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만에 주어진 알바 자리인가? 백수생활 석 달 하고 2주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하니 기쁨이 몇 배는 되는듯하다. 사실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구직 활동하는 사이 잠깐 틈을 내어하는 알바-초 단기형 알바??
고용주 갑은 동생으로((직업이 교사) 방학 전까지 아이들의(조카들) 점심 담당을 을인 나에게 의뢰하고 나는 흔쾌히 시간제 알바에 동의했다.
사실 직장을 다니는 동생을 대신해 조카들을 몇 년 돌본 경험도 있고 애들을 예뻐하는 나니 어려울 것은 전혀 없는 꿀 알바다.
오히려 아이들이 다 컸음에도 실직 상태인 언니에게 무언가 일거리를 만들어 주는 마음이 고마울 뿐이다.
주부 9단까지는 아니어도 주부로 살아온 연륜이 있으니 예쁜 조카들 먹거리 정도는 자신이 있다.
직장 생활하면서 항상 직장 일하랴 살림하랴 아이들 학업 신경 쓰는 것도 안쓰러웠는데... 내가 동생네서 아르바이트하는 동안에는 애들 신경 안 쓰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근무시간은 1시부터 4시까지 이지만 혼자 있을 아이들과 아침 출근길에 난리부르스를 추고 출근했을 동생네 집안이 떠올라 오전에 이미 채비를 마쳤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사들고 동생네로 향했다. 12월의 추위는 겨울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듯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세상에서 '엄마'다음으로 듣기 좋은 말은 뭘까? 난 이번에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이모"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종알종알 조카들이 이모, 이모 좇아 다니며 이것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해도 이상하게 하나도 안 귀찮고 오히려 없던 에너지도 생겨난다.
거기다 사랑의 하트 하나 내게 발사해 주면 절로 흥이 나니 나는 조카들 바라기이다.
그러니 동생네 일하러 가는 목적은 잊어버리고 고 예쁜 것들 만날 생각에 가슴이 콩닥콩닥 마치 애인 만나러 가는 기분이랑 흡사할까?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이모다"하며 작은놈,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유준이가 후다닥 뛰어와 안긴다. 큰 녀석은 점잖게 제 방에서 고개만 삐죽 내밀고 "이모 왔어?"하고 수줍게 웃는다. 유주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다.
남매가 성격이 정반대다. 유준이는 정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애교 많은 편이고, 유주는 과묵하고 독립적이며 스포츠를(요즘은 킥복싱) 좋아하는 활달한 아가씨다.
코로나로 요즘 주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는 탓에 남매는 각자 모니터 앞으로 사라지고 나는 일거리를 찾아 집안을 둘러본다.
아니나 다를까 집안 곳곳 출근전쟁 속 아수라장이 된 흔적들이 남아있다. 유준이는 제 엄마가 바쁜 와중에 아침이라고 차려 논 끼니도 손대지 않았다
어지러히 흩어진 물건만으로도 동생의 고단한 아침 일상이 느껴져 마음이 짠했다.
동생은 나보다 두 살 어리다. 어릴 때 별명은 찰거머리~~ 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 따라다녀서 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그만큼 귀찮았다. 친구들끼리, 또래끼리만 놀고 싶은 날에도 눈치 없는 동생은 내 치맛단을 붙잡고 따라와 내가 어린 동생을 챙기느라 마음껏 못 놀게 한 찰거머리였다.
내가 조금 철이 들고부터는 언니 노릇을 좀 한 것 같다. 동생이 해도 해도 너무한 시험 성적표를 들고 왔을 때 부모님은 바쁘시기도 하셨지만... 나는 당시 30cm 길이의 자로 손바닥을 때리며, 직접 교과서까지 들고 동생에게 과외선생님이 되어주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 후 동생은 공부에 흥미를 붙이게 되었다.ㅎㅎ
참 어느 때는 동생을 두, 세명의 계집아이들이 괴롭히는 것을 알고 당장 달려가 혼쭐을 내준 적도 있었다...
티격태격 싸우기도 많이 했는데... 내가 결혼을 일찍 하는 바람에 동생과도 일찍 헤어졌다.
살면서 동생과 나는 성격이 정반대로 변해갔다.
동생에 비하면 적극적이고 기가 센 나는 계속된 불행을 겪으며 소심하고 나약하고 줏대라곤 약에 쓸래야 찾아볼 수 없고 동생은 순하디 순한 여린 캐릭터였는데 사회생활하면서 기가 세지고 목소리도 커지고 자기 할 말은 하는 여장부 스타일로 바뀌어 갔다.
난 그런 그녀가 많이 안쓰럽다. 내 눈엔 아직 순둥이 여리디 여린 찰거머리 동생으로 보인다. 부자는 아니지만 제부랑 내 앞에서 입씨름하는 모습도, 든든한 두 아이들이랑 재잘거리는 것도 보기 좋지만 내 눈엔 항상 여린 여동생, 내가 보듬어 주어야 할 동생으로만 여겨지는 까닭은 뭘까?
어제는 동생의 생일날이었다. 가스렌즈 위 냄비 안에 미역국이 가득 있다. 유주가 엄마 생일 선물로 끓인 미역국. 어제 동생이 전화로 내게 자랑했었다. 기특하다.
아이들 점심메뉴는 미역국에 불고기와 가지전~~
부지런히 재료를 씻고 다듬고 준비한다. '오랜만에 누군가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차려본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하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밥을 차리고, 기쁨으로 일한 대가를 받아 일용할 양식을 살 수 있으니 이 순간만은 '참 행복하다.'느껴졌다.
불고기에 함박웃음 짓던 아이들이 가지전에 입을 삐죽 내민다. 그 모습조차 사랑스럽다. 내 동생의 아이들, 내 조카들...
골고루 먹으라는 내 잔소리에 그래도 열심히 먹어주는 착한 아가들...
부디 곱게 건강하게 아름답게 세상에 빛으로 자라나기를 이모가 너희들을 위해 기도한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