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수제비 해줄 수 있어?" 하고 큰 조카가 묻는다. 안 그래도 날씨가 아침부터 비가 와서 꾸물꾸물하던 차에 잘됐다 싶다. 나도 따뜻한 국물 있는 게 먹고 싶었다. 작은놈은 수제비를 안 먹어서 다른 메뉴를 준비해야 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집에 있는 재료를 살펴보았다. 통밀가루가 있고 야채는 애호박에 양파가 있다. 감자가 있으면 더 맛있을 텐데 그냥 아쉬운 대로 깔끔한 멸치 육수에 양파와 애호박만 넣기로 했다. 난 개인적으로는 얼큰한 김치 수제비를 좋아한다. 신김치 국물과 신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낸 국물에 수제비를 떠먹으면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오늘은 아이 입맛에 맞춰 담백하고 깔끔한 맛으로끓여야겠다. 더 맛있는 맛을 내기 위해서는 유튜브나 그 밖의 요리 채널을 찾아볼 수 있지만 원래 그런 거 호기심 있게 찾아가 봐 가면서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냥 우리네 보통 가정집에서 먹는 보통의 수제비 한 그릇 조카한테 끓여 주고 싶다. 솜씨 있게 맛깔나게는 못해도 건강한 식재료로 정성을 다하고 아이들은 다행히 이모의 손맛을 최고로 알아주니 요리할 때는 신바람이 난다.
수제비하면 물릴 만도 한데 나도 어지간히 밀 것을 좋아한다.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사는 대식구였는데 내 어린 기억으로는 꽤 자주 할머니가 해 주셨던 것 같다. 쌀이 귀할 정도의 어려운 시절도 아니었고 우리 집 사는 것이 보통 서민살림살이었으니 그냥 별식으로 자주 드신 듯하다.
고모까지 여덟 식구의 대식구였으니 반죽의 양도 어린 내 눈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이었고 지금처럼 반죽을 일일이 손으로 늘어뜨려 떼어놓았다가는 시간이 오래 걸려 수제비가 불어서 식감이 안 날 수 있어 할머니는 도마에 반죽을 무쇠 칼로 쓱쓱 썰어 석유풍로(가스레인지의 조상)를 이용해 끓여 주셨다. 육수야 어른 대야만 한 양은 냄비 안에 멸치 한 줌과재래 국간장이 전부 인-지금 생각하면 별로 맛도 영양도 없을 것 같은-맹탕이지만 시장이 반찬이고 대식구들 사이에 함께 먹는 재미 었다.
어린날은 자주 먹는 음식이었는데 조부모님 돌아가시고 내가 결혼해서 시댁에 사는 동안에는 뜸했다가 분가해서 살면서 종종 해 먹는 별식으로 다시 자리 잡았다.
점심시간까지는 시간이 넉넉하지만 반죽을 치대고 숙성시키려면 좀 시간이 걸린다. 먼저 밀가루는 백밀보다는 통밀로 준비한다. 도정이 안돼서 식감이 거친 대신 영양소도 식이섬유도 풍부하고 먹다 보면 구수한 맛도 느껴진다. 조카가 다행히 어릴 때부터 입에 좋은 음식보다는 몸에 좋은 음식에 길들여져 있어 통밀을 더 좋아한다.(작은 조카는 정반대 호호호)
다들 알다시피 적당량의 소금과 식용유를 넣고 어느 정도 치대다 냉장고에 숙성시킨다. 숙성 시간은 나 같은 경우는 반나절이나 하루정도 미리 반죽을 대강 해서 냉장고에 보관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꺼내 십 분에서 이십 분쯤 치대는데 오늘은 갑작스레 조카가 주문한 거라 시간이 없어 숙성 시간이 2시간 정도밖에 안되었다. 귀찮더라도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수제비의 쫄깃한 식감이 산다. 내 생각으로는 수제비 요리에서 반죽이 차지하는 비중은 7,80% 아닐까.
반죽은 완성했으니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끓인 국물을 사용하고 야채로 양파와 애호박을 썰어놓고 야채는 수제비를 떼어놓은 다음에 넣어 주면 너무 푹 무르지 않아 좋다. 고명으로는 김가루랑 깨소금을 얹어주면 일품요리로 한 그릇이 뚝딱 완성될 것이다.
반죽이 숙성되는 사이 작은 조카의 점심 메뉴를 후딱 만들고 읽다만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 씨'를 읽는다. 작가의 마지막 소설집인데 사십 대 때 읽고 십 년도 훌쩍 넘어 다시 읽으니 감회도 새롭고 느낌도 남다르고 더 좋다. 좋은 작품과 나의 손맛을 필요로 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있으니 행복하다.
요양원 생활 2년째로 접어든 엄마와 친정에 둘이 살 때도 우리는 여러 가지 국물과 찌개에 반죽을 응용해서 별식으로 만들어 먹곤 했다. 멸치육수 기본으로 고추장을 풀고 미역과 애호박 양파를 넣은 얼큰 수제비, 김치 수제비, 사골국에 반죽을 떼어 넣은 사골 수제비, 미역국에 조랭이 떡국과 수제비 반죽을 같이 떼어 넣어서 먹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수제비 반죽이 안 어울리는 찌개나 국은 없었다. 엄마는 나를 수제비 호랑이라고 불렀고 나뿐만 아니라 모녀가 함께 즐겼다.
요즘 엄마는 요양원에서 통 식사를 못 하신다고 하신다.여든일곱이시니 죽음에 무게추가 더욱 가까워져 있다. 나는 꺼져가는 촛불 같은 엄마가 보기 힘들다. 이별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쇠락해가는 모습을 외면하고 싶다. 난 나쁜 딸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엄마가 요양원으로 떠나시고 혼자 지내는 동안에는 나를 위해서는 단 한 번의 수제비도 끓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조카의 부탁으로 2년 만에 아주 능숙하게 요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맑은 국물이 뽀글뽀글 끓고 있다. 미리 냉장고에서 꺼내 충분히 치댄 반죽(조카가 나보다 팔힘이 세서 도와줌 ㅎㅎ)이 적당히 말랑말랑하다. 기호에 따라 반죽은 얇게 아니면 조금 두텁게 떼어 내면 된다.
우리는 투박한 통밀의 식감이 도 드러지 게 조금 반죽을 도톰하게 떼어 국물에 넣었고 반죽이 국물에 떠오르면 채 썬 야채를 넣고 한소끔 끓여 그릇에 담고 고명으로 깨소금과 김가루를 얹어 준다. 사실 마지막 그릇이 포인트인데 동생이 영 주방 살림에 관심이 없어 사이즈 맞는 거에 대강 담았다. 호호호
조카는 다행히 엄지 척하며 맛있다고 한다. 나도 오랜만에 맛보는 수제비 한 그릇이다. 구수한 것이 그 옛날 할머니가 석유풍로 위에 끓여 주셨던 유년의 맛 같기도 하고 깔끔하고 정갈한 맛은 엄마의 손맛이다.이다음에 조카에게 수제비 한 그릇은 어떤 맛으로 기억될까.
음식을 하는 것은 단순히 식재료를 먹기 좋게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에너지와 정성을 쏟는 일이다. 그래서 음식은 삶의 뿌리에 자양분이 되어 우리의 인생을 존재하게도 풍성하게도 한다.
그리고 그 음식을 나누며 우리는 추억을 나누고 사랑을 배우며 성장해 간다. 내가 그러듯이 나의 조카도 어른이 되어 오늘의 소박한 수제비 한 그릇의 맛은 기억 안 날지라도 따스한 이모의 사랑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