것 같고 살이 올라 통통하니 내 눈에도 참말로 예쁘다. 안아서 번쩍 들어 올린다. 꽤 묵직해졌다. 시간이 늦은 시간인데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녀석과 회포를 풀기에는 아들이 이른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까닭에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새 천사처럼 아들 옆에서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아들을 위해 간단히 아침상을 차렸다. 사료만 먹는 마루는 요즘 부쩍 사람의 먹는 음식에 관심이 많다. 자다 번쩍 깨서 달려오지만 마루 몫으로는 사료를 챙긴다.

아들이 출근하고 내가 누우니 마루가 누워서 곧 잘 모양으로 내 곁에 파고든다. 두 시간쯤 같이 잠을 잤다. 아기가 따로 없다.

내가 잠에서 깨어할 일을 하니 귀신같이 일어나 사방팔방 새로운 모험 지를 탐색한다. 구석구석 손이 못 미치는 곳이 없고 지난번보다 힘도 점프력도 상승한지라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마루로부터 위험물을 차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설상가상 내가 연속 이틀 3시간가량씩 조카들 돌보러 동생네로 가야 하기 때문에 나로서는 마루의 안전과 더불어 손상을 입으면 안 될 물건을 구분해서 치워 놓고 울타리를 쳐놔야 했다.

외출할 시간은 다가오고 어린것을 혼자 두고 나가려니 가슴이 짠했지만 이모를 기다릴 조카들 생각에 방문과 화장실 문은 닫고 거실엔 사고칠 만한 물건들 주위로 펜스를 쳐놓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많이 포근해졌다. 하지만 마음은 오늘따라 유난히 부산하다. 집에 7개월짜리 아기 강아지 두고 나왔으니 세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점심으로 김치볶음밥을 최대한 뚝딱뚝딱 만들어 애들을 먹이고 치우고 나니 2시간이 조금 넘었다. '혼자서 낯선 집에서 낑낑대고는 있지 않을까? 집안꼴은 설마 제대로이겠지... 울타리가 있는데'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들어 저녁장 보려는 마음도 접고 집으로 달려갔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중문을 여는데 내 눈 앞에는 뽀얗고 예쁜 복슬복슬한 마루가 나를 반기듯 서 있고 언뜻 훑어본 집안은 그야말로 난장판, 개판이 되어있었다.

닫고 간 방문이 잘 안 닫혀 있었는지... 마루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가 테이블 위의 노트와 책을 한참 씹어 드셨고 빨래 건조대의 빨래는 바닥에서 마루의 거친 먹잇감이자 장난감으로 내동댕이 쳐져있었다.

아들이 책을 치워놓으라 주의를 줬건만 문을 닫아놓으면 될 줄 알았다. 어찌 덜 닫혔는지. 찢어진 일회용 마스크들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치우는데 이 놈의 마루 자식은 반갑다고 달려드는 통에 치우는 속도는 더디다. 한참을 치우고 기진맥진해 누워있으니 내 옆으로 와 내 베개에 척 턱을 걸치더니 잠을 잔다. 모르겠다. 거실에 입은 치명적 외상은 자고 난 뒤 복귀하기로 하고 나도 피로가 몰린 데다 긴장감이 풀려선지 잠이 들었다.



생각보다 마루의 호기심은 왕성하였고 사고의 후유증은 컸다. 벽을 타고 설치된 인터넷 케이블 선이 뜯겨 있었고, 물론 벽지도 일부 파손. 테이블 위의 영양제나 두통약들이 어지러 히 상자가 뜯긴 채 바닥에 널려있었다.

이쯤 되니 집안이 난리가 난 게 문제가 아니라 마루가 약을 먹었을까 걱정이 들었다. 골다공증 약도 부서져 있었다. 다행히 8알 중 한알 모서리 부분만 조금 손상된 걸로 보아 맛을 보고 써서 먹지는 않은 듯했다.

잠시 눈 앞이 캄캄했다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주위에 내가 쳐 놓은 울타리는 이미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이런 걸 어찌 두고 직장 생활을 했을지... 마루도 짠하고 아들도 마음이 무거웠을 것 같아 가슴 아프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이런저런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데 고생했어 요하는 말끝에 약 같은 위험한 거는 잘 둬야죠 하며 마루를 걱정하는 말투에 나도 모르게 서운함이 불쑥 올라왔다.

'이래서 어른들이 애 키운 공은 없다고 하나보다. 강아지에 이럴 건데 진짜 제 자식 보다가 실수하면 어떨까.'생각하니 아들이 남처럼 여겨져 섭섭했다.



우리의 짧지만 긴 동거는 연휴 시작 전 막을 내리고 아들과 사랑스러운 에너자이저 마루는 시원섭섭함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떠날 때는 섭섭해 마루도 아들도 꼭 끌어안고 잘 가라 건강해라 토닥여 주며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가면 간대로 시원하다.ㅎㅎ

그리고 애들 기자마자 난 이틀째 청소와 씨름 중이다. 마루가 구석구석 헤집어 놓은 덕에(?) 숨어 있던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고 몇 달 전 삶의 부피를 줄여보겠다고 그렇게 물건들을 정리했는데도 아직도 우리 집은 마루가 보기엔 호기심 가득한 물건들로 넘쳐난다는 거다.

먼저 눈에 안 띄는 곳의 먼지부터 찾아 닦아내고 본격적으로 안 쓰는 물건을 재활용할 거와 버릴 것을 분류했다. 혼자 사는 삶인데도 이틀 동안 50L 두 봉투가 꽉 차게 버렸다.

이다음에 마루 놀러 오면 안전하게 편안하게 놀 수 있고... 순전히 내 입장에서는 마루로부터 방어 차원에서 자잘한 물건들은 정리하고 위치를 높은 곳에 올려 정리하였다. 최대의 방어 태세를 갖추는 건데 계획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다음 달에는 또 우리 마루가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감이 안 오는 게 사실이니깐.

그래도 뛰는 마루 위에 나는 내가 있으니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마루는 아들과 나의 힘이다. 게으른 나로 하여금 봄맞이 대청소를 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집안의 묵은 먼지도, 겨우내 쌓인 마음의 묵은 먼지도 말끔히 닦아내고 봄맞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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