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by 예쁜손

어젯밤 내린 폭설로 온 도로가 얼어붙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걸음 못가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지면으로 몸이 닿기 전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주위부터 살폈다. 살을 에이는 추위라는 것이 실감 나는 날이다. 지나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다리에 잔뜩 힘을 준 채 다시 종종걸음으로 목적지로 향한다.

버스정류장엔 평소 5분이면 도착하는 버스가 15분 뒤 도착한다는 알림판에 표시되어 있다. 장갑을 낀 손끝이 시리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발을 동동 거리며 버스를 기다렸다.

좀 전에 미끄러져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을 때 들고 있던 짐꾸러미가 많이 흔들렸는데, 내용물은 괜찮은지 걱정이 된다.

엄마를 뵌 지 10월 말 요양병원에서 요양원으로 옮기실 때 잠깐 뵀고 못 뵌 지 한참이 되었다.

오늘은 동생네 가기 전 엄마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전달하러 가는 길이다.

립밤, 바디로션, 식욕촉진제, 딸기, 김...

오전 11시. 버스정류장 알림판에 영하 11도라 표시되어있다. 참 길고 긴 15분이 흘러 버스가 도착했다.

엄마가 계신 요양원은 집에서 6 정거장만 가면 되는 짧은 거리지만 코로나 상황이 심해 진후 면회가 금지된 탓에 가끔씩 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요양원 앞으로 가면 방명록에 내 이름과 물품목록을 기재하면 담당자가 그 물건을 엄마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전날 행여 빠진 게 있을까 봐 엄마한테 여러 번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준비한 거에 비해서- 담당자에게 전해 주는 것은 5분쯤 걸렸을까... 짧은 그 시간이 허무하고 마음은 납덩어리를 달아놓은 듯 무겁다.



동생이 재직 중인 학교가 얼마 전부터 방학이어서 동생이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가까이 살아도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자매라도 얼굴을 마주 대할 일이 별로 없다. 내가 조카들 점심 끼니를 챙기러 오더라도 동생이 퇴근 전 나도 퇴근을 하다 보니 참 오랜만에 얼굴을 대한다.

동생이 좋아하는 카페라테를 선물로 내민다.

"언니 요양원엔 잘 다녀왔어? 물건은 잘 전달했어?"

"응" 나의 풀 죽은 한마디에 동생도 별 말이 없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동생은 아이들이 어리다. 아직도 한참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들과 바쁜 직장일로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엄마 요양원 입소일. 동생과 나는 먹먹한 가슴으로 늦은 점심을 먹던 때- 동생은 눈물을 훔치며 자기는 오래 아파할 시간이 없다고 냉정해도 할 수 없다고 마음 아픈 속내를 그렇게 드러내었다.


동생은 나와 2살 아래이다. 둘 다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지만 동생은 이성적이고 끊고 맺고 가 분명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내가 감정적이고 우유부단하여 중요한 결정을 못할 때 명쾌한 조언을 하는 것은 그녀의 몫이다.

그녀는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니지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른 소리를 하는 소신도 있다.

젊었을 때까지만 해도 야리야리하니 남의 지나가는 말에도 상처를 잘 받더니 어느 순간 똑 부러지고 당차게 할 말을 하는 여장부로 변모했고 나는 반대로 할 말 다하는 성격에서 세월에, 세상사에 치여 자신감도 결여되고 기가 많이 죽었다.

그래서 그런지 동생은 그런 나를 측은히 여기고, 나는 나대로 기가 세진 그녀가 늘 안쓰러웠다.

"언니 괜찮아?"동생이 나의 어두운 낯빛을 살피며 묻는다. 엄마한테 다녀오는 날은 아직도 힘들다. 동생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녀는 슬픔에 오래 잠겨 있을 사이가 없이 분주하다. 하지만 나의 아들은 이미 내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성인이 되어 내 품을 떠났고 -혼자이다 보니 오롯이 나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마음이 울적한 날에는 더욱 괴로운 일이다.

"어젯밤 엄마한테 필요한 물건을 챙길 때만 해도 괜찮았었는데... 아니 요양원에서 물건들을 건넬 때만 해도 덤덤했었는데... 돌아서는 발걸음이 정말 떼어지지 않더라." 하며 동생 앞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나는 내가 사는 것이 힘들어 부모님께 항상 근심만 안겨준 딸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도 당신 딸 걱정으로 한숨 쉬셨고, 요양원 계신 여든일곱 고령의 엄마도 전화할 때마다 내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나도 동생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언니 노릇 -제대로 해준 것 없는데,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인데 자꾸 약한 모습 보여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동생이 따뜻한 커피를 내게 건네고 마주 앉는다. 한참을 서로 말없이 앉아 있다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바라본다. 동생도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부모가 뭔지, 자매가 뭔지... 마음이 뭉클하다. 말은 안 해도 서로를 걱정하고 안쓰럽게 여기고, 챙기고... 상대의 어려움과 고통을 헤아려 보려 노력하는 부모님이 주신 피를 나눈 내 형제.

나와 엄마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것처럼 동생과 나 역시 끈끈한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무언의 위로를 눈빛으로 보내며 우린 마주 했었다.


중학교 1학년짜리 조카가 제방에서 나오더니 동생과 나를 번갈아 살핀다.

"엄마랑 이모 싸웠어요?"

"아니, 외할머니 생각나서..."조카가 말없이 다가와 나를 꼭 안아준다. 천성이 다정다감하고 사려 깊은 아이이다.

조카의 애교에 동생과 내가 웃는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이모한테 다 말해. 해줄게."

"오므라이스 해줄까?"

"네!"목소리가 활기차다. 조카를 꼭 안아주고 엉덩이를 토닥인다. 동생은 말없이 웃고만 있다.



내가 오랜 기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렵게 지내는 동안 내 동생은-부모님과 내게 맏이 역할, 언니 역할을 -감당했다.

나는 표현은 안 했지만 항상 마음에 빚처럼 지닌 채 가슴 아팠다. 그래도 누구보다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다.

그녀가 언니인 나를 사랑하고 잘되길 간절히 바라듯 나 역시 그녀가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란다.



일몰이 아름다운 저녁이다. 온통 하얀 세상에 서쪽 하늘 붉게 물들어 가는- 자연이란 캔버스 위의 위대한 풍경화이다.

올 한 해 내 옆에 존재하는 사람들, 자연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감사함을 표현하며 살고 싶다.

딸 노릇, 언니 노릇, 엄마 노릇.,,

동장군의 위세는 만만치 않지만 마음만은 푸근하고 넉넉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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