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어 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by 예쁜손

가끔 난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고 먹먹해진다. 아들은 나의 아픈 손가락이자 아킬레스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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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스물두 살 되던 해, 입대를 코 앞에 두고 아이 아빠랑 헤어졌다. 마음은 너덜너덜 해졌지만 수순은 아주 간단했다.

이미 오래전 별거한 상태라 이혼 시기만 조율하고 서류 정리를 했다.

아들에게 그나마 상처를 덜 주기 위해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지만... 나는 그때 예감했다. 내가 평생 아이에게 빚진 자로 살아가게 될 것을...


외동으로 자란 아들은 형제가 없어서 그런지 친구들을 엄청 좋아한다. 늘 친구들이 주위에 끊이지 않았다.

성장기를 대부분 아버지의 부재하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이와 나는 유대관계가 깊다

그래서 항상 염려했던 것이 '마마보이로 자라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아이는 일찍부터 독립적으로 잘 자라 주었다.


남편과는 아주 일찍부터 사이가 어그러졌다. 아이의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처음 별거를 시작한 후로 몇 차례 별거와 합가를 반복했다.

이미 아들은 우리의 잦은 싸움으로, 아빠의 부재로 상황을 충분히 알았지만 아이에게 엄마, 아빠의 헤어짐은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것이고 아들은 내게만 싫다고 의사표현을 했다.

내가 아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들 때문이었다.


내가 자라 온 친정은 아이들에게 사랑 표현이 인색했다. 손 한번 보듬어 주고 안아주고, 토닥여 주는... 그런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우리 부모님의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묵묵히 일하시고, 끼니를 챙기고, 잠자리를 보살피는 그런 일상 안에 내포된 사랑이었다.

나는 자라는 동안 그것이 몹시 싫었기 때문에 결혼해서 내 아이를 낳으면 사랑을 많이 표현해 줄거라 다짐했었다.


내년이면 아들은 서른이다. 아직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랑해 엄마", "사랑해 아들"을 남발한다. 만나면 꼭 안아 준다...

나의 어릴 적 다짐이 어느 정도는 이루어졌다.

아니 아이가 부모인 우리로부터 받았을 상처를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기 위해 나름 노력했다.

나는 평소에는 자상하고 친구 같은 엄마를 지향했지만 아들이 한참 학업 중에 있을 때는 엄마로서의 역할보다는 학부모의 역할에 충실하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의 마음에 더 귀 기울여 주는 것이 맞았을 텐데... 그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 믿었다.


아들은 성격이 온순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또래 친구들 평에 의하면 약자한테는 약하고 강자한테는 강한 멋진 사내아이였다. 공부에 취미 없는 것 빼고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내 생일날엔 꼬박꼬박 잊지 않고 선물을 챙기고, 어느 겨울날엔 가슴에 붕어빵을 품고 달려와 내게 내밀었다.

한참 반항기인 중ㆍ고등학교 시절에도 나랑 언쟁이 벌어지면 30 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과하곤 했다. 마음이 여렸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나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악착같이 버텼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가? 휴일에 아들과 집 근처 산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들 녀석이 내게 말을 건다.''엄마 외롭지 않아?"그다음 말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 눈가가 촉촉해진 기억만 떠오를 뿐.


두 차례 수능을 치르고 아들은 내 기대 한참 못 미치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나도 철이 드는지 자식일도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음괴 동시에 아들에게 알게 모르게 성적 때문에 상처 준 것에 대해 사과했다.

쿨한 아들은 "아니에요." 하며 씩 웃었다.


입대와 거의 동시에 이혼이 이루어졌다. 괜찮다고만 하는 아들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아들이 그렇게 입대하고 내게 찾아온 것은 무기력증이었고 그것은 오랜 시간 나를 따라다녔다...


제대 후 공부에 취미 없다는 핑계로 학업을 포기한 아들은 그다음 날부터 자기 용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전전했다.

가슴이 짠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 아들에게 우울하고 무기력한 나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엄마가 우울증 환자라는 것은 알지만 생과사를 넘나드는 고통이었다는 것은 모른다.

다행히 자취해 있기도 하고, 해외에 파견근무차 나가 있어서 나의 고통을 감출 수 있었다.( 지금까지 충분히 아이에게 많은 상처를 줬는데 나까지 짐이 되고 싶지 않은 심정이랄까...)


지난번 아들을 보러 아들의 자취방에 갔다. 집안의 엉망이다. 요즘 연락도 뜸하고 전화를 하면 수화기 넘어 침묵이 잦다.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 19로 회사 상황도 안 좋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와도 얼마 전 헤어진 모양이다.

위로를 해주고 등을 토닥여준다. 엄살 부리지도, 남 탓, 부모탓 안 하는 녀석...

오늘 점심때 아들이 집으로 와 밥을 먹었다. 부쩍 말수가 없어졌는데도 애써 밝은 척한다.

갑자기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엄마도 늙네~"

"우리 반애들이 엄마 보고 누나냐고 했잖아." 하며 웃는다.

"얘~~ 그럼 엄마는 안 늙냐? 자식..."

이제 아들은 비로소 부모의 주름진 얼굴이 신경 쓰이나 보다.


아들은 내년이면 서른이다. 그런데 내가 나이 먹는 것보다 아들이 나이 먹는 것이 더 슬프다. 점점 삶의 무게가 묵직하게 그의 어깨를 누를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미 아들은 내 품을 떠났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응원과 기도뿐이다.


요즘 아들은 그만의 동굴로 들어갔다. 언제 나올지는 모르지만 걱정은 별로 안 한다. 예전에 아들과 내가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듯 지금 잠시 떨어져 있어도 다시 나의 태안으로 돌아올 것을 믿는다.


젖은 빨래를 널며 아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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